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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2)

벚꽃여우 2014.06.05 08:23 조회 수 : 2

해가 지면서 세계는 온통 오렌지빛으로 물들었다.

다른 아이들은 이미 집에 간지 오래였지만, 옥상 위에는 아직 남아있는 사람이 있었다.

아무도 없는 교내에 울려퍼지는 음색.

아니, 그것은 듣는 이의 정수리를 쇠망치로 때리는 듯한, 폭력에 가까운 소음이었다.

어찌나 거칠던지 주변에 있던 까마귀들조차 슬픈 울음소리를 내며 도망갈 정도였다.

하루키는 두 귀를 막고있던 손을 내려놓으며 눈을 깜빡였다.

 

 "매우 개성적인...... 연주네."

 

째릿.

그러나 마음에도 없는 칭찬이 내심 상처였는지, 연주자는 눈을 부릅뜨며 하루키를 노려봤다.

유메하의 얼굴이 살짝 붉어진 것은 노을 때문인가, 아니면 관객의 반응이 만족스럽지 않았던 것인가.

 

 "대체 리코더는 뭐하러 배우는 거지? 아무런 쓸모가 없잖아."

 

적어도 소리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해.

하루키는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걸 꾹 눌러참았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인내심을 가지고 상대와 대면하는 것 뿐.

 

 "연습하다보면 금방 잘 하게 될 걸."

 "알 게 뭐람."

 

유메하는 자신이 들고있던 리코더를 아무렇게나 내던졌다.

주인에게 버림받은 리코더는 구슬픈 소리를 내며 저만치 굴러갔다.

벽에 부딪힌 그것은 벌써 오늘 하루 몇번째인가 머리와 몸통이 분리됐다.

하지만 정작 그 주인은 단 한 번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것보다 그 얘기나 마저 해 줘."

 "으, 응?"

 "마법사 이야기! 이 세상에 현존하는 마법은 다섯개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게 정말이야?"

 "아빠 말로는 그렇대. 먼 옛날에는 더 많이 있었지만, 현대과학이 발달한 지금 마법사라고 부를 수 있는 건......"

 "다섯명 뿐이라는 거지. 너도 진짜 마법을 본 적 있어?"

 

하루키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아빠 말로는 그들은 모두 행방을 감추거나 다들 자기 좋을대로 살고있대."

 "나도 언젠가 마법사랑 만나보고 싶어. 그들이 날 제자로 삼아줄까?"

 "마술을 쓰기 위해선 태어날 때부터 몸에 마술회로를 갖고 있지 않으면 안 돼."

 "마술사들만 가지고 있는 특수한 신경 말이지? 나도 병원 가서 수술 받으면 가질 수 있을까?"

 "으음...... 이건 같은 핏줄로부터 전해내려 오는거라 다른 사람은 못 쓸 걸."

 "그럼 네 피를 나한테 수혈하면 어때? 너 혈액형이 뭔데? 나 A형인데."

 "그, 그런 문제가 아냐."

 

자신이 마술사라는 걸 밝히자, 유메하는 이런저런 얼굴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웃는 얼굴, 놀란 얼굴, 화난 얼굴, 슬픈 얼굴.

이리저리 변하는 표정 변화는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조차 없었다.

아마도 같은 반 아이들조차 아무도 모르는 얼굴.

오직 자신만이 알고 있는 얼굴.

 

 "보여줘."

 "또?"

 "닳는 것도 아닌데 뭐 어때? 어차피 나는 못 쓰는데."

 

하루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유메하는 좋아라 웃으며,

방금 전에 자신이 내던졌던 리코더를 주우러 갔다.

어찌나 세게 던진 건지 부분부분에 금이 간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하루키는 정신을 집중하고 몸안에 있는 스위치를 ON으로 바꾼다.

몸 안에 마력이 흘러가는 게 느껴지면, 짧은 영창과 함께 그것을 형태로 만든다.

그러자 리코더는 마치 새로 산 것처럼 깨끗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유메하는 신기해하며 몇번이나 자신이 부순 리코더를 들여다보았다.

 

 "......이제 더 이상 안 고쳐준다?"

 "응!"

 "함부로 부수지 마?"

 "알았다니까."

 

그러고서 다시 한 번 리코더를 입술에 가져간다.

그 모습을 본 하루키는 거의 본능적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귀를 찢는 날카로운 음색은 들려오지 않았다.

살짝 실눈으로 확인해본다.

유메하는 리코더를 입에 댄 채 그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눈에 띄게 기뻐하던 모습은 어디로 간 건지,

어딘가 쓸쓸한 기색으로 어깨를 떨구고 있었다.

 

 "나도 마술사가 되고 싶어."

 "될려고 해서 될 수 있는 게 아니고, 될 수 있다고 해도 꼭 좋은 일만 있는 것도 아냐."

 "그래도, 만약 될 수 있다면 나는 마술사가 될 거야."

 "......왜?"

 

 

 

 "키사라기 군이 리코더를 고친 것처럼, 나도 우리 엄마랑 아빠 사이를 고치고 싶으니까."

 "엄마랑 아빠, 사이 안 좋아?"

 

 "키사라기 군은 나한테 자기 비밀을 말해줬지?"

 "응. 이건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우리 둘만의 비밀이야."

 "그럼 나도 말해줄게. 내 비밀, 키사라기 군한테 가르쳐줄게."

 

 "우리 부모님은 일이 바쁘셔서 집에는 항상 나 혼자였어."

 "예전에 내가  납치된 적이 있었어. 결국 범인은 잡혔고, 아무 일도 없었지만......"

 "그 일로 많이 싸우셨어. 싸우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로 많이 싸웠어."

 "그 날 이후로 우리 집에서는 아무도 웃지 않게 됐어."

 "나 때문에 엄마랑 아빠는 사이가 안 좋아진 거야."

 "내가 있으니까 모두가 슬퍼하는 거야."

 "마술을 쓸 수 있다면 전부 없었던 일로 할 수 있겠지?"

 "옛날처럼 다 같이 웃을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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