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면서 세계는 온통 오렌지빛으로 물들었다.
다른 아이들은 이미 집에 간지 오래였지만, 옥상 위에는 아직 남아있는 사람이 있었다.
아무도 없는 교내에 울려퍼지는 음색.
아니, 그것은 듣는 이의 정수리를 쇠망치로 때리는 듯한, 폭력에 가까운 소음이었다.
어찌나 거칠던지 주변에 있던 까마귀들조차 슬픈 울음소리를 내며 도망갈 정도였다.
하루키는 두 귀를 막고있던 손을 내려놓으며 눈을 깜빡였다.
"매우 개성적인...... 연주네."
째릿.
그러나 마음에도 없는 칭찬이 내심 상처였는지, 연주자는 눈을 부릅뜨며 하루키를 노려봤다.
유메하의 얼굴이 살짝 붉어진 것은 노을 때문인가, 아니면 관객의 반응이 만족스럽지 않았던 것인가.
"대체 리코더는 뭐하러 배우는 거지? 아무런 쓸모가 없잖아."
적어도 소리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해.
하루키는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걸 꾹 눌러참았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인내심을 가지고 상대와 대면하는 것 뿐.
"연습하다보면 금방 잘 하게 될 걸."
"알 게 뭐람."
유메하는 자신이 들고있던 리코더를 아무렇게나 내던졌다.
주인에게 버림받은 리코더는 구슬픈 소리를 내며 저만치 굴러갔다.
벽에 부딪힌 그것은 벌써 오늘 하루 몇번째인가 머리와 몸통이 분리됐다.
하지만 정작 그 주인은 단 한 번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것보다 그 얘기나 마저 해 줘."
"으, 응?"
"마법사 이야기! 이 세상에 현존하는 마법은 다섯개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게 정말이야?"
"아빠 말로는 그렇대. 먼 옛날에는 더 많이 있었지만, 현대과학이 발달한 지금 마법사라고 부를 수 있는 건......"
"다섯명 뿐이라는 거지. 너도 진짜 마법을 본 적 있어?"
하루키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아빠 말로는 그들은 모두 행방을 감추거나 다들 자기 좋을대로 살고있대."
"나도 언젠가 마법사랑 만나보고 싶어. 그들이 날 제자로 삼아줄까?"
"마술을 쓰기 위해선 태어날 때부터 몸에 마술회로를 갖고 있지 않으면 안 돼."
"마술사들만 가지고 있는 특수한 신경 말이지? 나도 병원 가서 수술 받으면 가질 수 있을까?"
"으음...... 이건 같은 핏줄로부터 전해내려 오는거라 다른 사람은 못 쓸 걸."
"그럼 네 피를 나한테 수혈하면 어때? 너 혈액형이 뭔데? 나 A형인데."
"그, 그런 문제가 아냐."
자신이 마술사라는 걸 밝히자, 유메하는 이런저런 얼굴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웃는 얼굴, 놀란 얼굴, 화난 얼굴, 슬픈 얼굴.
이리저리 변하는 표정 변화는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조차 없었다.
아마도 같은 반 아이들조차 아무도 모르는 얼굴.
오직 자신만이 알고 있는 얼굴.
"보여줘."
"또?"
"닳는 것도 아닌데 뭐 어때? 어차피 나는 못 쓰는데."
하루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유메하는 좋아라 웃으며,
방금 전에 자신이 내던졌던 리코더를 주우러 갔다.
어찌나 세게 던진 건지 부분부분에 금이 간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하루키는 정신을 집중하고 몸안에 있는 스위치를 ON으로 바꾼다.
몸 안에 마력이 흘러가는 게 느껴지면, 짧은 영창과 함께 그것을 형태로 만든다.
그러자 리코더는 마치 새로 산 것처럼 깨끗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유메하는 신기해하며 몇번이나 자신이 부순 리코더를 들여다보았다.
"......이제 더 이상 안 고쳐준다?"
"응!"
"함부로 부수지 마?"
"알았다니까."
그러고서 다시 한 번 리코더를 입술에 가져간다.
그 모습을 본 하루키는 거의 본능적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귀를 찢는 날카로운 음색은 들려오지 않았다.
살짝 실눈으로 확인해본다.
유메하는 리코더를 입에 댄 채 그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눈에 띄게 기뻐하던 모습은 어디로 간 건지,
어딘가 쓸쓸한 기색으로 어깨를 떨구고 있었다.
