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냥냥피

벚꽃여우 2014.06.01 15:16 조회 수 : 0

 교회에 마련된 작은 방 안에 들어간 두 사람이 나올 때까지 할버드는 팔짱을 낀 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이내 얘기가 끝났는지 아시아토가 밖으로 나왔다. 짧게 자른 검은 머리카락은 아무렇게나 뻗쳐있었고, 며칠 동안 씻지도 않았는지 몸에선 참기 힘든 악취를 풍겼으며, 얼굴은 숯검뎅이를 묻힌 것마냥 꾀죄죄했다. 그러나 할버드는 아시아토가 얼굴을 붉힌 채로 주변의 근육이 꿈틀꿈틀 경련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히죽거리는 입꼬리를 미처 감추지 못하고 아시아토는 재빠른 걸음걸이로 자신의 서번트를 데리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할버드는 장난스럽게 중얼거렸다.

 

 "어지간히 당신이 마음에 든 모양이야. 저거 반해있는 거 아닌가?"

 "후후, 지금 질투하는 건가?"

 

 찰스의 농담에 이번에는 할버드가 어이없어 할 차례였다.

 

 "농담이네. 자네도 알다시피 저 여자의 사랑은 한 개인을 대상으로 한 게 아닐세."

 

 방 안에서 오고 간 대화는 할버드 역시 듣고 있었다. 할버드 정도의 실력이라면 벽과 벽 사이를 허물고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은밀한 대화를 엿듣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였다. 아시아토는 말했다. 자신은 인간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이 전쟁을 최소한의 희생자만으로 끝내겠노라고. 그것이 가능한 지 여부는 둘째 치더라도, 단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녀의 말에는 한치의 거짓도 없다는 것이었다.

 

 "저 친구는 병원에 가보는 게 좋겠어."

 "흠, 왜 그렇게 생각하지?"

 "사랑이라는 말이 듣기는 좋겠지. 하지만 결국은 인간의 번식본능에 불과해. 성적 욕구라고. 저 여자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결국은 여러 남자들한테 강간당하길 바라는 욕구불만자일 뿐이야."

 "자네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나보군.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녀를 비웃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걸세."

 "그게 무슨 말이야?"

 

 묘하게 아시아토에 대해 호의적인 반응에 할버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알고있는 찰스였다면 제일 먼저 그녀의 이상론을 비웃었을 법한데.

 

 "한가지 물어보겠네만, 자네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해본 적이 있나?"

 "풉......!"

 

 예상치 못한 반격에 할버드는 입안으로 기울였던 커피잔을 대차게 뿜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 컵 안에는 사랑의 묘약이 들어있었다고 토마스가 알려주었다.

 

 "보아하니 첫사랑도 아직인 것 같은데. 동정인가?"

 "무무무무무슨......!?"

 "사랑을 모르는 자가 어찌 사랑을 꿈꾸는 자를 비난할 수 있겠나. 그건 신이라도 불가능할 거야."

 

 지금 자신을 거울에 비춰본다면 분명 귓속까지 빨개져있으리라. 할버드는 고개를 돌렸다.

 

 "쓸데없는 참견이야! 그래, 어차피 나는 태어나서 지금껏 누군가를 좋아해본 적도 없다고!"

 "젊군."

 "다, 당신에 나에 대해 뭘 안다고 그래? 그, 그러는 당신은,  사, 사, 사, 사랑이 뭔지 알아?"

 "유감스럽게도 이 몸 또한 사랑이 무엇인지 그 답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닐세."

 "그것 봐! 자기도 모르면서 잘난 척은......"

 "사랑에는 여러가지 형태가 있다네. 그것을 느끼는 형태 또한 여러가지가 있으니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찰스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이 마치 진짜 수도사 같다고 할버드는 생각했다.

 

 "자네도 어릴 적 부모님께 키워진 기억이 있겠지? 그 또한 하나의 사랑의 형태일세."

 

 그 말에 자신의 어렸을 적의 기억에 대해 회상해본다. 떠오르는 것은 가족의 따뜻함 같은 건 결코 아니였지만.

 

 "......내 부모는 그저 자신들의 뒤를 이을 후계자가 필요했던 것 뿐이야."

 "설령 그렇다고 해도, 자네를 보호하려고 했던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랑일세."

 

 사랑의 형태는 하나가 아니라는 찰스의 말에 입각해서 생각해본다면 확실히 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행위 자체도 사랑으로 볼 수 있었다. 설령 그 안에 구체적인 애정 행위가 없었을 지라도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고 누가 부정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세상은 사랑으로 가득차있네. 허나 살아가면서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 또한 있지. 그것은 사랑이 손쉽게 다른 감정으로 변하기 때문일세. 그것을 모르는 자들에게 있어선 때때로 사랑은 욕망이나 집착, 분노나 증오가 되기도 하네."

 

 찰스는 창가로 다가가서 주저없는 움직임으로 창문을 열었다. 바람이 그의 긴 머리카락을 흐트러놓았다. 할버드는 찰스의 눈동자가 이곳이 아닌 어딘가 다른 곳을 향해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이 시대에 소환된 순간부터 끊임없이 무언가를 갈망하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니, 사랑을 모르는 자신으로써는 이해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지만.

 

 "당신도,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이 있었나보지?"

 "그러하다."

 "지금도 그 사람을 사랑해?"

 "물론.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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