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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았다 요녀석(?)

배고파 2013.11.09 02:37 조회 수 : 1



아이는 인형처럼 예쁘게 생긴 소녀였다. 자그마한 얼굴은 북쪽 산의 눈처럼
새하얗고 티 한 점 없었으며, 늦가을 아침 하늘처럼 푸르디 푸른 눈동자는 깊고 맑은
색으로, 해질녘과 동틀 무렵에는 햇빛을 담아 조금은 자수정처럼 보이기도 했다.
입술은 소담스럽게 귀여웠으며, 양 볼은 마치 갓 따낸 복숭아처럼 보드랍고도 여린
장밋빛이었다. 그리고 머리카락은 찬란하게 빛나는 순백. 얼음 녹은 눈 같은 은빛. 
아침과 황혼, 태양이 그 머리칼에 입을 맞출 때면 별빛 머리카락은 순식간에 햇빛에
물들었다. 아이가 자란 거리에서는 아무도 가지지 못한 색. 아무도 본 적도 없었던
그런 것들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친아이가 아닐 것이라고. 어쩌면
이야기 속에나 나오는 요정이 바꿔치기해 둔 요정의 아이일 거라고. 

똑같이 구정물에서 구른 채 그 더러운 모습으로 누더기를 걸치고 있어도,
복작거리는 시장통에서 슬쩍 아무렇지도 않게 사과를 훔쳤을 때에도 조금은 다른 모습이었다.
무엇인지 명확히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마지막으로, 아이의 이질적인 면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은 그 이름이었다. 
이것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었지만. 아니, 정확히는 아이 본인과, 아이의 조부만이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 조부는.. 그저 아이가 '할아범'이라고 부르는 거리 어귀에서
사는 노인이었을 뿐이지만. 아이의 부모는 글을 몰랐다. 거리에 살던 대부분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그들이 아이에게 그런 이름을 지어줄 리 없었다. 아니, 알더라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에-르-웬.

'할아범'이 침침한 눈에 금이 다 간 안경을 걸쳐가며 읽어 준 이름이었다.
잠든 아기를 감싼 포대 속에 꼭 함께 같이 숨겨져 있던 자그마한 로켓. 그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은 '아이'를 처음으로 '발견'한 것이 할아범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를 기른 부모라면 분명 보자마자 최상품으로 보이는 그런 로켓 따위 즉시 헐값에
- 그들 딴엔 비싼 값에 - 팔아버리고 술과 약을 샀었을 테니까. 

만약 아이의 부모가 먼저 발견했었더라도, 그들이 아이를 버릴 리는 없었을
테니, 다른 것은 결국 아이가 자신의 이름을 아냐 모르냐의 여부였겠지. 그만큼
그들이 아이를 사랑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원래 부부의 자식은 다섯. 가뜩이나
많은 입들은 빨리 빨리 커서 밥벌이질을 시켜야 했고, 그 외의 것들은 아무래도
좋았다. 무슨 상관인가. 자기 아이든 남의 아이든. 어차피 첫째부터도 이름을
붙여주지 않은 채 대충 되는대로 기른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만을 탓할 일은 아니었다.
이 거리에서는 모두가 그랬으니까.

아무튼, 그걸 발견한 노인은 재빨리 그것을 숨겼고, 부부는 자신의 아기가
아닌지도 모른 채 - 그날 그들이 귀가했을 때 그들은 약에 취한 상태였다 - 시작했고,
다음날 그 은빛 머리카락을, 푸른 눈을 보고서야 다른 아기란 것을 깨달았지만 그것
뿐이었다. 어차피 입의 수가 바뀌지 않았으면 아무래도 좋은 일. 그들의 아이였대도
그건 단지 '싸질렀을 뿐인' 아이였다.



"할아범──할아범! 이것 봐요!"

"... 으음...? 이건.."

"신기하게 생긴 빵이야! 뭐라고 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굉장히 달아요! 사과술 거리
골목의 과일 가게에 쌓여 있던 사과보다도 훨씬 더 달콤해! 그래서 뭔지 궁금하기도
했고, 할아범이랑 나눠 먹으면 좋을 것 같아서 조금 가져왔어요!"

"..얘야, 이건 또 어디서 훔쳐온 게냐."

