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악마는 카르티에를 합니다

로하 2014.03.26 14:35 조회 수 : 7




00/



     Rrrrrr... Rrrrr....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난 것은 알람 소리와 동시였다. 으으, 비척비척, 반쯤 감긴 눈을 슥슥 맨 손으로 두어 번 비빈 그림자는 곧 침대 이불을 확 밀치고는 다리를 아래로 뻗었다. 하얗고 고운 발이 살짝 맨 바닥을 더듬다 슬리퍼를 찾았고, 바닥에서 스며드는 냉기에 살짝 발가락을 옴츠렸다. 

   곧 새하얀 팔을 뻗어 침대 발치를 더듬다 담요를 찾아내고서야 그것을 몸에 두르고, 그녀는 통, 하는 소리를 내듯 가볍게 몸을 일으켰다. 확실히, 맨해튼의 10월은 한겨울마냥 추웠지만, 롱아일랜드에서 자라 옥스퍼드에서 학교를 다닌 그녀에게는 도톰한 캐시미어 담요 한 장이면 어떻게든 이기지 못할 것은 아니었다. 물론 푹신한 침대와 따뜻한 이불의 유혹은 강력했지만. 



   "...엘리아스 클라크, 23층."



     북유럽 계통에서도 보기 드문 깨끗한 은발이 춤추듯 흘러내려 등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녀 - 시에라는 가볍게 하품을 한 뒤 기지개를 쭉 폈다. 새벽 여섯 시 정각. 이른 시각이라면 이른 시각이었겠지만, 그녀에게는 큰 문제 없는 시간이었다. 정작 더 신경 쓰이는 것은 약 세 시간 후의 일. 그녀의 앞으로 일년간의 커리어를 좌우하게 될지도 모르는 10여분 간의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었다. 


     따뜻한 물로 샤워 후, 머리를 말리며 옷장 앞에서 무얼 입어야 적당할지 약 3분간 고민한 시에라는 곧 고개를 젓고는 블라우스와 스커트를 꺼내들었다. 개성이랄 것도 없이 그저 단정하기 그지없을 뿐인 새하얀 블라우스와 주름 잡힌 스커트. 얼치레마냥 보이는 꼴은 물론 아니었지만, 위부터 아래까지 무미건조를 옮겨놓은 듯한 코디였다. 아무래도 좋은 것이었지만. 


     곱게 다린 블라우스를 입고, 가늘고 곧게 쭉 뻗은 다리를 스타킹 속에 집어넣고, 스커트를 둘러입는다. 어머니에게 선물 받은 코트를 걸쳐입고, 둘째 오빠에게 작년 생일 선물로 받은 토트백을 적당히 들었다. 이 가방이 아니면 다른 것들은 전부 다 학생용 백팩이나 캠퍼스백 뿐이었으니까. 적어도 그런 걸 면접날 입고 가는 것이 썩 도움이 되지는 않으리란 것 정도는 시에라 또한 눈을 게슴츠레 뜬 채 생각해보았던 사실이었다. 그리고, 옷을 다 입었으니.. 화장? 화장..? 시에라는 조금 고민하는 표정으로 거울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말해, 화장 따위는 해 본 적도 없었고 딱히 필요성을 느끼지도 않았지만. 대학생 때에도 소로리티 같은 활동 - 이를테면 파티 걸 라이프 - 과는 연도 없었던 시에라였거니와 또 치어리딩 따위의 외모 관리에 매진하는 것과도 전혀 관련이 없었으니까. 

  아무튼, 고로 시에라는 메이크업의 ㅁ자도 제대로 모르는 아가씨였지만, 역시 아무리 그렇다해도 면접날이 되면 조금 불안해지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전부 다 한다'는 것을 하지 않는 건 - 그것도 학문이 아닌 분야에서라면 - 시에라 같은 유형의 사람조차 약간은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었으니까.


     뭐어. 그녀는 살짝 미간을 좁히며 생각하고는 결국 선블록을 꺼내어 쭉 짜 발랐다. 모양 좋은 입술에는 보습용의 립글로스. 그걸로 끝. 시에라는 비록 남들이 다 하는 것을 안 하는 것이어도 그것이 생전 처음으로 하는 어색하기 그지 없을 화장보다는 나을 것이라 예상할 정도로 충분히 현명한 아가씨였다. 여학생들의 이튼이라 불리는 성 마리아 여학교(St. Mary's School)와 옥스퍼드를 남들의 절반 기간에 졸업한 재능을 이런 예측에 발휘하는 건 아무래도 조금 아까워 보였지만. 



