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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본

카구라 2013.06.25 01:28 조회 수 : 6

태양이 지평 너머로 모습을 감추고, 밤의 장막이 하늘을 뒤덮는다.
사라진 자연의 빛을 대신하듯이 인공의 조명이 도심 곳곳에서 불을 밝히는 와중에도 항구는 고요했다.

조용하게 반복되는 파도소리.
수십, 수백 아니 어쩌면 그 보다도 까마득한 예전부터 되풀이 되었을 과정은 마치 별의 호흡소리처럼도 느껴졌다.


“……바보 같아. 메르헨을 꿈꾸는 소녀냐”

어느새 감상적이 되어버린 스스로를 꾸짖으며,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뭐 좋지 않은가. 인생이란 하나의 연극과 같은 법이지. 삭막한데다가 재미도 없는 이야기보단 꿈으로 가득 찬 이야기 쪽이 보는 사람도 즐거운 법이지. 게다가 마침 외관적으로는 딱 꿈꾸기 좋은 나이 아닌가, 실 연령 쪽은 미묘하네만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는 것이 나의 지론…….”

“그 이상 헛소리를 계속하겠다면 성배전쟁이고 뭐고, 령주를 써서라도 요양원에 처박아버릴 용의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해?”


평소에는 그다지 보이지 않는 미소까지 띄워가며 네르피스는 물었다. 혈색이 옅은 얼굴에 웃음을 띄운 그 모습은 많은 남성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큼 사랑스러운 것이었지만, 그 눈초리는 벌레라도 보는 듯이 차가웠다.


“어이쿠, 아무리 그래도 그건 사양하고 싶은데. 안락한 생활이라는 건 좋아하지만, 한 군데 얽매이는 건 사양하지. 밥이 맛이 없는 것도 사활문제고 말이야.”

과장된 동작으로 어깨를 움츠리며, 노인이 물러선다.
장난치는 듯한 그 모습에 어쩐지 화를 내는 것도 우스워져 네르피스는 한숨을 쉬었다.

교회로부터 성배전쟁의 개막에 대한 소식을 듣고, 다른 서번트와 마스터를 찾아다니기 시작한 것이 지금으로부터 약 4시간 전.

언제 적에게 습격당할지 모른다는 경계와 전투에 대한 중압감 등으로, 생각 이상으로 신경이 곤두 서 있던 거겠지. 새삼스럽게 몰려오는 피로의 무거움에, 그녀는 작게 놀랐다.

적당한 긴장은 필요하지만, 그것도 과하다면 오히려 몸을 둔하게 만들고 행동을 늦추는 독이 된다.

그런 네르피스 자신의 상태를 알고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느슨하게 만드는 것이 만약 이 서번트의 목적이었다면 그야말로, 라고 밖에 할 수 없지만…….


“......”

“음? 무슨 일인가 마스터. 새삼스럽게 이 몸의 멋진 모습에 반하기라도 한 건가? 곤란한데. 난 유부남이거든. 먼저 간 할멈이 저승에서 눈을 부라리고 있을걸.”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인의 모습을 노려보아도, 싱글벙글 장난기에 찬 악동과 같은 얼굴 뒤에 감춰진 진위는 알아낼 수 없었다.


“하아……. 뭐 됐어. 그나저나, 다른 서번트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는 거야?”


그다지 기대는 하지 않으며, 네르피스는 물었다.

그럭저럭 장기간의 수색에도 여태까지의 수확은 전무.

소모나 정보의 누출을 두려워한 다른 세력들이 몸을 사리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네르피스가 운이 없었던 것 뿐 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렇게 된 이상 오늘은 이만 단념하고 거점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그런, 체념에 가까운 네르피스의 생각은,


“음? 아 그렇군, 아직 말 안했었나? 서번트의 기척이라면 방금 전부터 감지하고 있어. 위치는 이 근처…… 라기 보다 지금 여기로군. 그런데, 슬슬 모습을 드러내는 게 어떤가?”

“……응? 뭐야, 있었어? 벌레 같은 기척이라서 전혀 눈치 못 챘네. 당신, 요즘 유행하는 곤충계 남자의 부류지?”


아무렇지도 않게 들려온 일련의 대화에 의해, 가차 없이 부서졌다.


“......!!”

당장이라도 튀어 오를듯한 기세로 네르피스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한다.

항구 주변에 무수히 배치되어 있는 컨테이너 박스 중 하나.
어지간한 성인의 신장 두 배에 가까운 높이를 가진 그 위에 걸쳐 앉아, 한손으로 턱을 괸 채 자신들을 응시하는 존재가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연령은 10대 후반 정도 일까, 허리까지 닿는 금발이 달빛 속에서 아름답게 빛나고, 언뜻 보아도 최고급품이라는 걸 알 수 있는 백여우의 모피로 장식된 코트와 갈색의 롱부츠가 얼음세공과 같이 정교한 외모를 한층 더 돋보이게 한다.

양갓집의 규수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가녀린 체구임에도 불구하고, 하계를 내려다보는 녹색의 두 눈동자는 어디까지나 오만하면서도 냉정했다.

손대는 것만으로 베어질 듯한 날카로운 기백, 당장이라도 터질 듯이 흘러넘치는 마력.

잘못 볼 리도 없다, 틀림없는 서번트......!


“이런, 이런, 마스터. 그렇게 당황하지 말게나.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는 것도 이해는 가지만, 아무리 그래도 상대 앞에서 그리 노골적으로 티를 내서야 얕보이는 법일세.
외모로 상대를 위축 시킬 수 없다면, 적어도 태도만이라도 당당해야 하는 거야.”

“……시끄러워, 영감탱이.”


노인의 말에 욕설로 대답하면서도, 그 말대로 네르피스는 자신을 추슬렀다.

애시 당초 당황한건 노인이 상대 서번트에 대해 알려주는 게 늦었기 때문이라거나, 그러는 노인 역시 위압감을 주는 외모하고는 거리가 멀다거나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그런 건 무사히 살아남은 뒤에 해도 늦지 않다.

그보다 신경이 쓰이는 것은, 방금 전의 적 서번트가 말한 대사.
저 소녀의 말투는 어쩐지 자신의 서번트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던 듯한 느낌 아니었던가?


