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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세상에서

로하 2014.03.12 04:23 조회 수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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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네가 보고 있는 하늘은 무슨 색일까

분명 푸르고 또 높고 청아하겠지


언어인 채로는 안타까워서

몇 번이고 서툴게 쌓게 될 뿐

소리가 되지 않는 안타까움 모여서

이 마음, 너에게 닿기를





01/



     ───아직, 이른 새벽이니까. 그렇게 말하며 그는 미소지었다. 이대로 있어도 자신은 좋지만, 그녀 쪽은 괜찮느냐고 물었다. 물론 시에라에게 또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새벽 다섯 시, 그녀의 기준에는 무난히 일어날 시각이었다. 비록 같은 지붕 아래 머무르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직 너무도 이르고 이른 새벽녘이겠지만. 하여 시에라는 무심코, 아무렇지 않노라 대답할 뻔 했다. 거의 그럴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윽고 생각이. 이대로 또 둘만이 있는다면, 이 고요한 새벽 속에서, ... 계속해서 흔들려대는 자신의 심장 소리밖에 들리지 않을 것 같다는 추측에까지 미치자, 그녀는 조금 당황스레, 경황 없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투명히 흐르는 산사의 종소리마냥, 나즈막하고도 듣기 좋은 웃음이 잠시 귓가에 담겼다. 



   "──그럼, 시에라(Shera). 잠시 후에, 다시..."



     시에라는 애써 평정을 가장하며 그러마고 고개를 끄덕였다. 보드랍고 작은 발이 조심스레 움직였다. 복도의 나뭇바닥이 그 오랜 시간 탓인지 슬며시 삐걱이며 울었고, 시에라는 그 소리에 놀라 순간 몸을 움찔했다. 연꽃 잎을 즈려밟는 듯, 나비가 꽃잎에 내려앉는 듯 요정 같은 몸짓이었지만, 나무가 살아온 그 오랜 세월마저 버텨낼 재간은 없었다. ...아니면, 그녀가 지금 그마저 잊을 정도로 다른 것에 열중해 생각하는 중이었던가. 색 없는 세상에서, 그녀는 살짝 꽃 같은 입술을 앙다물었다.



     시에라는 이유를 몰랐다. 어째서, 그녀는.





02/



     그녀는 방 안에 곱게 앉아 생각 중이었다. 새하얀 방안. 새하얀 세계. 온통 하얗기만 한 색 없는 세상이었으나, 그녀에게 있어서는 무엇보다 익숙했다. 그러니까, 이 익숙한 곳에서 언제나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모름지기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있어서는, 그 원인을 파악하고 분석하고, 이해하는 것이 순리였으니까. 그녀는 골똘이 생각했다. 투명한 금빛 담은 금빛 눈이 동그랗게 한 곳을 응시하며 집중하는 기색이 마치 어린 아이가 애쓰는 듯 보였다. 

   그렇다면, 생각해 보자. 그와 자신의 맨 처음은.



   "─── 설명은 나중에."



     그렇게 말한 그는 그 미소짓던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다. 쉿, 하는 듯. 무심코 당황한 그녀가 움찔하고는 애써 표정을 바꾸었지만, 들킨 것일까. 그는 곱게 그 꿀 같이 단 눈을 휘며 웃었다. 그것이 마치 요요한 꽃 피어나듯 아름다워서, 녹아들 듯 달아서. 

   무표정 아래에서 그녀가 그러한 생각을 하던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자는 그 특유의 나긋한 목소리로, 유려한 말투로 말하고는 그녀의 손을 잡고 달렸다. 어쩐지 어쩐지, '처음이라 그런 것인지'. 아직도 그리듯 손에 잡힐 듯 또렷했다. 가늘어 보이던 그 손은 분명히 소녀의 그것과는 확연히 달라서, 그녀의 손 같은 것은 맞추어 놓은 듯 한 손에 꼬옥 들어가 잡혔더랬다.



   "이제 곧일까나."



     건물 틈의 그 짧은 그늘 속, 그림자 아래에서 말한 남자는 그리 말했다. 언제나 그렇듯 웃는 얼굴이었다. 그들을 그저 방치한다는 것이더냐, 그녀의 그러한 말에 그는 오히려 그녀에게 그대로 돌려주었다. 순간 말문이 막혔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당황. 당황. 그녀의 사상이나 생각을 그 자리에서 절절히 설명해야 하는 것인가, 그런 순진한 고민을 자신은 했었다. 아마 또다시 겪는대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리하며 그녀는 자신의 손목을 그의 손에서 빼내려 애썼을 것이었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한 손에 가벼이 쥐이고도 남은 손목을. 그리고, 그러던 새──



   "──자아, 붙잡아."



     그렇게, 구름이 눈에 담기고 그들은 바람을 걸었다.





