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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개입니다 멍멍!

카구라 2013.08.10 10:45 조회 수 : 1

어느 나라에 왕이 있었습니다.

왕은 매우 인자하고, 현명하기로 이름 높은 사람이였습니다.

 

재단사 중 한 명이 왕에게 귀중한 물건을 갖다바쳤습니다.

 

───친애하는 폐하께, 이 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단이 여기 있습니다.

 

왕은 매우 기뻐하며 재단사에게 포상을 내렸습니다.

그 재단사는 죽을 때까지 감옥 속에서 몰매를 맞았습니다.

 

요리사 중 한 명이 왕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서 가져왔습니다.

 

───친애하는 폐하께, 이 나라에서 좀처럼 맛볼 수 없는 진미가 여기 있습니다.

 

왕은 매우 기뻐하며 요리사에게 포상을 내렸습니다.

그 요리사는 펄펄 끓는 기름 속에 산 채로 몸을 내던졌습니다.

 

귀족 중 한 명이 자신의 딸을 측실로 왕가와 인연을 맺길 제안했습니다.

 

───친애하는 폐하께, 이 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미모를 가진 제 딸이 여기 있습니다.

 

왕은 매우 기뻐하며 귀족에게 포상을 내렸습니다.

귀족의 딸은 결혼식 날 부모 앞에서 사냥개들의 먹이가 되었습니다.

 

오오, 백성들은 왕을 칭송해 마지 않았습니다.

나라에는 어느 곳을 가도 항상 웃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정말로 행복해보였습니다.

 

진실로부터 눈을 외면하는 대신에 말예요.

 

 

 

 

 

 

"하앗, 핫, 하아, 하───"

 

여자는 정적 속에 잠든 거리를 그저 하염없이 달린다.

등에 흐르는 식은 땀에 셔츠가 찰싹 달라붙어서 기분 나쁘다.

하이힐은 이미 예전에 벗어던진지 오래였다.

맨발에 닿는 차가운 콘크리트의 감각이 묘하게 리얼하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은 요만큼도 현실감이 없었다.

 

"치한? 그런 건 잡아서 던져버리죠, 뭐."

 

생각해보면 집까지 바래다 주겠다는 동료의 제안을 거절한 게 잘못이었다.

지금은 OL인 이 여성은 고등학교 때 유도부에 들어가있었고,

힘 승부라면 남자들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물며 한밤중의 스토커 따위 논외, 봐줄 자신 따위 없다.

이쪽을 타깃으로 삼은 저쪽이 잘못한 것이다.

사람은 겉보기로 판단해선 안 된다는 걸 어리석은 스토커한테 알려줄 셈이였는데───

 

"흑, 이제 싫어...... 쫒아오지 말란 말야......"

 

뜨거운 눈물이 차갑게 식은 뺨 위로 흘러내린다.

미처 닦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여자는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 거리를 질주했다.

아무리 퇴근 시간이라지만 이 근처가 이렇게 조용했던가?

주변에 불빛은 보이지 않고, 들려오는 건 거친 자신의 숨소리 뿐.

 

이래서는 마치,

자기 혼자 이 세상에 남겨진 것 같은......

아무래도 좋다. 누군가. 누군가 '저 녀석'으로부터 나를 구해줘.

멀리 멀리. 저 녀석의 손이 닿지 않는 어딘가로. 누군가. 누군가───

 

"누군가 없어요?! 살려, 살려주세요!!"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도 쉽게 자신을 앞질렀다.

 

"찾 았 다 ♥"

"히익───!"

 

'그것'은 분명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자신보다 연하임이 틀림없는 작은 여자아이의 모습을.

하지만 겉모습에 속아선 안 된다.

앞뒤 돌아보지 않고 전력질주로 달려와서 땀 범벅이 되어있는 자신과는 달리,

눈앞의 '그것'은 숨을 고르는 기세조차 보이지 않았으니까.

저것은 분명, 사람의 상식을 뛰어넘은 무언가임에 틀림없다.

