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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

카구라 2013.08.26 22:26 조회 수 : 0

문뜩 누군가가 부른 것 같아서 뒤를 돌아보았다.

등 뒤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주변에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귓가에 거슬리는 잡음만이 언제까지고 선명하게 남아있는 것이다.

 

"───왕은, 사람의 마음을 모른다."

 

누군가가 내뱉은 그 말은 어느 새인가 왕궁 뿐만이 아니라,

백성들의 입에서까지 오르내리게 됐다.

귀를 틀어막아도, 자신을 향한 비난이 그치지 않자 자신은───,

자신은 어떻게 했더라?

 

잘은 기억하지 않는다.

아마도 모조리 죽여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 혐오스런 귀족들을 포함해서 자신의 친족들을 하나둘씩 숙청했기 때문일 것이다.

남아있는 것은 풀 길 없는 분노와 마음에 남은 파괴충동,

그리고 항상 머리를 괴롭히는 이 두통 뿐이었다.

 

아프다. 머리가 아프다.

이 통증은 어떠한 방법으로도 사라지지 않고, 피해갈 수도 없고, 무시할 수도 없고,

오직 자신의 이 손으로 사람을 죽였을 때만, 더할 나위 없는 쾌감을 전해주었다.

 

"괜찮으십니까?"

 

......어디선가, 이름도 모르는 꽃의 향기가 났다.

머리를 감싸쥐고 웅크려 앉아있던 내게 본 적 없는 청년의 모습이 보였다.

단정한 얼굴과는 달리 그 눈빛 속에는 다른 귀족들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고뇌가 엿보였다.

그 청년은 한 손으로 꽃다발을 품 안에 안고, 다른 한 손을 내게 내밀고 있었다.

나는 곤혹스러워하면서도, 그 손바닥 안에 자신의 손을 살짝 포갰다.

청년의 손은 굉장히 크고, 따뜻했다.

자신은 그런, 아무래도 좋은 사실을, 기억하고 있, 다───

 

"당신도 이곳에 가족 분이 잠들어있는 건가요?"

 

주변을 둘러보니 자신은 어느샌가 왕궁 내의 무덤에 와있었던 것 같다.

그곳은 왕족을 비롯한 이름 있는 자들의 시체를 보관하는 장소였다.

하지만 자신이 왕으로 즉위한 이후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죽어간 까닭에

이곳에 이름을 남기지 못한 채 죽어간 이도 적지 않을 것이다.

나는 고개만 간신히 끄덕이다가, 청년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다.

 

"네, 오늘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기일이였어요."

 

청년은 그렇게 말하며 무덤 앞에 꽃다발을 놓았다.

그 모습은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평안해보였지만,

반대로 자신의 어깨가 무거워지는 기분이 들어서 묻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당신의 어머님도...... 왕의 손에 의해 살해당했어?"

 

청년은 조용히 고개를 가로지었다.

 

"아니오, 원래부터 몸이 약하신 분이였어요."

 

그 대답에 자신은 어딘가 안도감을 느끼면서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윽고 이어지는 청년의 이야기는 놀랄 만한 것이었다.

청년의 어머니는 본래 타지 출신의 귀족으로 정략 결혼으로 인해 그의 집안에 시집왔다고 한다.

그러나 몸이 너무 약했던 탓에 부부 사이에서는 한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아 일족 전체에게 천대받았다.

 

"그러던 와중에 제가 태어났지요. 어머니는 아들을 얻으신 걸 굉장히 기뻐하셨어요."

 

하지만, 아버지는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왜냐면 아버지는 이미 어머니에게 정을 끊고 새로운 여자와 함께 자식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아버지 입장에서 보면 어머니와 자신은 이미 쓰다버린 옛 물건이나 다름 없었다.

얼마 후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청년은 아버지에게 정이 떨어져 의절하려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청년을 붙잡은 것은 다름 아닌 아버지의 애인이였다.

 

"그제서야 그 여자는 저도 몰랐던 진실을 말해주더군요. 제가 자신의 아들이라고."

 

몸이 약했던 어머니는 처음부터 아이를 갖지 못했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일찌감치 어머니에게 정을 끊고, 다른 여자 사이에서 낳은 청년을 입양한 것이라고 한다.

그녀는 그저 일방적으로 남의 아이를 떠맡고, 자기 아이못지 않게 정을 주며 키웠던 것이다.

 

"......그 때의 심정은 충격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어요. 저는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후계자를 낳기 위해 먼 타지로 와서, 몸이 약하다는 이유로 천대받고,

결국엔 남의 아이를 떠맡은 데다, 남편에게 눈길 한번 받지 못한 채 죽어간 자신의 어머니.

청년은 생각했다. 그녀의 인생이란 도대체 뭐였던 것인가.

 

"제가 어머니를 위해 할 수 있었던 일이라곤, 그저 그 남자로부터 등을 돌리는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청년의 아버지는 왕에게 노여움을 사서 숙청당했다고 한다.

청년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났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주변에 세워진 묘비를 한차례 둘러보았다.

 

"왕이 즉위한 이후로 묘비는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그것은 단지.

이 세상에는 아직 벌을 받아야할 인간이 잔뜩 있기 때문이라고.

담담한 어조로 청년은 그렇게 말했다.

 

"인간은 인간을 벌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법이 필요한 것입니다. 왕은 그를 심판하는 단죄자인 셈이죠."

"그 법이 백성들의 목숨을 앗아가더라도 상관 없다는 거야?"

"적어도 저는 제 자신을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두번 다시 어머니의 얼굴은 볼 수 없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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