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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9.01 00:14 조회 수 : 2


 한밤 중, 어둠 속에 음울하게 가라앉은 브로드 브릿지는 그 순간만 짧은 휴식을 즐겼다. 미온 강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다리에는 기이하게도 사람이 없었다. 언제나 분주하던 소란함이 사라져 적막하고, 쓸쓸한 바람은 대교가 내쉬는 한숨 마냥 깊었다.


 신토와 미야마쵸, 다리가 닿아 이어지는 두 곳은 달랐다. 다리를 지나려는 사람들의 수런거림과 여러 시끄러움이 섞여 소음이 심했다. 다리 입구에는 차들이 모여 헤드라이트를 섬뜩하게 번쩍였다. 그 뒤로도 수많은 전조등의 불빛들이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중간에 낀 운전자들은 건너는 것도 돌아가는 것도 포기하고 차에서 내려 겨울바람을 쐬며 몸을 비볐다. 밀린 차들의 행렬은 뱀이 무는 것처럼 이어져서, 한참이나 먼 도심 한가운데의 사차선마저 행렬에 꿰뚫려 있었다. 짜증을 참지 못한 운전자들이 경적을 연신 울려대느라 사람들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날 밤, 도시는 어지러이 뒤섞이며 한낮의 시끌벅적함을 되찾고 있었다.


 불안한 시민들의 아우성이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는 와중에도, 기나긴 행렬의 가장 앞쪽은 아무 소리도 없이 고요했다. 누구 하나 차에서 내리는 사람도 없었다. 뒷사람들은 그에 압도되어 나가지도 못했고, 나가더라도 금새 차에 들어가 불길함을 곱씹었다.


 혼돈의 원인, 대교를 단단히 틀어막은 마술사는 침묵을 관철했다. 대교에서 뒤돌아 서서 도시로 길게 이어진 전조등빛 뱀을 볼 뿐이었다. 우울한 시선은 저 먼 데 붙박인 응급차에 던지고 있었다. 옷 사이로 스며 몸을 간지럽히는 바람에서, 그는 어떠한 냄새를 맡는 듯한 착각을 받았다. 그것은 붉은색이었다.


 세상은 무엇도 모르게 될 것이다. 지금도 도시를 넘나들며 활약하고 있는 동료들 덕분에 도시는 혼란에 빠져들고, 그로 인해 진상은 가려질 것이다. 길을 가로막은 사람들은 플래시몹의 참가자로 둔갑하고, 방해하려는 공권력은 농락 당한다. 신비는 지켜질 것이다. 숨겨지고 파묻히고 은닉되며, 훔쳐보려는 눈을 뽑아 그것은 유지된다.


 그러나 마술사는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 장막에 시야가 가려, 절벽으로 향하는 맹인을을.


 그리고 마술사는 고요히 생각하고 있었다─ 이 부조리극 뒤에 숨어, 세상을 횡행하는 망령들을.


 북적이는 이 와중에 하늘을 올려다 볼 이 몇이나 있으리? 마술사는 그 시선과 상념을 위로 쳐들었다. 거기엔 금이 간 달이 있었다.


 마술사는 안다. 그것이 금이 아니라, 하늘을 달리는 탈 것이라는 걸. 길쭉한 무언가가 날며, 달 아래를 지나고 있을 뿐이라는 걸.


 ─과거에서 되살아나 현대를 만끽하는 영웅께서는, 드높은 하늘에서 사바를 굽어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마술사는 냄새를 맡고 있다. 그것은 붉은색이다.


 ─정말이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조용히 무덤 속에나 누워 있어주실 일이지. 그럼 우리는 그 묘비 위로 조용히 전설을 떠올리고, 적당히 감탄하고, 적당히 칭찬하고, 적당히 재미있어 한 후, 그대로 떠나줬을 터인데. 자기 인생도 제대로 못 챙긴 탓에 미련을 가지고 되돌아온 망령들 따위가 건방지다. 죽었으면 사람들의 관심이나 주워섬기며 저승 한 구석에 닥치고 있을 일이지, 뭐 먹을 게 있다고 자꾸 기어오는 거냐.


