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차 밤, 감독관의 편지

그는 피곤해 보였다. 하지만 일은 일. 그는 살포시 눈을 감고, 두꺼운 수도복 위에 가지런히 손을 모은 채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작은 창문틀 사이로 불어온 바람이 방안에 있는 이들에게 들러붙어댔다. 열기를 머금은 공기가 흘려보낸 붉은 머리카락이 그의 눈앞에서 나풀거리며 스쳐갔다.저녁놀이 지고 있건만, 바람은 아직도 더위를 품고 있었다.

이야기가 끝나자, 그는 감았던 눈을 뜨고 앉아 있던 책상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양피지를 꺼낸 뒤 펜을 잉크에 적시고 언제나 그랬듯이 참가자들에게 보낼 서신을 쓰기 시작했다.

[......따라서 금일 낮, 이번 성배전쟁 첫 번째 탈락자가 생겼다는 것을 알려드리며, 

현재 저희 교회는 탈락자의 요청에 따라 이 탈락자를 교회 안에서 보호하고 있음을 보고 드립니다.

그리고 이는 사전에 정해진 규약에 따른 행동이오니 다른 참가자분들의 오해가 없으시길 바랍니다.

또한 탈락자를 보호하는 일과 관련하여 추가해서 처리해야할 사안이 있기에, 

금일 밤부터 명일 아침까지 부득이하게 자리를 비워야 할 것 같습니다. 

모두 다 이 성배전쟁을 원활히 진행하기 위함이니 참가자 여러분들의 양해바랍니다.]

서신을 완성하는 것과 동시에 그의 입술은 마지막 인사말을 되뇌었다.

“......부디 여러분들 중에서 천상의 성령님을 영접할 분이 나오길 바라며”

창가엔 어느새 주황빛 저녁놀이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둘째 날 낮이 저물고, 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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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는 찰스 수도사를 향해 령주가 맺힌 팔을 보이면서 명령을 내립니다.

"......그 동안 하고 싶던 말을 못하게 막아서 죄송해요. 힘드셨죠? 이제 그 제한을 풀게요. 원하시는 대로 마음껏 행동하시고, 말씀해 주세요."

토마스는 따끔거리는 걸 느끼고, 팔을 바라봅니다. 붉은 빛과 함께 한 획의 령주가 사라졌네요.

"그리고 지금 이 시간부로 당신과 저 사이에 성배의 보증하에 이어져 있던 계약들을 해지합니다. 부디 저라는 마스터를 떠나서 다른 분을 통해 그대의 소원을 이루시길."

또 다시 한 획의 령주가 사라졌습니다. 토마스는 눈 앞에 선 찰스 수도사, 아니 자신의 서번트였던 남자를 바라봅니다. 남자의 표정이 아까와는 확연하게 달라져 있었습니다. 정말 지금 입고 있는 수도복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말이죠.

그 모습에 토마스는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습니다.

"그나저나, 하루키씨가 과연 당신을 감당할 수 있으련지 모르겠네요..."

어찌 되었건 토마스의 열차 티켓은 이렇게 찢어지고 말았습니다. 

아마, 다시는 발급받을 일은 없을겁니다. 아마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