"나도 마술사가 되고 싶어."
"될려고 해서 될 수 있는 게 아니고, 될 수 있다고 해도 꼭 좋은 일만 있는 것도 아냐."
"그래도, 만약 될 수 있다면 나는 마술사가 될 거야."
"......왜?"
"키사라기 군이 리코더를 고친 것처럼, 나도 우리 엄마랑 아빠 사이를 고치고 싶으니까."
"엄마랑 아빠, 사이 안 좋아?"
"키사라기 군은 나한테 자기 비밀을 말해줬지?"
"응. 이건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우리 둘만의 비밀이야."
"그럼 나도 말해줄게. 내 비밀, 키사라기 군한테 가르쳐줄게."
"우리 부모님은 일이 바쁘셔서 집에는 항상 나 혼자였어."
"예전에 내가 납치된 적이 있었어. 결국 범인은 잡혔고, 아무 일도 없었지만......"
"그 일로 많이 싸우셨어. 싸우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로 많이 싸웠어."
"그 날 이후로 우리 집에서는 아무도 웃지 않게 됐어."
"나 때문에 엄마랑 아빠는 사이가 안 좋아진 거야."
"내가 있으니까 모두가 슬퍼하는 거야."
"마술을 쓸 수 있다면 전부 없었던 일로 할 수 있겠지?"
"옛날처럼 다 같이 웃을 수 있겠지?"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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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여우
2014.06.09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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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여우
2014.06.11 02:17
"이런, 실례. 그러고보니 자기소개가 아직이었군. 내 이름은... 할버드라고 부르면 돼."
건네진 손을 마주잡으며 떨떠름한 표정으로 악수를 나눕니다. 그러다 흠칫 긴장감이 부족한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는 한걸음 뒤로 물러나네요. 그리고 옆에 있던 찰스를 가르킵니다.
"그리고 이 친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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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여우
2014.06.12 00:32
(외형 : 붉은 머리가 인상적인 10대 후반의 젊은 남성으로, 반팔티에 청바지 차림이라는 지극히 심플한 복장입니다.)
"그럼 녹시밀리언, 한가지 물어봐도 될까?"
할버드는 헛기침을 하며 말을 잇습니다.
"본래 서번트는 계약를 나눈 마스터의 검이 되어 전투를 대행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지. 그런데 그 서번트를 티켓 취급한다는 점에서 당신이 어느 정도의 강자인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어. 그 「힘」으로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것도 말야. 궁금하군. 우리한테 들려주지 않겠나? 성배의 힘을 빌려야만 이룰 수 있는 그 소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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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여우
2014.06.12 09:41
녹시밀리언의 지적에 주춤하며 한 걸음 물러나지만, 이내 결심을 굳힌 듯 당당한 어조로 말합니다.
"반대로 숨길 정도로 숭고한 것일까? 모든 소원의 가치는 동등하다. 어떤 소원이 성배를 취하는 데 있어서 가장 적합한가를 따질 생각도 없어. 내가 알고 싶었던 것은 정확히 말하자면 당신의 소원 속에 내포된 인생 그 자체였는데 말야. 뭐, 앞으로 죽일지도 모르는 상대에 대해서 알고자 하는 건 사치일지도 모르지만......"
할버드는 잠시 말을 흐린 뒤 문뜩 자신의 손바닥을 쥐었다 폅니다. 마치 그 안에 자신이 원하는 해답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내 소원을 물어봤던가? 그렇게 복잡한 건 없어. 나는 마술로부터 결별하고자 한다. 성배의 힘으로 이 몸에 걸린 성가신 저주를 해주한 뒤에 말야. 아까 모든 소원은 동등하다고 했지만, 솔직히 나는 그 중에서도 가장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고 생각해. 단지 내 선조로부터 이어지는 부모의 선물을 몸에서 떼어놓기 위해서 다른 여섯 명의 인생을 짓밟으려고 하고 있거든. 그러니까 그걸 한 순간도 잊지 않기 위해 다른 이의 소원도 들어두고 싶은 거야. 만약 내 소원이 성취된다면 그것은 다른 누군가의 희생 위에 있다는 것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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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여우
2014.06.12 21:58
녹시밀리언의 말에 눈을 크게 뜨며 반문합니다.