“……혹시나, 해서 묻는 거지만. 당신, 저 서번트와 구면인거야?”

추궁하는 듯한 네르피스의 질문에, 노인은 딱히 찔리는 기색도 없이 대답했다.


“이런, 말하는 걸 깜박했었군! 낮에 시내를 돌아다니다 잠깐 만났었네. 뭐, 생각도 깊고 귀여운 면도 있는 좋은 아가씨야.”

“‘말하는 걸 깜박했었군!’이면 다냐! 그런 일이 있었으면 바로바로 보고하라고 이 망할 영감탱이!”

“허허, 그렇게 화내지 말아주게나. 타인의 실수를 너그럽게 용서해주는 어른의 도량이라는 거 아닌가.”


그런 두 사람의 대화를 보고 무엇을 생각한 것일까, 조금 시큰둥한 표정으로 소녀는 입을 열었다.


“이 나를 앞에 두고 한가롭게 마스터와 대화라니 여전히 실례되는 남자네.

머리에 곰팡이라도 피어있는 거 아냐? 뭣하면 은행처럼 밟아줄까? 울면서 기뻐해 봐.”

만약, 정말로 그런 거라면 그 낙관채로 짓밟아 버리겠다고 소녀의 눈동자가 소리 없이 말하고 있었다.


“설마, 공사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진 않다네. 그런 온정을 기대한 다는 것 자체가, 자네와 내가 보낸 그 시간을 모욕하는 것과 다름없지.”

노인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평소와 같이 능청스러운, 하지만 어딘지 모를 단호함이 담긴 어조로 대답했다.

그 대답이 신경에 거슬린 것일까, 소녀는 조금은 느슨해진, 하지만 여전히 차가움을 띈 목소리로 물었다.


“……마치 내가 당신과 보낸 시간이 특별한 것처럼 말하는 건 그만둬.
심히 불쾌해. 눈에 거슬려. 여기서 시작해도 난 상관없는 데?”


어느새 인가, 소녀는 허리춤에 있는 무기의 자루에 손을 대고 있었다. 날의 모습을 보지 않는 이상 확신은 할 수 없지만, 칼집의 형태와 길이정도로 추측해봤을 때, 아마도 샤벨이나 그와 비슷한 부류의 무장이겠지.

칼을 사용하고 있으니, 세이버, 라던가 그런 식으로 단순하게 판단할 수는 없다. 칼을 사용할 뿐인 다른 클래스라는 가능성도 있고, 애당초 저것이 그녀 자신의 진짜 무장이라는 확신도 없으니까.


노인은 침묵을 지킨 채, 네르피스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선택은 자신에게 맡긴다는 것이겠지. 네르피스의 대답여하에 의해 상황의 흐름이 결정된다.


꿀꺽, 하고 긴장으로 인해 마른 목에 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싸운다, 그 행위 자체는 별다른 문제가 아니다. 본래부터 그럴 생각으로 다른 경쟁자들을 찾아다닌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이 구도는 좋지 않았다.

서번트 자체보다, 서번트를 다루는 마스터를 노리는 편이 훨씬 용이한 수단이라는 건 기본중의 기본이고, 적에게 함부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마스터에게 있어 일종의 철칙이라고 해도 좋다.

지금부터라도 모습을 숨겨야하나? 적 마스터의 위치는 어디지?

네르피스의 머릿속을 온갖 생각이 뒤덮는 그 순간, 그녀가 가진 마술사로서의 감각이 오늘밤의 세 번째 손님의 존재를 감지했다.


“……!”

“호오. 이건 또.”

“어머? 새로운 난입자의 등장인가?”


애시 당초 기척을 숨길 생각조차 없었던 것일까, 이미 두체의 서번트가 자리를 갖춘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난입자는 아무런 주저도 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네르피스 일행과 소녀 사이의 중간점으로부터 오른편으로 10M가량의 지점.
연록빛의 마력과 함께 모여든 황금의 빛 무리가 사람의 형태를 이룬다.


무엇보다 먼저 다른 이들의 시선을 이끈 것은, 그 서번트가 가지고 있는, 유려하다고 해도 지장이 없을만한 아름다운 무장들의 모습이었다.

백색과 에메랄드빛으로 이루어진 갑주와, 나무로 이루어진 자루를 가진 한 자루의 장창.

단순한 갑옷이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화려한, 드레스와 갑옷을 양립시킨 듯한 디자인은 실용성보다도 각종 행사에 사용하기 위한 의례용 장비로서의 역할을 중시하고 만들어졌다는 것을 말해주었고,

언뜻 보기엔 초라한 외형임에도 불구하고 심상치 않은 마력을 품은 창은, 그 정체와 소유자의 클래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세이버, 아쳐와 함께 최강의 이름을 지키는 3대 기사 클래스의 일각.


“……창의 영령(Lancer).”


네르피스의 중얼거림을 들은 것일까, 면갑[面甲]으로 가려진 서번트의 시선이 네르피스 쪽을 향한다.


“...윽!”

순간, 전신을 기어가는 듯한 소름에, 그녀는 몸을 떨었다.

스스로에 대한 자부와, 얼음과 같은 냉정함으로 비롯된 소녀의 여제와 같은 위압감도,

장난스러운 태도 속에서도 때때로 모든 걸 꿰뚫어보는 노인의 현자와 같은 예리함도,

새롭게 나타난 서번트에게서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그저, 고요했다.
영웅으로서의 기백도, 전사로서의 기세도, 강자로서의 위압도, 아무것도 없다.
그저 한 결 같이 주어진 작업을 처리할 뿐인, 그런 기계와 같은 무기질적인 눈동자.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린 네르피스와 백록의 서번트를 가로막는 형태로, 노인이 앞으로 나선다.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네르피스를 보호하기위한 행동이었다.


“흠. 그 모습, ‘랜서’라고 부르면 되겠나?”

확인하는 듯한 질문에, 백록의 서번트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글쎄, 좋을 대로 판단해. 당신에게 그렇게 보인다면 그런 거 아니겠어?”

