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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비밀비밀글

Reiarine 2012.11.29 06:04 조회 수 : 1

 

 01.


 그 날 낮, 카이엔은 런던의 거리를 홀로 걷고 있었다. 이후에 벌어진 일에 대해 변명도 변호도 하지 않고 그 일이 일어난 이유를 말한다면, 혹은 카이엔이 지금 혼자 거리를 걷고 있는 이유를 말한다면 그는 자만했다고 말할 수 있다.

 사실 카이엔은 자만할 정도로 강했다. 물론 보통 사람의 관점에서의 '강함', 그러니까 힘이 세다던가 싸움을 잘 한다는 의미에서도 강한 편이었지만 그는 마술사였고 사람을 죽일 줄 아는 사람이었다. 단순히 사람을 칼로 찌르면 죽는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상대를 등 뒤에서 찌르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머리를 날려버릴 수 있는 지 아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카이엔은 아무 말도 없이 그의 서번트도 대동하지 않고 거리를 혼자 다니고 있었다. 두 사람이 각자 움직인다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것을 굳이 같이 다녀서 비효율적인 행동을 하고싶지 않았기에 서로 개별행동을 하기로 했다. 그의 서번트가 대낮부터 싸우고 상대를 쳐죽이기를 원하는 전투광도 아니었고, 큰 관심은 가지지 않았지만 그의 서번트 또한 별 일 없이 적당히 어딘가 다녀오겠거니 생각한 그는 앞으로 일어날 싸움에 대비해 이런저런 장소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버킹엄 궁전 같은 곳은 경비가 삼엄해 좋지 않았다. 시계탑은 아직까지는 근처에도 가고싶지 않았다.


 "거 쉬운 일이 없네."


 적당한 외출복에 선글라스를 끼고 담배를 꼬나물고 거리를 쏘다니는 그의 모습은 전혀 마술사로 보이지 않고 해외에 처음으로 여행을 와서 들떠있는 애송이로 보인다는 점에서는 위장의 의미로 합격점이었지만 그 자신은 '마술사처럼 보이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쓰지는 않았다. 다만 그저 하려던 일이 잘 되지 않자 침을 퉷 뱉으며 담배만 태울 뿐이었다.


 "그러면 다음은…"


 적당히 피던 담배를 밟아 끈 그는 다음 적당해보이는 장소로 발길을 옮겼다.




 02.


 카이엔은 안쪽을 살펴보면서 이곳이 그가 찾던 적당한 곳이라는 걸 느꼈고 만족스러운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목적은 관광과는 전혀 동떨어져 있는 것이었지만 그의 모습은 사진기를 들고 낯선 나라의 사진을 찍으며 관광을 즐기는 관광객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평소에도 필요하다면 위장을 해왔던 그이기에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그가 하려던 일 자체는 잘 살펴보는 것이라는, 관광과 크게 다른 일은 아니었다.  


 "어디보자…"


 그는 꼼꼼한 성격이었다. 평소의 모습을 보면 사소한 건 별로 신경쓰지 않는 듯한 느슨해 보이는 사람이었지만, 직업병 같은 것으로 꼼꼼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이번 일을 위해서도 꼼꼼한 성격을 발휘해서 구석구석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까지 살펴보고 있었다. 벽 뒤의 장소, 밖에서는 안 보이지만 안쪽에서는 밖을 볼 수 있는 장소, 위험할 때의 도주경로 같은 것들을 체크하면서 한 바퀴 둘러본 그는 자신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첫번째 조사를 마친 카이엔은 다음으로 본격적으로 마술적인 결계를 작성할 곳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보통의 경우라면 조사 정도로 충분했을 테지만 단순한 일거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만반의 준비를 할 필요가 있었다. 다시 결계의 중심으로 적당한 곳을 물색하던 그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정확히 무어라고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무언가 움직이는 감각. 보통사람은 느낄 수 없는 무언가의 감각에 카이엔은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흘러가고 있음을, 어딘가에서부턴가 잘못되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카이엔이 자신이 공격당했다는 것을 알아차린 건 이미 자신의 팔에서 피가 뿜어져 나온 후의 일이었다.

 어디에서, 누가 공격한 것인지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카이엔에게는 적어도 공격의 방향조차 알아내지 못한 것은 엄청난 실착이었다.


 "공격당한 것도 모를 정도라고…? 웃기지 마, 젠장!"


 공격해온 방향도, 그 정체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더 이상 이곳에 있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릴 수도 있었다. 그렇게 판단한 카이엔은 재빨리 아까 봐두었던 루트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운이 좋게도 빠르게 도망칠 수 있는 경로를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전력을 다해 달려 그 장소를 빠져나오는 동안 더 이상 공격받는 일은 없었다. 눈에 띄는 벤치에 쓰러지듯 걸터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자 그제서야 상처에서 아픔이 느껴졌다. 너무 긴장한 채로 신경쓸 틈도 없었던 잠시동안은 아픔도 전혀 느낄 수 없었지만 긴장이 풀리자 그제서야 아픔이 몰려오는 듯 했다. 자기 자신도 모르게 공격당한 이상 긴장을 풀 수는 없었지만 단시간에 격하게 움직이고 나자 절로 긴장이 풀리고 말았다. 하지만 대낮에 사람들이 보고 있는 동안에 공격해올 정도는 아닐 것이다. 이미 몇몇 사람들은 피를 흘리고있는 카이엔을 이상한 듯이 쳐다볼 정도였다.