"에헤헤. 오늘은 조금 머얼리까지 나갔거든요. 라일락 다발 여관의 앞에 굉장히
호화로운 마차가 있길래 어딘가의 대단한 사람들이 온 것 같았어요. 그럼 분명히
맛있는 것도 많이 준비했을 거라고 생각해서 부엌에 몰래 들어가서 몇 개 쥐어왔어요.
엄마랑 아빠한테 줄 건 술 한 병 들고 왔고. 어떤 건진 모르지만 비싼 거라면서
굉장히 칭찬을 많이 받았어요! 그러면서 이 빵은 그냥 나 먹으라고."

"...그렇구나, 하지만 다음부터는 조심하거라. 그런 곳일수록, 그런 때일수록
한 번 들키면 호되게 당하는 법이다."

"..우응..그런가...? 아빠 엄마가 화났을 때보다 더 많이 때릴까요?"

"... 훨씬 무서울 게다. 아마.. 때리는 것으로 끝나면 다행일 정도로."

"...? 그것보다 훨씬 더 아픈 게 있어요? 으윽, 끔찍하다. 하지만 걱정 마요!
나, 재빠른 걸! 언니 오빠들은 물론 우리 거리에서 제일 잘 '일'하는 것, 
할아범도 알잖아요!"

"...알다마다. 하이고, 또 무릎이 다 까졌구나. 이리 오거라."

"...웅? 무릎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은 걸요?"

"그래도 계집애가 그렇게 험하게 구르면 못 쓴다. 스스로를 소중히 해야 하는 게야."

"히히, 그래도 전혀 아프지 않았어요! 그것보다 할아범도 자, 빨리 먹어요. 여기, 여기.
아직 따뜻해. 조금 있다 식어버리면 맛이 없어질지도."


노인은 한숨을 쉬었다. 작은 아이의 누더기 자락이 팔랑거렸다. 못 먹어서 그렇겠지만,
유독 체구가 가녀리고 작은 아이였다. 구정물 투성이의 넝마를 걸치고, 얼굴에는 땟국물이
줄줄 흘렀지만 눈만은 반짝이는 예쁜 아이. 노인은 자세한 이유는 알지 못했지만,
이 아이가 본디는 어떤 곳의 아이였는지는 대강 추측하고 있었다. 그 로켓에 새겨져
있던 아이의 이름. 『에르웬』은 노인이 아주 오래 전, 십대의 소년이었을 때 배웠던
고어古語였다. 현재의 말로는 없는 단어일 뿐더러, 그 철자를 그렇게 읽지도 않는다.

아마도, 어떠한 사정이 있어서 버려진 부유하고 높은 집안의 아이였겠지. 그리고 
그 사정을, 조금이나마 그는 짐작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이유로 내려진 명령인지는
모르나, 몇 년 전 수많은 어린 아이들 - 아기라고 하는 편이 낫겠지, 아기들을
잡아 죽인 날. 어째서인지는 모르나 이 아이의 친부모는 적어도 목숨이라도 살리고자
이 아일 여기서 버렸을 것이다.


"할아범, 할아범. 그래서 이 빵, 뭐라고 해요?"

"..음? 으음, 그건 보자.. 브라우니, 브라우니 같구나."

"헤에. ..우음, 그럼, 이렇게 쓰는 거 맞아요?"

"그래그래, 이제 글자가 제법 볼 만 하지 않느냐."

"엄마 아빠가 안 볼 때 연습했어요! 뭐, 봐도 뭐라고 하진 않을 것 같지만.
내가 일만 제대로 해 오면 되니까."

"...그래, 아무튼, 이리 오거라. 물로라도 좀 닦아 줘야지."

"피이, 정말로 괜찮은데, 뭐.. 네에-!"


노인은 그 아이에게 글을 읽는 법만을 가르쳐 주었다. 정확히 말하면, 읽고 쓰는 법.
그 이상은 노인이 간섭할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실, 글자를 읽고 쓰는 법 또한
양날의 칼이었다. 잘 쓰면 어떻게든 살아남는 데 유리한 것이 되지만, 만약 본인이
섣불리 익혀 사용하다가는 여차하면 오히려 더 험한 꼴을 보게 될 테니까. 하지만
그는 그것은 아이의 선택으로 남겨두었다. 오히려, 다섯 살짜리 어린 여자아이에게
글을 가르쳐 주는 것은 귀족가가 아닌 이상에야 상당히 빠른 일이겠지만. 귀족가도
가풍에 따라 다르며, 여성은 여성적인 모습을 갖추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는 남부라면
아마 까막눈만 면하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많을 테지만.

