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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맛 영양제

로하 2014.02.25 10:39 조회 수 : 1






00/



느낌이 오잖아, 떨리고 있잖아

언제까지 눈치만 볼 거니

네 맘을 말해 봐, 딴청 피우지 말란 말이야

네 맘 가는 그대로, 지금 그 손을 잡아





01/



우연히 고개를 돌릴 때 마다
눈이 마주치는 건
며칠밤 내내 꿈속에 나타나
밤새 나를 괴롭히는 건



*          *          *



     시에라는 양 뺨을 감싸쥐었다. 아직도 담뿍 열기가 가시지 않은 뺨이었다. 분명히 거울을 본다면 자신은 갓 따어낸 홍옥처럼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고 있을 것이라 그녀는 생각했다. 이제 서서히 위험할 지경이었다. 그보다 더욱 큰일인 것은, 그녀가 자신의 얼굴에 이렇게 열기가 모이는 이유를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혹시나 병증인가 싶어 그녀가 알아낼 수 있는 모든 증상과 대조해보아도, 혹시나 날씨 탓인가 싶어 스스로의 영체상태를 확인해 보아도 시원한 답이잡히지 않았다. 성홍열이나 볼거리라도 하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애당초 영령인 그녀가 그러한 것에 걸릴 리 없는 것이었다. 뭣보다, 그러한 것은 대부분 어린 아이들이 걸리는 병이니까. 


그렇다면 어째서──? 


아니, 아니아니. 지금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그녀는 도리도리 혼자 고개를 저었다. 분명 지금의 그녀는 다른 누군가가 본다면 폭소를 터뜨릴 법한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자신이... 자신이 어째서...



 순간 다시 떠오르는 온기에 시에라는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입술에 닿았던 짧은 온기, 그녀가 그 자그마한 손으로 모아 꼬옥 잡았던 손은 분명히 그녀의 것과는 달라서. 그녀의 손보다 훨씬 더 시원하고, 조금 더 날렵하고 힘이 있는... 아니, 지금 이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그녀는 고개를 무릎에 폭 파묻었다. 심호흡을 하여 숨을 진정하기 위해 애썼다. 손끝이 파들파들 떨리는 기분이었다. 자신은, 자신은.. 도대체 어째서 그런 짓을 해 버린 것인가. 그것도 대낮의 훤한 하늘 아래에서.


어째서. 손을 잡고, 양 손으로 꼬옥 잡고. 가까이 들어올려.

그 손 안에 담긴 부적에 살며시────


행동 자체가 문제될 것은 아니었다. ...아마도. 허나 문제는 방식이었다, 방식. 부적에 그녀가 행운을 빌고 싶었던 것 뿐이라면 말할 것도 없이 그저 그것만을 받아 해도 어떠한 문제도 없었을 것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마치 그렇게 자연스러운 것처럼. 머리가 터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계속 그래왔다, 최근 한동안은. 그녀조차 따라잡지 못하는 새 휙휙 머릿속 풍경이 바뀌고 장면이 뒤죽박죽 섞여서. 그렇게 고개를 마구 흔들다 또 보면 항상 끝에 떠오르는 것은───


아니 되겠느니.


시에라는 간신히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고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순간, 만약 그 또한 서번트로서 자신에게 어떠한 특수한 스킬이나 보구를 통하여 독이나 이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에 성공한 것이 아닌가 하는 그녀가 생각해도 바보 같은 가능성이 떠올랐지만 이내 휙휙 고개를 돌려 애써 지웠다. 그러한 독이 그녀에게 통할 리 없... 이런, 이제사 다시 깨달았지만 지금의 그녀는 본신이 아닌 그녀의 의식을 가진 한낱 분신체 : 서번트라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지금의 상태도 그것이 통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종류의 상태 이상을 불러일으키는 독이나 보구를 가진 전승을 찾아본다면... ...이게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게냐, 바보 같구나. 


시에라는 벽에 머리라도 한 번 박아보고 싶은 기분이었다. 생전을 포함해서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기분. 그야말로 미지. 그렇지만 전혀, 전혀, 전-혀 반갑지 않고 바라지 않은 그러한 것이니까. 그래도 영문 모를 이상 상태가 최근 지속되고 있는 건에 대해, 시에라는 대놓고 그 원인 - 으로 추정되는 자 - 에게 묻기로 결정했다. 그렇다면, 직접 가서 맞대고 묻는 수 밖에 없겠지. 시에라는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아마 홀홀단신으로 용과 맞서러 떠나는 영웅의 기분이 이러지 않았을까. 계속해서 전혀 자신 답지 않은 바보스러운 생각 투성이란 걸 자각하면서도, 시에라는 일어나 발걸음을 옮기고, 방문을 열었다. 