 마술사는 생각했다.


 ─결국 영령이라 해 봐야, 이런 일에 등장한 이상, 인생의 실패자들 따위가 아닌가.


 제 아무리 멋진 기예를 선보여도. 제 아무리 압도적인 신비를 드러내도. 제 아무리 무서운 지혜를 뽐내도. 제 아무리 훌륭한 성품을 자랑해도. 제 아무리 제 아무리 제 아무리 끊임 없이 무언가를 보여주고 감동시켜 준다 해도.


 그 기예는 아름답고, 그 신비는 무섭고, 그 지혜는 위대하고, 그 성품은 고아하지만.


 결국 성배를 탐한다는 것이 존재로 증명되기에, 이미 죽은 자기에, 산 자 위에 서려 하기에, 이루지 못한 것이기에, 그것은 가볍고 가볍고 티끌처럼 티끌보다 또한 더 가볍다.


 고매한 소원도 희생 없인 이루지 못하리. 가능했다면 생전에 그리 했으리.


 마술사는 생각하고 있었다. 등 뒤로 밀려오는 붉은색 바람을 맞으며, 갈구하고 있었다. 인간을 초월한 무언가를. 이 모든 부조리를 해결할 수 있는 누군가를. 전능한 것, 불합리의 정화. 정의의 사자를─ 말이다.


 하지만 마술사는 알고 있었다. 애타게 외쳐도 그런 건 없다는 걸. 누구도 만들 수 없다는 걸. 애초에 만들어져서도 안 된다는 걸. 그래서 마술사는 생각했다. 생각만 했다.


 도시가 웅성거린다. 바람을 타고 냄새가 실려온다. 어둡고 차갑고 매끄러운 밤하늘 공기에 선명하다. 그것은 붉은색이었다.




 §




 살을 에듯 날카로운 칼바람이 불었다. 독특한 소리를 뽐내며 대교를 예리하게 할퀴었다.


 거기엔 시체들이 있었다. 다리를 지탱하는 주탑에 예수처럼 못박힌 채, 해체된 내부를 드러내며 아래를 멍하니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죽이 벗겨져 근섬유 한 올 한 올이 섬세히 드러나고, 배가 열려 그 안의 내장이 커튼처럼 드리워 바람에 흔들리며 철골을 탁탁 쳐댔다. 뼈와 내장과 뇌와 생명을 모조리 드러낸 전위적인 모습으로 그것들은 늘어서 있었다.


 레릭 리스트. 성배전쟁에 휘말려 든 신부가 도착한 게 이때쯤이었다.


"결국 저질렀구나, 실베이라. 내가 널 죽이지 말아야 할 이유라도 있다면 지금 말해 보시지. 이제 곧 널 지옥에 돌려 보낼 테니."


 여과 없는 분노가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가 울려퍼지자 그것은 돌아보았다. 주앙 미구엘 에스피노사 실베이라, 인세의 악마는 그 손에 피를 뚝뚝 떨어뜨리며 마구 휘갈기던 피칠갑 낙서를 그만두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죽인다. 아냐. 난 놀아준 거라고!"


 마치 어린아이의 생떼와 같은 짜증도 잠시, 웃음은 킬킬거리며 흘러내렸다.


"지옥. 지옥 좋아! 꺄하하하하하하하! 혼돈! 무한히 타는 유황불에 타는 인간들. 비명이 가득한 곳. 존재한다면 가장 많은 감정이 교차할 그곳!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 레릭! 나에게 선물을 줄 생각으로 가득하구나! 역시 넌 나와 놀아주기 위해 이 도시에 온 것이 틀림없어! 캬하하하하하하하!"


 이 상황이 즐거워 견딜 수 없다는 높은 목소리로 치솟는 웃음. 그것은 멈추지 않고 끝도 없어, 마침내 주앙은 배를 부여잡고 숨을 급하게 몰아쉴 정도가 되었다.