들려온 목소리는 무덤덤하긴 했지만, 그래도 확실히 인간다운 기복을 갖춘 것이었다.

스스로도 깨닫지 못한 채,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네르피스의 귓가에 이곳에 있는 또 한명의 서번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제법 기세가 좋네. 마음에 들어, 당신.”

순간, 주변에 존재하던 공기의 온도가, 분명하게 내려갔다.
착각도 무엇도 아니다, 당사자가 아닌 네르피스조차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는 영하의 살의.

컨테이너 박스 위에서 백록의 서번트를 바라보는 소녀의 시선을 본 순간, 네르피스는 깨달았다. 방금 전까지 소녀가 자신과 자신의 서번트에게 보내고 있던 적의는, 그녀의 ‘진심’에 비한다면 편린이라는 말조차 부족한,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이름 있는 장인이 만든 것 같은 도자기 같은 얼굴이 일그러지는 순간이 기대돼.
굳게 닫힌 그 입술 사이에서 들려오는 단말마는 필시 천상의 악곡과도 같겠지.
손발을 자르고 박제로 만들어서 내 방에 장식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끼릭, 끼리릭 하고 소녀가 앉아 있는 컨테이너박스로부터 비명과도 같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소녀가 특별히 무언가를 한 것이 아니다. 그저, 그녀의 감정에 호흥하듯이 흘러넘치는 마력과 그 기세에 좌석 역할을 하고 있는 컨테이너박스가 버티지 못할 뿐.


네르피스는 똑똑히 이해했다.

서번트가 아무리 사람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도, 아무리 평범한 사람처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해도, 그 정체는 영령. 현대로서는 닿을 수 없는 신비 위에 존재하는, 명명백백한 마도의 괴물이라는 것을.


“그 새하얀 목덜미에 송곳니를 세우면 달콤한 과실과도 같은 선혈이 내 목을 적셔주겠지.
그 머리카락이 피로 더렵혀져 가는 모습은 마치 백합을 꺾는 것과도 같아서 굉장히 흥분돼.
아아──아무도 엿보지 못한 그 갑옷 속에 숨겨져 있는 피부에 ‘나’를 새겨주고 싶어.”


이미 폭론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일방 적인 선고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억지라고 생각되지 않는 것은, 소녀가 가진 품격과 오만하게조차 느껴지는 절대적인 자신감 때문인가.


“…….”

소녀의 말에, 백록의 서번트는 침묵했다.
분노로 말이 막힌 것도, 기가 막혀해 하는 것도 아니다.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소녀의 말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고, 그 결론으로서 한 가지 답을 이끌어내었다.


“꽤나 멋진 취미를 가지고 있는 모양이네.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지만.”


백록의 서번트의 대답에, 소녀는 아주 잠시 눈을 크게 하고, 이내 재미있는 농담이라도 들은 것처럼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그래, 맞아! 나는 쉽게 망가져버리는 장난감은 싫어.
당신이라면 그럴 염려는 없을 것 같네. 조금 가볍게 치는 정도로는 죽지 않겠지?
기대해도 좋아. 나중에 부모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을 바꿔줄 테니까.”


대답의 내용 그 자체는 호의적이면서도, 소녀로부터 내뿜어지는 기세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단어 한 음절 한 음절이 끝날 때 마다 살기는 더욱 농밀해지고, 적의는 더욱 날카로워 진다.

천진난만한 웃는 얼굴과 얼음장 같은 살의.
어느 한쪽이 거짓이라는 것이 아니다.

그저, 소녀에게 있어 그 두 가지가, 아무런 부자연도 없이 양립 가능한 요소라는 것 뿐.


공기는 당장이라도 터질 듯이 팽배해져 있었다.

소녀가 앉아있던 몸을 일으킨다. 백록의 서번트가 창을 부여잡는다.

이미 싸우기로 마음먹은 두 전설을 막을 방법은 없다.


앞으로 수초 후, 후유키시의 항구는 신화의 전쟁터로서 탈바꿈한다.


만약 그 운명을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면……
그것은 지금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부조리에 몸을 담은 존재뿐.

“상황이 나쁜데.”

 노인은 말했다.

“이런 거창한 일은 수순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지.”


첫 시작은,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였다.
그와 동시에 고요를 깨트리듯이 울려 퍼지는, 낮게 웅성거리는 듯한 이명.

그 기괴한 소리의 근원이 사방의 컨테이너 박스들 사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깨닫는 순간, 정체를 알 수 없던 소리는 모든 것을 조롱하는 듯한 음악 소리로 뒤바뀌어 있었다.


경악, 호기심, 의아.

가지각색의 시선을 모으며, 오늘밤 항구에 초대된 또하나의 서번트가 무대 위의 주역처럼 당당하게 한 발자국을 내딛는다.


원곡─'고스트 버스터즈 테마'
편곡─'노인'
보컬─'운전수'
반주─'운전수'


한쪽의 스피커가 소리쳤다.


"고고한 영웅이 근처에 있다고?
두려워 할 필요 없어
우리는 누구를 부르지?"

"서번트 버스터즈!"


몸을 흔드는 노인의 스텝에 맞추듯, 또 다른 스피커가 후렴을 외친다.

"기껏해야 보구 따위로?
뭐 더 심할 수도 있지
우리는 누구를 부르지?"

"서번트 버스터즈!"

볼륨은 점차 커져가, 이미 음악소리는 항구 전체를 뒤덮을 정도 였다.

노래가 절정에 다다른 순간, 노인은 크게 외쳤다.


“난 영령 따위 두렵지 않아!”

 

“이... 이, 바보 영감이....!”

네르피스의 얼굴은 경악과 분노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


“……쯧.”

소녀는 노인의 행동을 진심으로 역겹다는 듯이 날카롭게 째려보았다.


“…….”

백록색의 서번트는 노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음악소리는 계속 된다.

"갑옷에 창이라고?
승산이 없다고?
우리는 누구를 부르지?"

"서번트 버스터즈!"

"아름다운 외모?
강대한 마력?
우리는 누구를 부르지?"

"서번트 버스터즈! 오우!"

 

한 스피커는 부드럽게 말했다.

"난 영령 따위 두렵지 않아."

다른 스피커는 단호하게 외쳤다.