03/



     또 다른 날 언젠가는, 그녀 손에 초콜릿을 꼬옥 쥐고 그의 방으로 향한 적 있었을 것이었다. 별다른 의미는 없는 행동이었을 뿐. 그저 현세의 분위기나 행사란 것에 맞추어서 의례를 차리고픈, 그 정도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래서, 그녀는 계약자에게, 소환사 소녀에게, 하나씩을 주었고, 그리고 그의 방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그가 안에 없는 줄 알아, 알 수 없는 기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쩐지, 실례를 하는 기분이었다고.

   ───그것이, 정말로 실례를 범하는 것이라 느낀 일종의 죄책감이었을까?


     그래서, 그녀는 분명. ...분명, 좇았다. 눈으로. 그리고, 본 순간 느낀 것은 어쩐지 모를 복잡함. 기쁨. 안도.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게 빛 내려앉은 그 곳에, 나른한 듯, 포근한 바람 속에 감싸안긴 채의 그가. 어쩐지 또 머릿속 한 켠이 간지러워지는 느낌에, 그녀는 재빨리 초콜릿만을 두고 나갈 작정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였을까. 평소 범하지 않던 실수 - 마룻바닥 소리를 내어버린 것은. 그리고, 아. 눈이 마주쳤었다. 그 입가는 또다시 호선을 그렸고, 언제나와 같은 목소리는 귀에 달아서.



   "당신이 내 방에 찾아오다니, 무슨 일일까나..?"



     정신을 차려보면 그 한 마디 한 마디, 목소리, 높이, 어조, 단어. 한 조각 빠지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 그건 그녀가 '시에라'인 탓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리 믿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 순간 바람의 노래도, 빛이 내리쬔 그 모습도, 그 뒤의 그림자도. 그 말갛게 웃던 나즈막한 웃음소리도. 그 때 그녀 본인이 느꼈던 혼란스런 기분도. 그의 미소에 담긴 듯한 느낌도. 그녀는 유독 선명히 그리고 있었다. 어떠한 자그마한 것이라도, 빠뜨리지 않고. 오롯한 그 순간을.



   "...당신이 준 건, 어느 쪽 의미일까나...?"



     그 말에, 생전 처음으로 들어보는 종류의 물음에, 그녀는 그만 머릿속이 하얘졌었을 것이었다. 마치 몰래 나뭇가지 덩굴 속 숨어서 몸을 감춘, 창가에서 그를 향해 손 뻗은 연인들이 나누듯 소곤거리는 듯한 달콤한 목소리. 단칼에, 우정이라 답했다면 되었을 것이었다. 아니, 본래의 시에라라면 그저 솔직하게 '네가 생각나 가져왔노라'고 하면 되었을 것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 순간 그녀는 그 대답을 하지 못했을까.


     그리고 그녀가 그 이유 모를 혼란 속 뾰로통해져, 아니면 피곤해져 복도를 돌아갈 때, 그가 불렀다. 그 때, 어쩐지 힘 없는 목소리를 들키고 싶지는 않았다. 괜히 무엇인가 지는 기분이었기에. 그러고 싶지 않아서. 그녀는 부러 부루퉁한 듯 대꾸했다. 무슨 일인가. 그는 그녀에게 잊은 것이 있다 말했고, 그녀는 그제사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시에라는 서 있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랬었다면 분명 지금의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을 테니까.


     입술에 닿았던 감각은 생전 처음 겪는 종류의 것. 그것보다도 머릿속 또렷 떠오르는 것은 양 뺨에 닿았던 서늘한 감각. 기분 좋은 시원함. 힘 있는, 하지만 강하지 않으면서도 보드라운, 감싸안긴 듯한. 눈 앞을 채운 것은 금빛 가라앉는 속눈썹, 길게 눈에 그림자를 드리웠고. 햇볕으로 자아낸 금사가 살짝 이마에 닿아 간지럽혔고. 곱게 휜 눈꼬리에, 멍하니 못 박힌 듯 굳은 채 서 있었던 자신. 그 후 깨달은 것은 입 안에 들어온 자그마한 달콤함.



     그 이후는, 그 이후는 ... 시에라는 얼굴을 양 손으로 가렸다. 





04/



   "탈 것이 필요하리라 생각했노라."



     그것부터 어쩌면 잘못되었던 것이리라고 시에라는 떠올렸다. 그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 말도 안 되는 속도도, 그저 깜짝 놀라 굳었을 뿐, 그 자체로 '두렵다'거나 '무섭다'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하지만, 그것은 결국 그녀의 다리가 떨려 움직이지 않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그리고 그것은 이어져 또───



   "...드디어 나를 의지해주는 걸까나?"