     겨우겨우, 익숙하지 않은 가방에 지갑과 서류 몇 장을 집어넣고 빠른 걸음으로 아파트 건물을 나선 시에라는 재빨리 새하얀 숨을 내쉬곤 발걸음을 옮겼다. 가기 전에 잠시, 끼니를 때워야 하지만... 집에서 멀지 않은 머레이 베이글에 줄이 약 서른 명은 늘어선 것을 보고, 시에라는 베이글에 대한 생각은 즉시 접었다. 현재 시각이 7시 40분. 늦진 않았지만 여유 부릴 것은 없으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아침을 거르는 것은 조금 좋지 못한 일이다. 그렇지만 또 어디 들어가 제대로 자리를 잡고 먹을 시간은 안 되고, 스타벅스는 이름을 크게 불러주는 것이 조금 불편했다. 아직 집을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주변은 익숙하지 않지만..... 잠시 고민하던 시에라는, 멀지 않은 곳에 익숙한 간판이 있는 것을 보고 금빛 눈을 반짝 빛냈다.


     뉴욕에 프레타 망제(Pret - A - Manger. 영국의 유기농 샌드위치 체인.)가 있는 줄은 몰랐다. 영국에서 학교를 나온 그녀로서는 꽤 반가울 정도의 사실이었다. 에그 샐러드를 담뿍 넣은 샌드위치를 들고 우물거리며, 시에라는 재빨리 메트로 티켓을 꺼냈다.





01/



     "──좀 비켜요!"


   "아, 죄송합니다──"



     눈이 핑핑 돌 것 같은 속도와 번잡함이다.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는 통유리의 30층 건물 로비에서, 시에라는 눈을 깜빡인 채 층별 안내만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걸음을 옮겼다. 손이 밟히면 정말 아플 것 같은 가늘고 뾰족한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지나다니는 여자들은 아이라이너를 짙게 칠한 눈으로 흘겨보는 시선을 던질 새도 없다는 듯 부산스레 움직였다. 현재 시각. 8시 50분. 번잡하고 바쁜 대도시의 아침을 멍하니 감상할 시간은 없었다. 시에라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로비를 지나 들어갔다. 경비원은 굉장히 친절하게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아, 시에라는 엘리베이터 한 대가 문이 아직 다 닫히지 않은 것을 보고 재빨리 달렸다. 말 그대로 뛴 것이었다. 비록 다섯 발짝 정도였지만, 단화만이 가능한 기적. 


     마악 닫히려던 문은, 안에 타고 있던 사람이 친절하게도 잡아 주었는지 곧 스르륵 다시 열렸고, 시에라는 그 쪽으로 시선을 올릴 새도 없이 재빨리 안으로 들어가며 가볍게 인사했다. 형식은 없지만, 좋은 집안에서 잘 배운 아가씨 특유의 정중함이 묻어나는 예의 바른 인사였다.



     "고맙습니다."


     "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기존 기록 보관 장소 카와이루나링 2012.11.20 1875
공지 이 곳은 팀 회의실 입니다. [1] 카와이 루나링 2012.02.20 1157
217 ㅇㅇ kisone 2014.04.09 3
216 타짜 명대사 ??? 2014.04.07 24
215 오프닝 kisone 2014.04.06 3
214 힣ㅣ냐ㅓㄹ미러ㅣㅁㄹ ??? 2014.03.29 6
213 준비 kisone 2014.03.26 3
» 악마는 카르티에를 합니다 로하 2014.03.26 7
211 오물은 소독이다 햣하 [2] 방긋이 2014.03.25 9
210 오늘 밤 사랑으로 변하는 행복한 꿈 속에서 만나요 카구릴리 2014.03.24 5
209 비밀 kisone 2014.03.20 2
208 ㅇㅇ ??? 2014.03.20 12
207 시카고 딥디쉬 스모어 로하 2014.03.14 1
206 당신의 세상에서 로하 2014.03.12 2
205 ??? ??? 2014.03.09 26
204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로하 2014.03.09 2
203 뿌뿌뽕 로하 2014.03.07 5
202 ??? ??? 2014.03.06 4
201 우파루파 file 2014.03.01 36
200 kisone 2014.02.26 4
199 딸기맛 영양제 로하 2014.02.25 1
198 소(매)치(기) 올림픽 로하 2014.02.21 1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Sketchbook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