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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뿌옇게 흐려져 있었다.
곧 비가 내리려는 것 같았다. 겨울의 마지막 추위는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었다.
발악이라고 해봐야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단지 조금 더 춥다는 것 외에는 별 다른 것이 없던 하루.

새 학기의 시작이었다.

삐비비 삐비비

시계의 알람이 내 귀를 때린다. 지겨운 일상은 알람소리보다도 두려운 존재였다.
흐린 날이라 찬란한 햇빛이 내 눈을 찌르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아침은 싫었다. 일어나 보면 하얀 벽, 하얀 벽, 하얀 벽.

깨끗하지만 그만큼 공허한 하얀색 공간이 내 방의 전부였다. 어떤 이는 아침이 상쾌하고 기분 좋다고 하지만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맞다고 할 지라도 그 원리는 내게 통용되지 않는다.

아침이 내게 남겨주는 기분은 지독한 외로움이다.

사방이 하얗고 깨끗한 벽이 있는 내 방은 흡사 정신병원을 방불케 할 정도로 지나치게 깨끗한데다가, 사람 사는 냄새가 나지 않는 신기한 방이다. 몇 년에 한번 가끔 적극적인 친구들이 있어 내 집을 구경할 때 항상 내 방을 보고 말하는 소감은 대충 이랬다.


“창고가 엄청나게 깨끗한데!”


분명 그곳에는 내 책상도 있었고 내 책도 있었으며 나의 컴퓨터도 있었다. 하지만 내 방을 본 녀석들의 첫 이미지는 전부 창고로 기억된다. ‘이렇게 깨끗한 창고도 있어?’라고 감탄을 연발하며...

가끔가다 내 방이라는 것을 눈치채는 친구가 있지만 그들도 사람냄새라곤 전혀 나지 않는 방에서 쉽게 적응하지 못했었다.

그렇게 나는 내 방에서 피곤한 기지개를 켰다.

“후아암.”

하품을 했다. 무미건조한 목이 물을 요구하고 있었다. 5시까지 컴퓨터의 낡은 화면을 바라보고 있어서였을까?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나는 방문을 나갔다.
바깥도 내 방과 별 다를 것이 없었다. 굳이 다른게 있다면 그 크기 면을 제외하고는 모두 같았다.

빈 공간이 대부분인 나의 집. 가장 필요한 기본적인 물건들을 제외하고는 공간이 아까울 정도로 커다란 집이었다.

나에게 짜증내며 깨워주시고 아침을 준비해 주실 어머니나, 거실에 앉아 느긋하게 신문을 보실 아버지 따위는 없었다.

지금은 이 땅에 안 계시기 때문이다. 날 두고 그렇게 가버리시다니 아무렇지도 않지만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이 땅에 계시지 않는 부모님들은 지금 여행 중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무기한의 세계여행……. 나를 회피해서 도망간 것도 아닌데, 꼭 그런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가끔 부쳐주는 차가운 돈 봉투를 제외하고는 지금 이 시간에 동시에 부모님이 계신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로 부모님은 나에게 차가웠다.

그런 이유로 나의 아침식사는 항상 토스트에 구운 빵과 우유뿐이었다.
밥을 지어먹고 싶지만 귀찮다는 것이 내 생각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나 혼자 뿐인데, 나 따위는 죽지 않을 정도로만 먹어두면 된다...는 주의라 항상 아침은 식빵쪼가리와 우유였다.

푸석푸석한 빵 덩어리가 목으로 넘어갈 때는 자주 이질감이 느껴졌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익숙해져 있는 일상이었다.

아침을 넘긴 나는 거의 빈 가방을 매고는 공허한 아침 시내로 뛰어간다.

7시인데도 불구하고 나간 도시에는 공허함뿐만이 가득했다. 자동차도 많았고, 지하로는 전철이 지나다녔으며 하늘에는 비행기가 하늘을 날고 있는 바빠야 할 이 시간이었지만 좀처럼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스스로 나의 창에 깊은 커튼을 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좀처럼 보이지 는 것일지도 몰랐다. 가까운 가게의 아주머니나 아저씨 얼굴조차도 희미하게라도 기억하지 못하는 나를 보면 그런 생각에 확신을 준다.

아니, 비가 내려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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