"으하하하…… 하……. 레릭. 레릭. 오오, 레릭. 심각한 레릭. 즐겁지 못한 레릭. 주앙을 보기 위해 여기까지 왔구나. 놀이. 너희를 위해 준비했어. 멋지지? 진지한 레릭. 이제 웃어볼 때가 되지 않았나?"


 손에 묻은 피로 입 끝에 선을 덧그려, 마치 피에로 같은 얼굴을 만든다. 그 표정도 목소리도 끼륵끼륵거리며 조롱하듯 순수하게 행복에 차 있었다. 레릭은 잠시 침묵하다 나직하게 말했다.


"항상 궁금했었다. 물어볼 순간도 없었고, 머릿속이 분노와 후회로 가득 차 있어서 금방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긴 했지만. 이렇게 눈앞에 두고 보니 분노와 함께 의문이 솟는군. 너는 어떻게 이 광경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거지?"


 주앙은 웃음조차 지우지 않고 답했다.


"즐거움을 찾는다고? 무슨 소리인가? 난 항상 즐거워."


 그 사이로 무기질적인 음성이 끼어들었다.


"신사에 있던 흔적, 화재와 마술에 의한 피해, 캐스터의 소행으로 추정. 단독으로 서번트와의 전투는 불가능, 이곳에 은신하고 있는 것 역시 파악되어있을 가능성 높음. 현 상황에서 취해야할 적합한 행동…… 도주."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거기엔 붉은 천을 두른 소녀가 있었다. 그 중얼거림은 낮고 조용했으나 듣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주앙은 그것을 발견하고 반갑게 소리쳤다.


"꼬마! 순진한 꼬마! 아름답고 순수하고 고결한 영혼의 소유자! 놀이! 네가 궁금해하던 놀이다!"


 양팔을 쫙 펼쳐 뒤에 매달린 시체들을 배경으로 한 채, 주앙은 말했다. 마치 아군을 만난 듯, 동지에게 자랑하듯.


"저들이 죽었다 생각하냐? 아냐! 나와 논 거라고. 후후후후후후. 봐. 저 신부도 나와 놀아주기 위해 온 것이고. 나머지 녀석들도 관객! 그래. 우린 친구라고? 이히히히히히히히."


 주앙은 붉게 물든 오른손을 펼쳐 잘 보라는 듯 내밀었다.


"너도 나랑 같이 놀아볼까? 아주 재미있어. 안 그럴 거라는 건 많은 인간들이 착각하는 문제지. 너 또한 인간을 보며 다르다는 걸 느끼지 않았나?"


"저 마귀의 가증스러운 말을 듣지 말게, 샤를로트 양! 모든 사람에겐 선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지 않는가! 자네도 마찬가지일세! 그런데 어떻게 타인의 고통이 즐거움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일세. 마음 속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게나! 그런 짓을 했다간 자네 안의 선이 눈물을 흘릴 걸세!"


"아아. 레릭. 신부. 불쌍한 신부. 저 사람들이 고통 받았다고 했던가? 아니지! 기뻐했어! 아아아아주 기뻐하며 비명을 질렀지. 이건 나의 쾌락. 살아남으려 발버둥치는 생명의 고동을 느낄 때야말로 감동에 벅차오르는 걸 느끼지."


 주앙의 권유에 이어지는 레릭의 노호성. 다시 뒤따르는 주앙의 조롱. 샤를로트는 조용히 걸어 둘 사이에 섰다. 천 자락이 펄럭였다. 어느새 양손에는 작은 키만큼 커다란, 비상식적인 가위가 들려 있었다. 그 시선은 주앙으로 향한다.


"당신의 의견을 나, 자동인형 [샤를로트]는 부정하지 않아, 그리고 또한 나 역시 인간을 죽이며 쾌락을 느낀 경험이 있으니까 그것이 어떤 기분인지는 충분히 알고 있어. 그러니까 신부…… 아니, [주시대상] 레릭 리스트. 나는 당신을 돕지 못한다. ……적어도 이 바보같은 인형극이 끝나기 전에는."