 

"숨바꼭질은 벌써 끝이야? 아깝네. 당신, 사냥감으로써는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웠는데."

"아, 아아, 아아───"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녹색 눈동자에 위축되어 여성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것'은 달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금빛 머리칼을 손으로 쓸어넘기며 커다란 날붙이를 들어올렸다.

문뜩 후배가 즐겨하던 휴대용 게임이 생각났다.

커다란 몸집의 몬스터를 사람 몸보다 무거운 대검을 휘둘러서 사냥하는 게임이였는데......

 

"굿 바이, 귀여운 토끼야. 도망칠 수 없는 미로 속을 달려다닌 기분은 어때? 하지만 유감, 즐거운 헌팅은 여기서 끝이야."

 

귀를 찢는 굉음이 들려왔다.

여자는 자신의 머리가 한 때 몸이었던 것과 분리되어 포물선을 그리며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마지막으로 여자가 본 것은 어둠 속에서 본 것은 하늘에 뜬 초승달마냥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 소녀의 모습을 한 괴물과

캄캄한 어둠 속에서 자신을 맞이하러 온 하얀 사신의 모습 뿐이였다.

 

여자의 기억은 거기서 끝났다.

 

 

 

 

 

 

이안은 잠시 동안 한 때 인간이었던 그것을 살펴보더니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던졌다.

저것은 이제 완전히 못 쓰는 물건이다. 혈액이나 뼈 정도라면 채취해서 마술의 재료로 쓸 수는 있겠지만.

즉 폐품이다. 자신의 서번트가 호쾌한 몸놀림으로 목을 깨끗하게 절단시켜준 덕분이다.

파트너의 깊은 한숨 소리에 금발의 소녀는 왠지 주눅이 들었다.

 

"그, 그러니까,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니까. 처음에는 그냥 겁만 줄 생각이었는데, 점점 즐거워졌다고 할까."

"............"

"이런 건 기분의 문제라고 하잖아? 왜, 파란 수염도 그랬잖아. 공포에는 신선도라는 게 있는 법입니다!"

"........................"

"그나저나 설마 현대의 인간이 이렇게 쉽게 죽을 줄이야! 내가 살던 시대에는 목이 떨어져도 근성으로 유언을 남긴 녀석도 있었는 걸?"

"................................................괜찮아. 화 안 났어."

"거짓말 하지 마!? 뭐야! 나한테 불만이 있다는 거야?! 다른 서번트로 갈아타고 싶어진 거지?! 쿨링 오프의 계절이라는 거 아냐!"

 

소녀는 짜증을 부리며 두 손으로 머리칼을 마구 쥐어뜯었다.

반성하는 태도는 온데간데 없고, 역으로 화를 내서 자신의 잘못을 무마시킬 셈인 듯 하다.

실은 저 서번트의 클래스는 버서커가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놀라운 자기 중심 사고였다.

이안은 다시금 스테이터스를 확인하고픈 마음을 억누르며 시체에 불을 붙였다.

이 근처에서 엽기 살인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괜히 쓸데없는 관심을 받고 싶지 않았다.

 

"다음에는 제대로 산 채로 포획할 것."

 

대답은? 라고 되묻자 소녀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반성의 기미가 안 보이는 태도에 한마디 해줄려고 고개를 돌린 이안의 눈썹이 살짝 떨렸다.

 

소녀는 장작불 앞에 쭈그려앉아 시체가 타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불빛에 비치는 소녀의 얼굴은 딱히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는 무심한 표정이였으나,

이안의 눈에는 어쩐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울음을 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괜히 무안해져서 이안은 볼을 긁적였다.

불이 타오르는 동안 둘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이어졌다.

 

"......있잖아."

"응?"

 

침묵을 먼저 깨트린 것은 소녀 쪽이였다.

 

"인간은 어째서 금방 죽어버리는 걸까."

"......글쎄. 어차피 인간은 언젠가 죽기 마련이지."

 

그것이 수명이든, 돌발적인 사고에 의해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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