"비원을 맡긴다니...... 당신에게 내 저주를 풀 방책이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곧 불신으로 가득찬 눈빛으로 고개를 거칠게 휘젓습니다.
"미리 말해두지만 당신과 만나기 전에 나한테 똑같은 소릴 했던 사람이 다섯명 있었고, 그 모두가 명성과 실력을 두루 갖춘 전문가였어. 하지만 결과는 시원찮았지. 지금까지 이 술식을 해명한 자는 아무도 없었고, 유일하게 알 수 있었던 건 오로지 저주를 건 장본인 밖에 풀 수 없다는 사실 뿐이였다. 하지만......"
할버드는 망설임과 기대감이 섞인 복잡한 심정으로 녹시밀리언의 제안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만약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더이상 성배를 쫒을 이유도 없어지니까요. 마술사들의 피비린내 나는 의식에 어울릴 필요 없이 가슴을 옭아매는 듯한 죄책감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겠죠. 녹시밀리안의 제안은 그만큼 할버드에게 있어서 감미로운 유혹이였습니다.
"지금의 내겐 바라지 않던 제안인 것 또한 사실이로군. 솔직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니까. 물론 당신의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내겐 마스터로써의 책임이 남아있어. 내가 성배를 추구할 이유가 없어진다고 해서, 이 친구의 비원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 거기서 한가지 제안인데, 남은 서번트를 전부 쓰러트릴 때까지 서로 손을 잡는 건 어떤가? 우리가 서로를 신뢰하기 위해서는 좀 더 상대를 알아갈 시간이 필요할 듯 싶군. 그 동안 나는 당신이 한 말의 진위를 확인해볼 수 있겠지."
할버드는 녹시밀리언에게 자신과 동맹을 맺을 생각이 있는지 제안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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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여우
2014.06.13 01:54
"............"
할버드는 잠시 눈을 깜빡이며 D와 마주 봅니다. 그러더니 손을 잡고 붕붕 흔들어보거나, 눈을 뒤집어 보거나, 양복 안주머니에 들어있던 명함을 꺼내보거나, 뒤로 돌아서서 오금을 찔러보는 등 이런저런 리액션을 취하면서 D의 반응을 지켜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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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여우
2014.06.14 04:18
"의도를 모르겠군. 이 D라는 자가 내게 어떻게 도움이 된다는 건지, 혹은 당신이 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갖고있는 것에 대한 증명이 되는 건지...... 그 부분에 대해 설명해줄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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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여우
2014.06.15 16:05
할버드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입니다.
"알겠어. 그럼 당신의 호의는 감사히 받도록 하지. 나도 작은 답례를 보내고 싶군."
할버드는 호주머니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녹시밀리언의 검지에 끼워줍니다. 이건...... 반지일까요?
그 위에 딱 봐도 상당한 고액으로 짐작되는 자수정이 빛나고 있네요.
"이건 '약속의 반지'라고 해서 내가 당신의 신의를 져버릴 만한 행동이나 적의를 품었을 때 보석에 금이 가지. 단순히 마력을 쫒는 아뮬렛 정도의 효과도 있어. 이걸 우리들의 동맹이 무사히 성사된 증거로 봐주면 고맙겠군."
할버드는 사뭇 만족스러운 듯이 기분 좋은 얼굴입니다.
"그럼 일단 다른 서번트를 모두 쓰러트릴 때까지 우린 협력 관계다. 앞으로 연락할 일이 생기거든 D를 통해서 당신에게 전달하겠어. 또 다른 서번트를 발견했을 때 그쪽의 힘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연락할 테니 기분이 내키거든 찾아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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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범상치 않은 인물과 마주친 것 같군요.
"서번트가 없어도 우리 둘쯤은 문제가 안 된다 그 말인가? 자신감 쩔어주는데? 하지만 아직 우리들은 성배에 도달하지 못했지. 만약 당신 티켓이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뒈졌다고 쳐. 그럼 당신이 아무리 강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 정작 원하던 물건이 그림의 떡인데."
할버드는 자신의 불안감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능청스럽게 대꾸합니다.
"아, 참고로 이거 괜히 하는 말 아니야. 다 내 뼈아픈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심 어린 충고라고. 내 경우엔 티켓이 주인 말을 안 듣다가 혼자서 돌아가버렸거든. 그래서 뒤에 있는 저 친구한테는 느끼는 바가 참 크달까? 결국 좋든 싫든 우리는 운명공동체야 이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