     아,아아니. 그, 그런 게 아니라. 그녀는 애써 입을 빠끔거렸지만 그저 소리 없는 울림일 뿐이었다. 손끝에 닿았던 시원함에, 무심코 양 뺨이 달떴고, 그것에 정신이 팔린 것 탓이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손에 닿은, 피부에 닿은, 따스함. 부드러움. 

   그 때 들린 웃음 섞인 말에 무엇이라 허둥대며 대답했는지는 자신이 한 말이 아닌 양 흐릿했다. 시에라는 얼굴을 양 손으로 꼭 가린 채 열심히 고개를 돌렸다.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휙, 그 후 이어진 양 뺨에 닿은 시원한 상냥함을 애써 한 켠에 닫아두려고. 휙, 하늘이 뒤집혔고. 그녀는 어째서 그의 목에 팔을 감았을까. 어쨰서 불안해졌을까. 아니, 아니. 생각하지 마. 떠올리지 마. 새하얀 세상에서, 시에라는 세상의 구석에서, 작게 웅크렸다.





05/



     시에라는 애써 푸, 하고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언제나처럼, 익숙한 색. 익숙한 모습. '하얀 세상', '색 없이 깨끗한 세상'. 그 변하지 않은 감각에 안정감을 느끼며, 시에라는 무엇인가 진정이 될 만한 - 그런 생각을 하려 애썼다. 그래, 말. 그는 그녀에게 종종 쓴소리를 했다. 다분히 의도적이란 것이 느껴질 정도의 말들이었다. 시에라가 태어난 후 들어본 적도 없는, 그런 말들. 담뿍 받은 것은 웃음과 상냥함 밖에 없던 그녀가 처음으로 들은 쓴 말. 

   처음 들었을 때는, 정직 놀랐었다. 물론 그 말을 부정하는 건 결코 아니었다. 그것은 구구절절 옳은 말들이었으며 또 부정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마음 한 켠이 콕콕 찔려서,



   "──아아, 하지만 그렇네..  정도를 넘어서면, 기계라고 부를지도 몰라..?"


   "상냥한 당신은 이 정도에도 눈물 흘렸지, 하지만.. 이대로 가면, 미쳐버릴지도 몰라...?"



     그런데 그런데, 이상한 것이었다. 정녕 이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부러 던진 듯한, 독화살 같은 말은 귀에 썼다. 듣기에 아렸다. 하지만 귀에 쓴 만큼, 마음 한 켠이 쓴 만큼, 또 그만큼 달았다. 그녀 마음에 오롯 달았다. 벽 앞에서 멈추어 서 있을 그 순간마다, 작은 세상에 갇혀 있을 때마다 . 아니, 그 세상 안에 갇혀 있던 그녀에게 전혀 생각도 해 보지 못했던 말을 주었고, 그것은 의외롭게도 마음 한 켠을 후련하게 해 주었으니까. 그녀가 깨끗 다시 생각하고 또 다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었으니까.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하고, 이용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할 거야."



     못내 마음 한 켠이 더 쓰리던 것은 오히려 그 말이었다. 아니, 이용당한다는 말 자체는 아무래도 좋은 것이었다. 그녀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그녀의 생각. 그녀의 판단. 그녀의 방침. 그리고 그녀는 베푸는 것을 결심했으므로, 그가 이용하던 감사하던 어느 쪽도 그녀에게는 상관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 순간, 그 짧은 한 순간 스치듯, 마음을 누군가 갈퀴로 긁는 듯 아팠던 것일까.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처럼, 또 그녀에게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해 준 것이었다. 그래. 그녀가 결정한 대로. 그녀가 판단한 대로. 그것으로도 충분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든 이유는───?





06/



     그녀가 그를 감싸듯 끌어안은 것은 그녀 자신의 의지였다. 그저, 그녀가 그리 하고프다 생각했기에. 우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슬퍼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 마음 자체는 모든 다른 이들에 대해 가진 것이었으나, 또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그것이 인간의 희로애락. 삶의 부분이라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필요할 때도 있으며 또 아름다울 때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그가 슬퍼하는 것만큼은 보고 싶지 않았다. 어쩐지 애가 타서, 어쩐지 힘을 주고 싶어서. 그래서, 저도 모르는 새 팔을 뻗었고, 앞으로 발을 내밀었고. 온기를 전했다. 

   그리고 그것은, 오히려 그녀가 전혀 예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로 이어졌다. 그는 그녀에게 답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조곤조곤, 나즈막 말해 주었을 뿐. 짚어 주었을 뿐. 그녀가 그녀 꿈에서 본 것들을. 그녀가 생각했을 것들을. 그리고, 그녀는 알게 되었다. 너무너무 아팠지만, 그저 그것만으로도 또 행복해지는 것을. 그런 감각을. 



     어째서, 어떻게 그는.

     어째서, 어떻게 자신은.