"난 영령 따위 두렵지 않아!"

그리고 두 스피커는 합창했다.

"누구를 부르지? 서번트 버스터즈!"

 
"누구를 부르지? 서번트 버스터즈!"

 
"누구를 부르지? 서번트 버스터즈!"

음악이 끝나는 순간, 노인은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었다. 시선을 하늘에 두고 숨을 고르는 듯하더니, 이내 허리를 꾸벅 숙이며 세 청중들에게 인사했다.

그러더니 씨익 웃고는, 한 손을 내밀며 V자를 그렸다.

“Love&Peace.”


네르피스는 확신했다.
자신이 뽑은 서번트는 뇌내 꽃밭의 머저리인 게 분명하다고.

자신에 대한 마스터의 평가가 마하의 속도로 하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 지, 노인은 넉살좋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떤가? 조촐한 무대였지만, 모두들 즐겨주었다면 기쁘겠는데.”

노인의 질문에, 소녀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당신, 배우로써의 재능은 전무한 것 같네.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어. 그야말로 폐품.
지금 이 성배전쟁에서 가장 무가치한 생물이 누군지 내 입으로 직접 말해줄까?”

그렇게 차갑게 굴지 말게. 성배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경쟁자들을 쓰러트릴 필요가 있다. 그 대전제가 뒤집히지 않는 한, 서번트들간의 싸움은 불가결하지.”


노인의 대답에, 소녀는 쌀쌀맞은 눈빛으로 응수했다.


“그걸 옆에서 중단한 이상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치를 각오는 되어있겠지?
미리 말해두겠지만 당신은 굳이 때리지 않아도 될 정도로 추악한 얼굴이니까,
쓸데없는 노력은 들이지 않겠어. 저먼 스플렉스로 끝내버릴거야.”

소녀의 의문에 노인은 자못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네. 그저 여기선 나에게 싸움을 맡기고, 자네는 잠시 물러나 주었으면 할 뿐이지.”

“응?”


그 제안이 어지간히도 의외였던 것일까, 소녀는 두 눈을 깜빡였다.


“잠깐, 그게 무슨 소리야!”

한편, 멋대로 진행되어 가는 상황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선 건 네르피스 였다.
이 서번트의 상식을 벗어나는 행동에는 어느정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하고, 자잘한 것 정도는 넘어가자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지금 노인의 행동은 가볍게 그 허용량을 넘고 있다.

 

“아니, 그렇게 흥분하지 말게나. 어차피 다른 서번트와 싸울 예정이 아니었던가. 그저 그 상대가 바뀔 뿐인 이야기야.”

“그건, 그렇지만…….”

도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걸 납득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애당초, 전술이라는 것은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변화시켜야하는 것. 기존의 방침을 따른다고 해도, 1-1이었던 방금 전과, 또 다른 서번트의 등장으로 삼파전의 형태를 띠게 된 지금은 전혀 다르다.

다른 진영의 두 서번트가 대결하는 도중에 어부지리를 노릴 수도 있는 상황에서, 굳이 손해 보기 좋은 포지션을 자진해서 맡아주어야 할 필요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런 네르피스의 불만을 눈치 채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알면서도 무시하는 것인지. 노인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래서, 어떤가?”

“……흥, 머리에 곰팡이가 핀 것 뿐만 아니라 뇌도 3bit인 모양이네.
자신이 저 서번트와 겨룰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한다면 큰 오산이야.
하지만 그 무모함은 의외로 싫지 않으니까 어디 하고 싶은대로 해 봐.”


물론 전투가 끝난 뒤 다시 나한테 맞을 준비 해야겠지만, 라고 덧붙인 뒤 소녀는 다시금 자리를 잡고 컨테이너 박스위에 걸터앉아 다리를 흔들었다. 아까 전까지의 살벌한 모습이 무색해질 정도로 빠른 태도변화였지만, 요컨대 이건이거, 저건 저거라는 자기 기준이 확실한 거겠지.


“그거 무서운 말이군. 그럼 남은 건 우리의 아가씨 쪽인데……. 잠시만 실례하겠네.”

뭐? 라고 네르피스가 의문을 느끼는 것보다 먼저, 노인은 품속으로부터 검은 천을 휙 뽑아들더니, 그대로 자신의 마스터 위로 뒤집어 씌웠다. 너풀거리며 네르피스의 신체를 뒤덮는 천막.

“뭣……!"

안쪽으로부터 발버둥 치는 듯한 네르피스의 형상이 비치는 것도 잠시, 점차 줄어들던 그녀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툭, 하고 바닥에 떨어진 천막을 힐끗 쳐다보고는 노인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태연자약한 태도로 중얼거렸다.


“준비 완료로군. 갑작스러웠지만 뭐 이해해주길 바랄 수밖에. 음? 다들 표정이 왜 그런가?”


“…….”

서번트들, 그리고 사역마나 서번트와의 시각 공유 등으로 같은 광경을 보고 있던 마스터들까지도 한순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서번트가 마스터를 공격했다? 단순히 모습을 감추는 마술이나 무언가의 도구를 사용했을 수도 있으니 확신을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방금 전의 네르피스가 보였던 당혹의 표정은 진짜였다.

주변의 침묵을 어떤 식으로 생각한 것인지, 노인은 고개를 움츠리고는 어깨를 추욱 늘어트렸다. 어린아이나 할법한 애교 섞인 동작이 묘하게 어울리는 것은, 이 서번트가 가진 특유의 장난스러운 분위기 때문일까.


“흐음. 곤란하군. 질문을 했는데 무시당하면 서글픈 법이라네. 나이가 들면 더더욱 그렇지.”


“──그다지, 아무것도. 어차피 해야 할일은 변하지 않으니까.”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은, 백록의 서번트 였다. 그녀 자신의 키를 넘는 길이의 창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한손으로 가볍게 휘두르며, 그 날을 노인에게로 향한다.

그리고 일보[一步].


쾅!

울려 퍼지는 굉음.
실로 섬광과도 같은 기습이었다.
내딛었다고 생각한 순간에는 이미 목표를 꿰뚫고 있는 창의 일격은 평범한 인간, 아니 설령 마술사라고 해도 시인하기 어려운 영역에 이르러 있다.