 "큭… 서번트가…"


 카이엔은 자신을 공격한 것이 아마 서번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보통의 마술사가 자신을 그렇게 기습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아마도 서번트였을 거라는 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카이엔은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같은 서번트라면 그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알 수 있었을텐데 아무 말 없이 자신을 혼자 보내다니. 물론 서로 합의한 일이었지만 그렇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03.


 "카이엔 님─ …어라?"


 그녀가 돌아왔을 때 집안은 소용했다.

 카이엔에게 소환되고 나서 그녀의 첫 활동은 성공적인 편이었다. 세상은 돈으로 지배된다는 농담 아닌 농담처럼 돈은 현대 사회에서 정말 중요한 요소였고 그건 전쟁에도 다르게 적용되지 않는다. 총으로 상대를 쏘려면 총과 총알이 있어야 하고, 그것들이 있으려면 결국 돈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것은 마술사들의 성배전쟁에서도 다르지 않다. 꼭 성배전쟁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마술이라는 것 자체도 돈이 많이 필요한 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뛰어난 실력으로 돈을 얻은 것을, 게다가 다른 서번트를 물리치고서 그가 번 것도 뺏어올 수 있었다는 것에 가슴을 펴고 당당히 자랑스러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집은 그녀의 기분과는 반대로 축 처진 분위기였다. 평소에도 그리 큰 소리가 나지 않고 조용한 집이었지만 그런 의미가 아니라 싸늘하고 을씨년스러운 느낌의 조용함이었다. 밤이 찾아왔는데도 불이 켜진 곳이 없었고 어디선가 바람이라도 새어드는 것 처럼 싸늘한 기운이 가득했다.


 "카이엔 님, 어디에 있어?"


 잠시 그녀는 몇몇 방을 돌아보았지만 평소처럼, 평소와 다르게 아무것도 없이 텅 빈 채였다. 순간 그녀가 없는 사이 다른 마스터나 서번트에게 습격이라도 당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봤지만 집에는 오히려 마술적인 결계가 더 쳐져있었고 누군가가 침입한 흔적은 없었다. 그녀가 이 집에서 생활하게 된 것은 겨우 이틀 째지만 그녀가 보기에도 달라진 것 없이 조용하기만 했다.

 그러던 그녀는 카이엔이 보통 응접실에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할 일이 없으면 그는 자신의 방이 아니라 응접실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던 것이다. 의문을 느끼며 카이엔이 보통 있는 응접실로 가 보자 예상대로 카이엔은 예의 소파에 앉아 있었다.

 다만, 집안의 꼴이 말이 아니었다. 레아가 가져다준 듯 싶은 차는 찻잔과 접시채로 깨어지고 쏟아져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고 테이블은 반토막이 난 채로 뒤집어져 있었다. 한마디로 난장판이었다.


 "흐응, 오늘은 뭐야? 폐허 연출?"


 전혀 평범하지 않은 광경에도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한 것이 아니라 그녀에게는 그다지 이상함을 느낄 광경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녀의 말에도 아무런 반응도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카이엔의 상태는 평범해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움직임도 없는 카이엔의 곁으로 다가갔다.


 "어떻게 쓰던 상관은 없지만 이러려고 돈이 필요한거였어?"


 그녀가 말하자마자 퍽하는 소리가 났다. 카이엔이 보지도 않고 손을 휘둘러 그녀를 내쳤던 것이었다. 저리 가라는 듯이 한 카이엔의 행동에 그녀는 황당할 정도였다.


 "…쳤어?"


 그녀의 말에도 카이엔은 그러고도 아무 말도 없이 앉아 있을 뿐이었다. 카이엔이 원하는 것과 달리 평소 막나가는 그녀라도 이런 처사에는 불쾌함을 느꼈는지 거기서 그만두지 않고 계속 따지기 시작했다.


 "인간 주제에 지금 날 친거야?"


 '인간 주제에' 라는 그 말에 카이엔이 벌떡 일어섰다.


 "지금 나랑 해보자는 거……"


 카이엔의 난폭한 반응에 받아치려던 그녀였지만 더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녀의 배에 단검이 꽂혀있었기 때문이다. 고통도 고통이었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기에 그녀는 아무런 대처도 할 수 없었다.


 "───!!"


 카이엔은 그녀를 죽이려는 것이 아니었다. 서번트는 이런 정도에 죽지 않는 다는 것을 잘 알고서 자신의 목적을 위해 자신의 서번트를 찌른 것이었다.

 그녀를 찌른 손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단검을 비틀어 휘저어버렸다. 붉은 피가 상처에서 터져나오고 배에서는 더욱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다. 이해할 수 없는 일과 엄청난 고통에 그녀는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서번트니까 이 정도는 별 문제 없지?"


 카이엔은 주저앉은 그녀의 옆쪽에 앉아 조용히 귓가에 속삭였다.


 "어딘가의 영령이던 간에, 지금은 내가 네 주인이야. 무슨 뜻인지 알겠지?"


 조용한 목소리는 화가 났다기 보다는 오히려 어린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의 친절한 목소리 같았지만 쏟아지는 피나 그가 말하는 내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점이 더욱 소름끼치는 점이었다.


 "나는 말귀를 못 알아듣는 걸 정말 싫어하니까 용서해주는 건 이번 뿐이야."


 카이엔이 단검을 거칠게 잡아 빼자 그녀의 몸이 크게 움찔했다. 평소의 모습과와는 달리 카이엔이 응접실을 나갈때까지도 그녀는 주저앉은 채로 아무 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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