 끝에 이르러선 레릭을 향하는 기계적인 무표정.


 주앙은 웃었다.


"아아아, 꼬마 소녀. 순수한 소녀. 으후후후후. 쾌락. 쾌락을 탐하는 것을 저 신부는 '악'이라 칭하고 있지. 그럼 그 '악'은 누구의 관점인가? 그것이 모든 생물에게 통용될 수 있는 개념인가? 대행자. 그들은 결국 우리와 같은 '아인'과 대립하는 존재들이지. 우후후후. 하지만 난 좋아. 싫지만 좋아! 꺄하하하! 지치지 않고 나와 놀아주러 오는 그들이 좋아! 행복해! 아주 행복해! 사랑스러운 레릭이 저기서 나와 놀자고 서있다고!"


 레릭은 샤를로트에게만 답했다.


"……그래, 그것이 자네의 답변인가. 알겠네. 허나 회개하는 자에겐 축복이 있나니. 내가 오늘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다면 교회로 오게나. 늘 하는 얘기지만, 교회의 문은 항상 열려있다네."


 그 모습에, 주앙은 몸을 곧게 폈다. 진지한 표정을 짓고 그에 뒤따라 말했다.


"전능하신 여호와여. 제 죄를 사하시소서. 아~멘~"


 대화는 끝없이 평행선을 그린다. 그 큰 가위로 순환을 끊듯, 샤를로트는 칼 같이 말했다.


"당신의 의견은 잘 알겠어. 하지만 내가 당신의 쾌락을 긍정했지만, 그걸 즐기지는 않아. 그리고 생명 없는 인형의 기준으로는 당신은 충분한 악으로 보여. 그래서 말인데……. 인형놀이, 좋아해?"


 주앙은 즐거워 하며 대답했다.


"주앙! 즐겁다! 고맙도다! 모두들! 하지만 오늘을 싸우고 싶지 않아. 주앙. 사랑한다. 으후후후후후. 놀자고. 놀이를 위해 이 파티를 계획한 거라고. 난 아직 싸우고 싶지 않은걸?"


 주앙은 제 몸을 스스로 끌어안으며 한숨처럼 내뱉었다.


"좋은 날씨다. 이 행복을 감출 수가 없구나."


 바람이 분다. 싸늘하고 차가운 칼바람이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정적이 고였다. 그 자리에 숨소리는 두 사람밖에 내지 않았다. 대교 아래를 흐르는 물소리가 축축했다.


 ─그 순간을 가르듯 그것이 온다. 뚜벅뚜벅, 발소리가 들린다. 철컥철컥, 갑옷 소리가 부드럽게 이어진다. 달빛을 받아 백색과 에메랄드가 빛난다. 한 자루 목창을 어깨에 걸친 채, 그것은 걸어오고 있었다. 그 형상이 일그러져 보일 정도로, 싸우려는 기세가 넘실댄다. 매끄러운 얼굴을 면갑으로 감싼 채 당당히 등장한 모양새. 동작마다 무감각하고 절도 있는 느낌이 전해져 왔다.


 ─그에 이어지듯, 맞은편 하늘에서 그것이 내려온다. 부드럽고 묵직한 엔진 소리, 길게 빠진 몸체. 달빛 아래에서 고급스레 빛나는 검은색. 홀연히 하늘에서 달리던 도로가 이어지듯 대교에 내려오더니, 이내 매끈하게 정차했다. 철컥, 운전석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내려선다. 바로 뒷자석으로 가서 문을 공손히 열자, 붉은 카펫이 깔리며 노인과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짧은 이야기가 끝났다. 다음 막이 오른다. 지금까지가 이승의 이야기였다면, 이 다음부터는 저승의 이야기다. 천상과 지하에서 기어와 횡행하는 망령들이 노래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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