그것에 반응할 수 있었던 것은, 노인 역시 인외의 리에 몸을 두고 있는 서번트였기 때문. 머리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쳐지는 창의 궤도를 몸을 비트는 것으로 피하고, 그 직후 뒤로 물러선다.

 강대한 충격에 주변의 컨테이너가 가볍게 떨리고, 지면은 문자 그대로 박살나 거미줄 같은 금이 달리고 있었다. 노인은 작게 식은땀을 흘렸다.

“이것 참, 무기도 들지 않는 노인을 상대로 너무하는구먼.”


투덜거리는 말에도, 그녀는 꺼림칙함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태연한 태도로 대답했다.

“영웅님들의 정정당당 승부 같은 거엔 흥미가 없어서 말이야. 비겁하다고 욕하고 싶다면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그렇네, 고전적인 대사를 사용한다면──”

삐걱삐걱, 하고 움켜진 창에서 비명이 울려 퍼진다. 가녀린 팔에는 있을 수 없을 정도의 근력. 애당초 정상적인 법칙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존재에게, 근밀도가 어떻다던가, 체격이 어떻다던가 하는 말이야 말로 무의미.

내딛은 걸음은 지면을 부수고, 몸놀림은 공기를 가르며, 그 공격은 스치는 것만으로 적을 분쇄한다.


“──방심하는 쪽이 멍청한 거야, 유쾌한 영웅씨.”


방금 전이 위력을 중시한 내려치기였다면, 이번에는 수와 속도에 중점을 둔 찌르기였다.

흉곽, 대퇴, 명치, 상완, 인중.

몰아붙여오는 연격의 속도는 하나하나가 번개와 같이 빠르면서도 목표를 향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내뻗어지는 공격은 기계와 같이 정밀.


무기를 꺼내들어 반격하기엔 너무 늦는다. 피하는 것만으로는 연이은 2, 3의 공격에 꿰뚫릴 뿐.

허나, 그렇다면 지금 노인이 띄우고 있는 미소는 그저 사태를 깨닫지 못한 어리석은 자의 우둔함일 뿐인가?


“하하하! ──그 말,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일세, 아가씨.”

답은 반대.
미소의 의미는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한 자조도, 체념도 아니다.
그것은, 상대방이 자신의 꾀에 넘어왔다는 것을 확신한 악동의 미소.

노인과 랜서 사이의 지면, 노인이 품속으로부터 꺼내들어, 자신의 마스터를 사라지게 만드는데 사용했던 천막이 솟구쳐 랜서에게로 덮쳐든다.

물론, 겨우 그 정도의 사태로 당혹할만한 랜서는 아니다. 최초의 일격으로 천을 단숨에 꿰뚫고, 그대로 옆으로 휘두르는 것으로 거추장스러운 방해물을 제거한다.

하지만 그 틈이야 말로, 노인이 기다리던 것이었다.


천막을 걷어내는 것과 동시, 지근거리에서 폭탄이라도 작렬 한 듯한 굉음이 랜서의 신체를 강타했다.

아까 전 음악소리의 수배, 아니 수십 배의 출력으로 스피커가 소리를 내뿜고 있었다. 이미 물리적인 폭력이나 다름없는 파동에 지면이 떨리고 컨테이너가 물결친다.

지향성을 가진 음파에 의한 공격, 그렇게 깨닫는 것과 동시에 노인에게로 접근하려한 랜서였지만, 순간 그 신체가 휘청거린다.

 귀 안쪽으로부터 피가 흘러나온다. 균형 감각이 급격하게 어그러지고, 뿐만 아니라 시각이나 촉각조차 제 기능을 잃고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뇌 그 자체를 직접적으로 휘젓는 것과 같은 불쾌감에 랜서는 한쪽 손으로 땅을 짚었다.

거대한 음량에 의한 충격뿐만 아니라, 출력하는 소리 그 자체에 서번트의 감각조차 혼란시키는 특수한 이명이 섞여 있는 마성의 스피커.

그것은 이미 단순히 쇼를 위한 도구가 아닌, 명명백백한 ‘무기’였다.

 

“난 이래서 음악이 좋단 말이야.”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그런 말을 중얼거리는 노인에게, 관전을 하던 소녀는 기가 막힌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혀를 굴리는 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무능이야? 어디까지 날 실망시킬 셈이지?”

“글쎄.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나?”


돌아온 대답에 소녀는 어깨를 으쓱였다.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다니 매너랑 담을 쌓은 모양이네. 나랑 담소를 나눌 여유가 있다면 본 실력을 보이는 게 어때? 확실히 소리를 이용한 공격은 방어도 회피도 불가능하겠지만. 소리의 근원인 기기 자체를 부서 버리면 그걸로 끝일 텐데.”


“하하, 걱정 말게나. 저래보여도 저건 특제품이라 코끼리가 와서 들이받아도 문제없는──”

쿵, 하고 노인의 말을 차단하듯이 무언가를 때려 부수는 듯한 파쇄음과 작은 폭발음이 일어난다.

그다지 보고 싶지 않다는 표정으로 노인이 시선을 돌리자, 그곳에는 지금 막 스피커를 꿰뚫어 그 음파를 강제적으로 멈추어버린 랜서의 창이 다시금 황금빛의 가루로 변하며 주인의 손으로 되돌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스피커 하나분의 출력이 줄어든 것으로 인해 부담이 덜어진 것일까. 스피커로부터 다소 떨어진 장소, 앉은 자세에서의 투창만으로 목표물을 박살내버린 랜서가 서서히 몸을 일으킨다.

감각이 맛이 가버린 상태에서 목표물을 정확히 꿰뚫는다는 그 기술의 정밀함보다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방해물을 부순다는 결론을 내리고 실행한 그 무지막지함에 천하의 노인조차도 잠시 기가 질렸다.


큿, 하고 분한 듯이 소녀는 중얼거렸다.

“역시 양보하는 게 아니였어. 내가 때리고 싶었는데!”


“……이젠 A/S 기간도 끝났는데 말이지.”