──거기에, 어린 꼬마 주제에 굉장히 빠르게.. 흔한 비유지만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것이 가엽고도 기특했던 것도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할아범, 무슨 생각 해요?"

"눈이 침침해서 찌푸린 게 그렇게 보인 게다. 자, 여기 앉고."

"네에- 그러고보니 나, 굉장히 맛있어 보이는 것도 봤어요."

"맛있어 보이는 것?"

"응. 이 브라우니-란 것보다 훠얼씬 더. 가져오고 싶었는데 너무 크고 뜨거워서
들고 올 수가 없었어요. 괜히 욕심내서 무리하게 큰 거 들고 달리면 잡혀버릴
수 있으니까."

"호오.. 어떤 것인지 말해 보겠느냐."

"응. ...으음, 일단 굉장히 크고 둥그랬어! 그리고 위는 빵 같은 걸로.. 조금
바삭바삭? 해 보이는 빵 같은 걸로 덮여져 있었는데, 안에선 굉장히 따뜻한
기운이 있었어요. 막 손을 바로 위에 대 보면 뜨거웠어. 그리고 냄새가 또
엄청 좋아서. 막 음... 으음.... 뭐라고 하면 좋지? 잘 모르겠다... 이 냄새를
뭐라고 말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으으... 아무튼, 그리고 사알짝 끝의 빵을
뜯어보니까 안에 빨간 소스 같은 거랑 새하얀 고기 같은 게 있었어!"

"치킨 파이다."

"헤에, 치-킨-파-이? ...잠깐만, 치킨이면.. 와아, 그게 그 치킨?! 굉장해!
토미랑 리사도 본 적 없을 거에요, 말로만 전부 다 들었으니까..! 그렇구나,
그게 치킨이란 거구나... 내가 본 닭은 살아 있거나, 아니면 바로 털이 뽑혀서
통째로 매달린 것 밖에 없었으니까."

"그렇느냐."


당연한 일이었다. 이곳에서 고기라 하면 쓰레기통 같은 거나, 남의 가게 부엌에서
훔쳐 온 자투리나 찌꺼기 정도였고, 그게 아니라면 살찐 비둘기나 고양이, 쥐
같은 것이었기에. 갓 구운 따끈한 치킨 같은 것은 본 적도 없었을 것이다.


"그건 무슨 맛일까... 으아아악, 할아범, 따가워!"

"칠칠치 못하게 굴러다닌 네 탓이다, 얘야."

"으에에에에!"


아이는 얼굴을 잔뜩 찌푸려 울상을 지었다. 쓰라릴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과격하게 물이나마 들이붓지 않는다면 이 거리의 환경상 자잘한 상처 하나로도
큰 일이 날 수 있다는 것은 뻔히 보이는 일이었다. 실제로도 그런 사소한
것으로 다리 한 쪽을 못 쓰게 된다거나, 심지어 죽게 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지만.

전부 다 자기 입을 채우기에도 부족하니 사람 좀 줄은 것 같고는 오히려 나눌
군입이 줄었다 내심 좋아할지언정 곡하고 애도할 이유도 여유도 없는 곳이었다.


"할아범, 할아범. 그리고 요거 요거."

"음? 이건..."

"팔고 남은 거라고, 소나무꿀 빵집의 티즈 아줌마가 줬어요!"


아이는 문득 그제사 생각났다는 듯 다른 쪽 손에 들고 있던 종이 꾸러미를 내밀었다.
안에서 나온 것은 빵의 자투리와,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고 멋없이 그저 밀가루를
구웠을 뿐인 빵덩어리였다. 전자도 후자도 팔 만한 것은 못 되었지만, 이곳에서는
이조차도 귀한 음식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할아범, 사실요, 예에전에 티즈 아줌마네 가게에 들었던 도둑..
길거리 네 번째 천막에 살았던 셋째 사람, 사실 그 사람을 잡고 싶어서 잡은 게
아니라, 원래 내가 슬쩍하려던 빵을 그 사람이 갖고 튀어서 그게 짜증나서 잡아버린
거 알아요? 헤헤, 그런데 지금 와보니까 그러길 잘 했던 것 같아요. 진짜로 
일주일에 한 번 정도지만 이렇게 맛있는 것도 먹을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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