     솔직히 말하면, 무서웠다. 이제는 무서워서 무서워서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어. 세상이, 그녀가 여태까지 바라 본 - 아니, 정정. 여태까지 살아 온 작고 깨끗한 새하얀 세상이 무너지고 있다. 뒤틀리고 있었다. 단지 그 한 명일 뿐이었는데. 어째서, 어떻게. 

   생전 겪지 못했던 모습으로, 그녀의 작은 세상이 바뀌고 있었다. 



어떻게든 돕고 싶고

슬퍼하는 것은 보고 싶지 않고

그 웃음이 기뻤고

그 목소리가 귀에 달았고

차가운 말 들으면 마음이 아리고

그 모든 한 마디 행동 한 번에 기분이 제멋대로 바뀌고



     어째서, 겨우 혼자서, 이렇게 그녀를 제멋대로 바꾸어 두는지 시에라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어째서. 무엇 때문에 그녀가 이리 바뀌는지 알지 못했다. 그는 다른 사람하고 무엇이 달랐기...



   시에라는, 숨을 멈추었다.

그저, 그저 그녀가 별 것 아니라 넘겨짚었던, 그저 흘러보냈던,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것. 그런 느낌.

   서서히, 눈을 가리던, 얼굴을 가득 가리던 손이 스르륵 내려갔다. 나비 날개처럼, 눈꺼풀이 희미하게 떨렸다. 단 한 가지. 어쨰서 그녀는 여직 몰랐을까. 자신의 일은 본디 모르는 법이라 하여도, 어찌하여 그것도 그녀가. 그리고, 후들거리기 시작한 다리로 그녀는 파들파들 일어났다. 벽을 짚고, 서가를 짚고. 



     그녀의 작은 세계에, 깨끗하고, 하얀 세계에.

  그 앞에 그려진 작은 선. 넘어오지 말아 줘, 란 것처럼 누군가 - 그녀가 정신을 차려보니 그려져 있었던 그런 선을 밟아 지우고, 그는 태연하게 들어왔다. 새하얗지 않은 모습 그대로. 그대로. 그렇게.

     ── 그녀의 세상에서, 유일하게 색을 간직한 사람으로.



     뒤죽박죽 엉켰던 머릿속이, 또렷이, 깨끗이 지워지고 있었다. 엉켰던 실타래가 풀리고, 미지는 답에 도달하는 것처럼. 

   그녀는 멍하니, 꿈꾸는 것처럼 걸음을 옮겼다. 어디로 가야 할까. 어디로 가지. 햇빛 눈동자가 고이 반짝였다. 이미 그녀의 머릿속은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지식과 감정과 직감을 모두 합쳐. 하나의 답을. 하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한 줌 무서운 것이었다. 

   전혀 전혀 알지 못했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그런 것. 그러한 것. 정말 이 답이 맞을까? 하지만, 그녀는 동시에 부정할 수 없었다. 그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뻐서. 이유를 알지 못했어도 그것만으로도 그저 좋아서. 하지만 앞으로 그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또다시 스멀스멀 엉키기 시작하는 실타래에 시에라는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 



   아. 



     시에라는 짧게, 목소리를 흘렸다. 벽 전체에 난 창은 활짝 열려, 눈부신 세상이 눈에 들었다. 마악 동녘 끝에서 고개 내미는 해는 붉고 찬연한 황금빛으로 손을 뻗어 그녀를 쓰다듬었다. 머얼리 잠드는 달빛은 그녀를 품에 안았고, 바람은 마치 등을 밀어주듯, 상쾌하고 맑고 차가운데 또 따스해서, 녹빛 숲은 이 시대에도 아름답게 바람을 노래하고, 나뭇잎은 속삭이고. 그 사이에 몸 숨긴 새들은 노래한다. 

   멀리서 흐르는 강물은 햇빛 아래 눈부시게 반짝이고, 햇빛에 그 몸 물들이는 구름은 또 폭신해서. 아침을 맞이한 사람들의 소란스러움이 정겨웠고 그 웃음이, 시끌벅적함이 또 익숙하고 그리웠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 자연이 오롯 빛나는 모습. 분명 그녀 생전에 보았던 것과 같은 빛이며 같은 아름다움이었지만, 또 달랐다. 한 겹이, 달랐다. 


     아아, 이것은. 

  떨리는 눈동자가, 천천히, 차분하지만 또 맑은 빛을 다시 띄웠다. 부정할 수 없다. 절대로 옳은 답이었다. 그는 그렇게, 그녀의 세상에 들어왔고. 그리고 이렇게, 이렇게 만들었다. 그의 빛으로. 이렇게 물들였다. 작고 작은 방 안 하얗고 하얀 그녀의 세상을.





     이리도, 찬란한 빛의 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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