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어...?"
인간의 모습(이라기엔 지나치게 아름다웠지만)이지만 인간이 아닌 소년은 눈을 깜빡였다. 햇빛과 같은 찬연한 금발이 방향을 잃은 듯 사붓 흩날렸다. 그의 벗이자 동행자인 다른 소년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자기도 밖으로 나가겠다는 말을 전한 것이었다. ...물론 그는 소년의 마스터가 아니었지만, 시야 공유는 무리여도 그 정도의 간단한 염사는 어렵잖은 일이다.
"괜..찮으려나...?"
소년은 작게 중얼거렸다. 물론 그 자신 또한, 그웬이 어디에 던져두던 멀쩡하게 잘 먹고 잘 살고 잘 다니다 돌아올 유형의 존재라는 것에 대해선 이견이 없었지만. 그래도 현재의 이 도시는 사람이 아닌 것들로 우글대는 상태였다. 또, 본래의 그 자신이라면 어떨지 몰라도, 현재의 그웬은 만전이라고는 결코 할 수 없는 상태였으므로. 그것은 크리스 또한 마찬가지긴 했지만. 아무튼, 크리스는 작게 고개를 기울인 채 골똘히 생각했다. 여기서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는 게 더 나을까. 으으으으음.
그리고, 약 오 분 간의 심사숙고 끝에, 크리스는 함께 장을 보던 주인 아주머니께 후식용 아이스크림 케이크(피스타치오 맛)를 사 가겠다는 말로 둘러대고는 자리를 빠져나왔다.
01.
크리스라는 소년은 신기하다는 듯 주위를 돌아보았다. 저녁 어스름이 내릴 즈음. 휴일이 아닌 탓일까, 검푸르게 물드는 하늘엔 높이 솟은 건물들의 창에서 새어나온 불빛이 가득했다. 그웬과 함께 며칠간 머물렀던 파리는, 일부의 신시가지를 제외하면 고풍스러운 - 수백년 전에 가까운 모습의 도시였다. 하지만 이 곳은 그렇지 않았다. 건물이 있었고, 공장이 있었고, 아스팔트 도로와 다리가 있었다. 그런 것을 볼 때마다 신기하다는 듯, 새롭다는 듯 눈을 빛내는 크리스를 보며 그웬은 웃곤 했다. 여긴 정말로 촌구석이야. 뉴욕이나 프랑크푸르트, 아니면 도쿄를 본다면 정말 뒤집어지겠다, 너. 파도 소리 같은 웃음을 흘린 그는, 그러고선 태연하게 "다음 번에 같이 가자", 하고 웃었더랬다. 일반적인 주종이었다면 할 수 없는 가정. 불가능한 약속이었을 테지만. 그들은 조금 달랐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