멀리 걸을 필요는 없었다. 그의 방은 그녀의 방, 바로 맞은 편이었으니. 고풍스럽게 삐걱이는 나뭇마루 바닥을 디디고, 그녀는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 우아한 세 번의 노크. 하지만 항상 들리던 대답은 없었다. 호, 호, 혹여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한 건 아니겠지. 밀실 살인이라던가...! ..는, 오히려 그런 트릭을 사용할 것 같은 사람은 그 쪽일 것 같으니 아닐 것이었다. 아무리 혼란스러운 상태여도, 그 정도를 판단할 수 있는 감각 정도는 아직 그녀에게도 남은 상태였다. 정말이지 예의가 아니란 것은 알지만, 항상 대답하던 이가 아무런 기색이 없으니 조금 의아스런 기분이 들어 시에라는 빼꼼, 아주 조오오오금 문을 열고 틈새를 들여다보았다.



"....음?"



항상 누군가가 반기는 목소리가 들리던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02/



핸드폰 진동에 심장이

덜컥 내려 앉는다는 건

오 나도 모르게 어느새 짖궃은 네 말투

자꾸 듣고 싶은 건



*          *          *



사람은 각자 다양한 일을 하며 살아가지만, 그 다앙함 속에서도 모두가 겹칠 수밖에 없는 영역이 있다. '누군가를 마주친다'라는 명제가 그러하다. 세상은 단 한명의 사람이 살아가는 곳은 아니며, 따라서 방 안에 틀어박히지 않는 한은 필연적으로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 물론 마주친 사람들과 인사를 할지 무심하게 지나칠지는 또다시 각 개인의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만남이 이루어졌다는 일 자체는 실제하며 각자가 크게 의의를 두지 않더라도 그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로 남는다.


  개중에는 좀 더 중요한 만남도 있다. 원래 알고 지내던 사람과의 만남. 전혀 모르던 사람을 만났을 때와 이미 알던 사람을 만났을 때의 느낌은 당연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아는 정도가 깊어질수록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진다. 하물며 그 사람이 매일 문을 열 때마다 얼굴을 마주했고, 온갖 달콤한 밀어를 속삭였던 사람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시에라는 볼이 약간 부은 채 툇마루에 앉아 있었다. 그녀를 아는 다른 사람이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본다면 매우 놀라겠지만 시에라는 그것을 의식하지 않았다. 의식할 틈이 없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평소 영특함으로 자신을 빛내고 했던 시에라의 두뇌에는 번민만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째서인사한마디없이나가도대체밖에서무엇을하고너무하는어째서얼굴조차보여주지않았……


  생각 하나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생각이 떠올라 뇌리를 맴돈다. 입으로 말하지 않았으니 '그'가 있었더라도 들었을 리 없지만, 아예 있지 않은 지금은 어떠한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시에라는 무릎을 꼭 끌어안고 거기에 머리를 기댔다. 평소에는 그리 부끄러웠건만, 정작 그녀를 감싸던 온기가 없으니 너무나도 허전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고, 지금은 그다지 이유를 아는 것이 중요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므으으."




  시에라는 고뇌 가득한 소리를 흘리며 고개를 좀 더 깊숙히 묻었다. 그렇게 하면서도 그녀의 투명한 황금빛 눈은 대문을 떠나지 못했다. 소녀는 뽀오얀 섬섬옥수를, 작게 움켜쥐었다.





03/





  "다녀왔어."

 

 

 

  그, 샤를이 돌아온 것은 거의 날이 저물 무렵이었다. 샤를은 거의 일방통행과 마찬가지인 인사를 하고는 안뜰을 걸어왔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뇌리를 채우던 생각이 펑 소리를 내고 사라져, 시에라는 홱 무릎을 내리고 똑바로 샤를을 보았다. 놀랍게도 샤를의 얼굴에는 평소와는 달리 피곤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시에라는 자신도 모르게 내려가기 위해 다리를 내렸다. 그러다가 흠칫, 다시 끌어올렸다. 그녀가 그를 기다린 건 어째서 그가 사라졌는지 추궁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돌아오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야…… 날 기다려줬던 걸까나?"

 

 

 

위해서가 아니라──

 

 

 

  "네가 오지 않아서 계속 이렇게 있었노라. 어째서냐고 묻지 말아라. 너무 늦는다면 식사는 어떻게할지신경쓰였느니라오늘아침도거르지않았더냐그랬으면서아무말도안하고사라졌으니게다가오늘은네소환사아이가맛있는빵을만들어주었다파니니라고했던거같구나네가오지않아서둘이서만맛있게먹었느니라분명히네가좋아하는음식이겠지."

 

 

 시에라는 봇물처럼 말했다. 그리고 자신이 했던 말 안에 어째서 그가 사라졌는지에 대한 추궁이 없다는 사실에 당황했다. 추궁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는 사실은 또 한번 시에라를 당황하게 했다.

 









그 많은 빈자리 중에서 하필

내 옆자리를 고르는 건

나도 모르게 어느새 실없는 웃음 

흘리고 있다는 건





사랑이 온 거야 너와 나 말이야

네가 좋아 정말 못 견딜 만큼

그거면 된 거야 더는 생각하지 말란 말이야

네 맘 가는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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