태연한 듯이 말하는 노인의 이마에는 희미하게 식은땀이 맺혀있었다. 남은 스피커의 숫자는 하나. 단순 계산으로 출력이 절반으로 줄어들어든 셈이지만, 감각을 휘저어놓을 정도의 힘은 남아있고, 방금 전의 데미지 역시 남아 있는 것인지 랜서의 움직임 역시 아직까지 둔하다.

 하지만, 그것도 지금만의 이야기. 피해가 완전히 회복되고, 다른 하나의 스피커마저 파괴되었을 경우에 어찌될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정면으로 붙었을 경우 승산이 없다는 것은, 이미 방금 전의 공방으로 확인이 끝난 상태. 노인이 승리를 거머쥐기 위해서는 음파로 인해 랜서의 움직임이 둔한 지금 밖에 없다.

 그렇기에 필요한 것은 선택이었다.


 랜서의 주변으로 지나치게 다가가면 음파의 영향을 받게 된다는 걸 생각해볼 때, 근거리용의 무장은 적합하지 않다.

 중, 원거리용의 무장, 그것도 상대적으로 막아내기 용이한 단발성의 공격보다는, 다양한 궤도에서의 연속적인 공격이 가능한 종류의 것이 바람직.

 이내 조건에 부합하는 물건을 떠올리고는, 노인은 품속으로부터 그 물건을 꺼내들었다.


 “…하아?”

 무심코 의문성을 내버린 소녀를 탓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노인이 꺼내든 물건은, 그 정도로 이 장소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으니까.

 빨간색 스펀지 장갑. 스포츠 경기 응원전에서 흔히 쓰는, 손가락질하는 모양의 그것을 한 손에 낀 노인의 모습은 이 상황에 턱없이 어울리지 않도록 한가한 것이었다.

 하지만 노인은 어디까지나 진지한 표정으로 장갑의 검지를 랜서에게 겨누고 말했다.

“빵야.”

장난과도 같은 그 행동에 마주하고 있던 랜서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허공을 향해 창을 휘두르는 것과 동시에, 그녀의 앞에서부터 무언가 부딪혀 터져나가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리고 노인은 씩 웃었다.

“빵야! 빵야! 빵야! 빵야! 빵야! 빵야! 빵야! 빵야! 빵치키! 빵! 치키! 빵! 빵! 치키! 치키! 빵! 치키! 빵! 야! 빵야! 빵야! 빵야! 빵야! 빵야! 빵야! 빵야! 빵야! 빵야! 빵야! 빵야! 빵야! 빵야! 빵야! 빵야! 빵야! 빵야! 빵야! 빵야! 빵야! 빵야! 빵야! 빵야! 빵야! 빵야! 빵야! 빵야! 빵야! 빵야! 빵야! 빵야! 빵야! 빵야! 빵야! 빵야! 빵야! 빵야! 빵야! 빵야! 빵야! 빵야! 빵야! 피유! 빵! 빵! 빵! 브레드! 크로와상! 바게트! 잼! 마멀레이드! 홍차! 다즐링! 디스코!”


 장난치는 듯한 노인의 연호와 그로 인한 결과는 차라리 우스울 정도로 맞물리지 않았다.

 쏘아져 나가는 공기의 탄환들은, 수없이 많은 잔영을 남기며 그 여파만으로도 주변의 사물들을 종이짝 같이 찢어발긴다. 그러한 것이, 일반인의 시야로조차 어렴풋이 인식할 수 있을 정도의 과밀도로 공간을 메우며 난사되고 있는 것이다.
 
 피하는 것은 어렵지만, 막아내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여하튼 면단위로 덮쳐오는 공격을 단 한발도 놓치지 않고 완벽하게 처리해야하는 것이다. 한번이라도 실수를 한다면 그걸로 끝.

 공격을 받아 자세를 흐트러트리는 것과 동시에 연이어지는 후속타들에게 몰매를 맞고 쓰러지는 운명이 기다릴 뿐이다.
 
 정상적인 상태에서조차 시도를 주저할 곡예라고 하는데, 걷는 것조차 원활하지 않는 상태에서 도전한다는 것은 이미 광기를 넘어 불가능이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기분 나빠. 대체 어디까지 3류인 거야?”

그 당연한 결론을, 소녀는 비웃었다.

가능할 리가 없다고 포기하는 단념을.
있을 리가 없다고 부정하는 체관을.

아아, 정말로 어리석다.

“이런 거, 애들 장난, 눈속임에 지나지 않아.

──시시하네. 병정 놀이 따위로 기뻐할 거라고 생각하다니, 시청자에 대한 모독이야.”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는 광경이, 그녀의 시야 아래에 펼쳐지고 있었다.


막아낸다. 막아낸다. 막아낸다.

전방, 측방, 때로는 아래나 위에서 뱀과 같이 기이한 궤도를 그리며 쉴 새 없이 휘몰아치는 공격을 손에 쥔 한 자루의 창만으로 몇 번이나 받아내고, 튕겨내기를 반복하는 랜서.

실로 두려워해야할 것은 빠르면서도 기묘한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내는 그 견고한 방어력이 아니라, 균형감각 자체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지 않을 텐데도 그걸 일절 느끼게 하지 않는 침착함 쪽이었다.

전장에 있어서 감정이란 것은 여분의 것이지만, 동시에 자신과 싸우는 상대 역시 마음을 가진  인간이라는 느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분노를 보인다면 조롱으로 맞이하고, 적의를 드러낸다면 그에 호응해 전의를 불태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랜서의 움직임에는 그러한 ‘열’이 없었다.

전투에 사적인 감정은 배제하는 성품, 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까지 드문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희망을 한데 모으는 ‘영웅’으로서는 부적격일지 몰라도, 맡겨진 임무를 다할 뿐인 병사로서는 이상적인 태도라고도 할 수 있으니까.

실제로 옆에서 그 모습을 관전하던 소녀는 그렇게 판단했고, 실제로 직접 랜서 에게 물었더라도 긍정의 대답이 돌아왔겠지.

하지만 노인의 직감은, 그것이 다르다. 라고 외치고 있었다.

랜서와 직접적으로 무기를 맞대고 있는 노인이기에야 말로 알 수 있는, 기묘한 위화감.
감정이 없다거나, 희박하다거나, 그런 것과는 다른. 본래 있어야할 자연스러운 전체상에서 특정한 무언가 만을 강제로 걸러내 버린 것 같은…….


“──전투 중에 사색에 잠기다니, 꽤나 여유롭잖아.”

 순간, 들릴 리가 없는 목소리에 노인의 정신이 되돌아온다.

 노인의 바로 앞, 낮게 몸을 숙인 랜서가 어느새 인가 지근거리까지 접근해 있었다.

 단 한 번의 빈틈. 시간으로 따진다면 겨우 눈 하나 깜빡할 정도의 짧은 순간이었지만, 계속해서 일그러지는 감각의 오차를 조금씩 수정해나가고, 노인과의 거리를 재며 기회를 노리고 있던 랜서에게 있어서는 충분하고도 남을 기회였다.

 정확하게 심장을 노리고 내뻗어지는 일격. 노인이 반응을 일으킬만한 틈조차 없이, 창날이 그의 정장에 파고들어가는 순간.


 노인의 의복이 폭발하듯이 부풀어 올랐다.
 
 푸슈, 하고 창이 적중한 지점으로부터 공기가 새어 나가는듯한 소리를 내며, 노인의 신체가 맹렬하게 치솟았다.

 바람 빠진 풍선마냥 흐느적흐느적 항구 이곳저곳을 정신없이 날아다니면서도 노인은 소리쳤다.

 “이왕 공격할거라면 타격으로 해주질 그랬나! 모처럼 에어백을 준비해뒀는데 날붙이로 공격해버리면 준비해뒀던 명대사를 할 수 없지 않게 되지 않는가!”
 

 아무래도 노인에게 있어서는 창으로 심장을 관통당할 뻔 했다는 일보다도 준비해두었던 연출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 더 분개할만한 사실인 모양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겠지? 

내 눈을 오물로 더럽힌 죄값은 3배로 치르게 해줄 거야.”


 기가막히다는 듯한 소녀의 중얼거림과, 동시에 콰직, 하는 파쇄음이 울려퍼진다.

 남아있던 다른 한쪽의 스피커마저 부서 버린 후, 말없이 돌아서 자신을 바라보는 랜서의 모습에 어느 새인가 바람이 다 빠진 것인지 지면에 착지한 노인이 불평을 흘렸다.

 “그거 비싼 건데. 너무하는구먼.”

 “뭐야, 손해배상이라도 해주라고?”

 랜서는 무덤덤하게 받아쳤다.


 “이왕이면 정장 값도 같이 부탁하네.”

 “이쪽 마스터에게 부탁이라도 해보던가. 그때까지 당신이 살아 있을 때의 이야기지만.”

 “고객센터까지 직접 찾아가야 하는 건가? 서비스가 나쁘군.”

 “뭐, 확실히 친절하고는 거리가 먼 성격이지만.”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그렇게 중얼거리고, 랜서는 다시금 자세를 취했다.
 일체의 군더더기가 없는 움직임. 여태까지의 전투로 입은 피해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 모습에,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지친 시늉이라도 좀 해주지 그러나. 남자란 생물은 때때로 여성의 가녀린 모습에 흔들리는 법이라네.”


 “상대가 바라봐주기만을 기다리는 꽃 역할 따윈 사절하겠어.”
 
랜서는 쌀쌀맞은, 하지만 여태까지의 것 중 가장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다.


 “이런, 이런. 정말 무서운 아가씨로군 ……얼레?”

 창을 거둘 생각은 조금도 없는 듯한 그녀의 모습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다시금 품속에서 도구를 꺼내려하던 노인이 이상을 깨달은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움직임이, 둔하다.
피부에 직접적으로 와 닿는, 분명하게 겨울바람에 의한 것만이 아닌 냉기.

 노인이 발밑으로 시선을 향하면, 그곳에는 대체 어느 새 생겨난 것인지 작은 빙판과 같은 것이 점차 주변으로 영역을 확대해나가며 주변의 사물들을 얼어붙게 만들고 있었다.

 빙판의 아래쪽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기묘한 문양과 같은 글자.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노인이 해석하는 와중에도 침식은 점차 진행되어 이윽고 검은 구두를 비롯한 두 다리는 절반가량 얼어붙은 상태였다. 제대로 힘을 주면 떼어낼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빈틈을 눈앞의 상대가 놓칠 리도 없고──


 “Ahhhhhhh……. Wait a minute, please?"


 식은땀을 흘려가며 필사적으로 유예를 호소하는 노인의 요청에, 랜서는 여상한 태도로 대답했다.

 “거절할게."
 
 랜서의 신체가 비틀리는 것과 동시에, 금목(金木)의 창이 투척된다.
 쏘아진 창은 이번에야 말로 이변 없이 목표에 적중하고, 창에 꿰뚫린 채로 뒤로 날아간 노인의 신체가 소녀가 앉아있던 컨테이너 박스에 박혀들었다.

 대못에 박힌 짚신인형처럼 허공에 매달린 노인의 신체가 단말마와 같은 경련을 일으킨다.

 최후의 순간, 마지막 힘을 쥐어짜 위를 바라본 노인은, 씁쓸한 미소로 중얼거렸다.


 “미안하군 마스터. ────여기선, 속옷이 보이지 않아…….”


 그 말을 마지막으로, 노인의 고개가 축 늘어진다.

 황금빛의 입자로 변해가는 노인의 신체를 바라보며, 소녀는 질린 듯이 중얼거렸다.


 “……욕망에 충실하다고 할지, 머저리라는 표현조차 양호하게 느껴지는 유언이 이 세상에 존재할 줄이야.”

 반대쪽에 있는 랜서의 표정 역시 그리 밝지는 않았다.
 다만, 그것은 어이없음과 한심함이 섞인 소녀의 것과는 다르다. 좀 더 씁쓸한, 마치 질 나쁜 장난에라도 당한 듯한 랜서의 얼굴을 보고는, 소녀는 뾰루퉁한 얼굴로 물었다.


“겨우 그걸로 만족한 건 아니겠지?
어때? 부족한 것 같으면 내가 저 노인 따위에게 지지 않는 쾌락을 선사해줄 수 있는데.”


 무참하게 죽은 노인의 죽음에도, 소녀의 태도에 별다른 변화는 없다. 어차피 결국은 적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일까, 아니면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랜서는 컨테이너 아래로 다가가 창을 뽑아낸 뒤,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언제 알아차렸던 거지?”


 느닷없는 랜서의 질문에 소녀는 손가락으로 길게 늘어트려진 금발을 꼬며 대답했다.


 “처음부터…… 라고 하면 될까? 뭐 그만큼 정교한 무대였으니까, 눈치 챈 것만으로도 당신 역시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해. 비교대상이 나여서야 상대가 나쁘다고 밖에 할 수 없지만.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 이대로 계속할 거야?”


 마찬가지로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녀의 질문에, 랜서는 지금 이곳이 아닌, 다른 어딘가로 시선을 향했다.


 “……하아. 바보 같아.
뭐 됐어. 이쪽은 이쪽대로 사정이 생겼고, 이번 싸움은 내 패배라는 걸로 하겠어.”


 더 이상의 용무는 없다는 듯이, 랜서가 몸을 돌린다.


 “다음에는 이런 인형놀이가 아닌 진짜를 기대하도록 할게.”


 그 말을 마지막으로, 백록의 서번트는 빛의 무리가 되어 모습을 감추었다.


 죽은 자에게도, 떠난 자 에게도 더 이상의 말은 없다.

 이제 이곳에 남겨진 것은, 소녀 한 명. 그리고 사라져 가는 노인의 시신 하나뿐.


“이런, 이런. 결국 들켜버렸나? 하하! 그렇다 치더라도 무서운 아가씨로군. 전해져 오는 감각만으로 정말로 살해당했다고 생각했을 정도였으니 말이야. 이거 운전수 월급을 올려줘야겠는데.”

“이 바보 영감탱이가, 나한테 상의도 없이 멋대로 일을 저질러놓고 그 결과가 이거냐!”

“그렇게 화내지 말게나. 자네도 감각공유를 통해서 보았을 거 아닌가. 보구를 사용한 전투라면 모를까, 상대는 단순한 백병전에서 무지하게 끝내주는 서번트 중 하나일세. 정면으로 맞붙고도 이 정도 피해로 끝났다면 오히려 이득이라고 봐야겠지.”

“하여간 말만은...!”


 그렇기에, 허공에 울려퍼지는 두 사람의 목소리는 명백하게 있을 수 없는 것이었다.
 소녀가 걸터앉은 채 흥얼거리고 있는 컨테이너 위, 어둠에 가린 부분에서 살해당했을 터인 노인과 그 마스터인 네르피스가 모습을 드러낸다.


 소녀는 태연하게 노인을 향해 말을 걸었다.


“다음에 또 끼어들면 끓는 기름물 속에 넣어줄 거야.”

“칭찬 고마운걸. 아, 역시 그건 좀 그랬던가?”


 옆에서 화를 내고 있는 네르피스를 무시한 채, 노인은 넉살 좋게 대답했다.


 단적으로 말해서, 모든 상황은 연극에 지나지 않았다.

 시작은, 검은 천막으로 네르피스를 뒤덮었던 일.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네르피스는 실제로는 다른 지역으로 옮겨진 것에 지나지 않았고, 두 사람의 이목이 그 트릭의 정체에 쏠려 있는 순간 노인 자신 역시 대역으로 바꿔치기 되었다.

 노인의 본체와 네르피스가 숨어있던 곳은, 바로 소녀의 뒤쪽 컨테이너.

 즉흥적인 연출이었지만, 소녀는 바로 노인의 의도를 알아채었고, 이해관계의 합치 하에 두 서번트는 일시적인 협력관계를 맺었다.

 ……뭐, 본래 계획대로였다면 상대 서번트의 실력만을 알아보고 적당한 때에 물러나 전투를 소강시킬 셈이었는데, 상대가 너무 강했다고 할지, 노인이 미숙했다고 할지. 결국에 들켜 버리고 말았지만 그건 그것 나름대로…….

“흥.”

 휙 돌아서는 소녀의 모습에 노인은 음?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냥 가려고?”

“노망난 늙은이를 때리는 것만큼 재미없는 일은 없어.
역시 비명 소리는 젊은 처녀의 것이 제일 가슴에 와닿는 법인데.”

미련이라고는 없는 깔끔한 태도로 그렇게 인사를 남긴 후, 금발의 소녀 또한 모습을 감춘다.

 

무슨 말을 해도 마이동풍으로 흘려 넘기는 노인의 태도에 결국 지친 것인지, 네르피스는 피로가 느껴지는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하아……. 어찌됐든 목적은 이루었으니 우리도 이만 돌아가자. 이번에 얻은 정보를 토대로 생각해볼 것도 있으니까.”

“알겠네.”


네르피스와 함께 항구에서 떠나기 직전, 노인은 갑자기 무슨 생각에서인지 품속에서 펜과 쪽지 하나를 꺼내들고는 쪽지에 무언가를 적어 바닥으로 몰래 떨어트렸다.


“꾸물대지 말고 서두르라고.”

“너무 재촉하지 말게나. 본래 나이가 들면 걷는 것도 힘든 법이니.”


이제는 정말로 모두가 사라진 정적 속. 항구에 불어온 바람이, 노인이 떨어트린 쪽지를 감싸 하늘로 날려 보낸다.


[성배전쟁 1일차 밤. 이곳에서, 꽃을 피우다.]

-Fin-


~덤~

“음, 그나저나 말일세. 이번 일에 관련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네.”

“뭔데?”

“혹시 나가 역시나, 라고나 할까. 이미 짐작했던 일이긴 하다만…….”

“……?"

"사실 나 대신 싸웠던 운전수 말일세, 몸싸움으로는 나보다 세다네.“

“……그럼?”

“결론적으로, 난 이번 성배전쟁 최약의 서번트라는 거지. 하하하.”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우승은 포기하지. 남은 시간 동안 같이 봉사활동이나 하러 갈까?”

“어이. 잠깐. 잠깐?! 포기 빨라! 빠르다고! 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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