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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토용.

마우얀 2012.10.27 22:53 조회 수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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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유서 깊은 극장이라고나 할까, 매일 손님이 끊이지를 않는 군.

 

서번트의 지각능력을 통해 느껴지는 다른 서번트의 존재에 미셸은 그렇게 생각했다.

 

오랜 세월동안 동일한 용도로서 사용되어온 장소에는 그곳을 거쳐 간 무수한 인간들의 상념이 축적되어 하나의 신비를 이룬다. 원래라면 이 건물이 가진 연한정도로 생성되는 힘은 아니지만, 이곳은 마경 런던.

신비가 구현되기 쉬운 기반만큼은 이 이상 없을 정도로 갖추어진 토지인 만큼, 극장이라는 건물이 가진 특유의 상징성이 무언가의 힘으로서 작용되었을 확률 역시 없지는 않다.

 

, 구체적인 구현 원리를 파고드는 것 보단 그냥 외로운 극장이 손님을 불러 모은다, 정도로 끝 마쳐 두는 편이 정취가 있겠지만.

 

미셸, 이건......!”

 

극장을 향해 다가오는 기척을 깨달은 것인지, 미셸의 마스터 마샬이 당혹한 듯한 반응을 보였다.

하긴, 이렇게까지 강대한 마력을 숨기지도 않고 마구 뿜어대며 다가오는 것이다. 같은 서번트가 아니라 해도, 어느 정도 이쪽에 발을 들인 자라고 한다면 그 존재는 싫어도 지각하게 된다.

 

서번트……. 느껴지는 기척으로 볼 땐 아마 버서커로군. 게다가 이번엔 처음부터 전력전개의 상태인 것 같은데.”

 

이전에 왔었을 때는 그 버서커의 마스터인 소녀가 가지고 있던 마도구에 의해 광기가 억눌러져 있는 듯 했지만, 이번에는 그런 낌새가 전혀 없다. 버서커 클래스의 특징이라면 압도적인 신체능력을 얻는 대가로서 이성을 상실한다는 것이겠지만, 만약 그 특성을 필요한 상황에서만 임의로 사용할 수 있다면 그것은 더할 나위 없는 강점이 된다.

 

그런데도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떠오르는 가능성은 몇 가지 정도. 그 마도구의 기능 자체에 한계가 있거나, 혹은 그 소유자인 소녀가 버서커와 동행하지 않았을 경우. 혹은 양쪽 모두인가.

 

복수전, 이라는 건가?”

 

두려운 듯이 미세한 떨림이 담긴 목소리와 우려에 찬 표정. 하지만 그 속에서 엿보이는 어떠한 각오의 빛을 드러내 보이는 마샬의 모습을 보고 미셸은 생각했다.

 

 

──이건 또 저지를 생각이로군.

 

마샬이 성배에 거는 각오는 각별하다. 최근 그가 보여온 자살지원자 수준의 무모한 행동이 그가 성배에 매달리는 절박함의 정도라고 생각하면 알기 쉽겠지.

 

성배만 얻는다면, 지금까지의 모든 불우한 여건이나 딸아이와 자신을 덮치는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위협 속에 몸을 던진다는 건 이미 행동 논리로서 파탄나 있지만, 그것조차 망각할 만큼 매혹적인 보상이 바로 성배이다. 눈앞에 보이는 정답이란 건 사람에게 강한 행동력을 부여하지만, 동시에 그 사람을 맹목적으로 만들기도 하니까.

 

물론, 그것은 성배를 얻기 위해 소환된 서번트에게 있어서는 형편이 좋은 일이다.

 

같이 싸워나갈 협력자로서든, 혹은 이용하기 편한 도구로서든. 의욕도 없이 도망치는데 급급한 마스터보단 성배를 얻기 위해 목숨까지 걸어주는 마스터 쪽이 나을 테니까.

 

하지만, 서번트에게 형편이 좋다고 해서 그것이 미셸에게 있어서 좋은 일인가 하면, 글쎄.

 

마스터, 제안이 하나 있는데 들어보겠나?”

 

……제안이라고?”

 

미셸의 심기를 건드릴 것을 우려한 것인지 노골적으로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내심 수상쩍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태도로 되묻는 마샬에게, 미셸은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속 속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는 미셸 자신만이 알고 있겠지만, 만일 누군가 마샬이 성배전쟁에 임하는 태도에 대해 미셸에게 물었다면,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본인 목숨을 어디에 쓸진 본인 자유겠지. 하지만 그걸 옆에서 훼방 놓는 것도 자유 아니겠나.

 

 

 

/ 2

 

지난 밤, 버서커와 미셸의 싸움의 무대가 되었던 극장 홀에는 여전히 파괴의 흔적이 뚜렷이 남아있었다. 현재 극장이 휴무중이라고는 해도 관리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고, 실제로 오늘 새벽 이 현장을 발견한 관리인은 가히 기절초풍하다 시피 놀라 극장 관계자들에게 연락을 취했고, 자칫했다간 [로얄 코트 극장, 원흉을 알 수 없는 재난에 습격!] 이라는 문구로 아침 신문을 장식할 뻔 했던 사건은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손을 쓴 마술협회의 공작으로 인해 은폐된 상태였다.

 

그러나, 그런 사소한 사정 따윈 알바 아니라는 듯이, 조명하나 없이 어두운 정적 속에 열화와 같이 붉은 빛의 입자가 하나로 모여 형태를 이룬다. 모습을 드러낸 것은, 장신의 인영[人影]이었다. 날렵하면서도 끝없는 힘을 내포한 강인한 육체를 갑옷으로 감싸고, 그 갑옷사이로 활화산과 같이 용솟음치는 것은 홍련의 불꽃.

 

끝없는 원념과 광기의 마력을 숨기려고도 하지 않고 드러내고 있는 그 거한의 정체야 말로, 지금 이 폐허를 만들어낸 장본인 중 하나인 서번트 버서커였다.

 

………….”

 

헬멧 속에 감추어져 으스스한 잔광만을 엿보이게 하는 시선이, 무언가를 찾기라도 하는 듯이 멍하니 허공을 헤멘다. 그가 마스터로부터 받은 명령은, 이 로얄 코트 극장으로 향한 뒤 누구라도 좋으니 발견한 상대를 쓰러트리라는 것. 단순한 명령이긴 하지만, 애당초 복잡한 전략의 지시가 불가능한 버서커를 효율적으로 운영한다는 관점에서 보자면 리제 멕시아의 방침은 그 나름대로 합리적이라 할 수 있었다.

 

버서커가 있는 무대로부터 반대편, 또 하나의 붉은 입자가 모여 형태를 이룬다. 버서커의 그것이 홍련과 같은 불꽃의 붉음이라한다면, 지금 모습을 드러내는 여성의 것은 사람의 손을 거쳐 다듬어진 홍옥의 빨강.

 

환영합니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유감스럽게도 준비가 부족하군. 그래서 어제 못 다한 결말이라도 내러온 건가?”

 

………….”

 

미셸의 이야기에 호흥 하기라도 하듯, 끓어오르는 버서커의 마력이 불꽃과 함께 형태를 이룬다. 이윽고 버서커의 손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미 검이라기 보단 몽둥이에 가까운 검고 투박한 대검이었다.

 

이전에는 사용하지 않았던 무기의 존재에 미셸은 전략을 바꾼 것일까 하고 의문을 품었지만, 그 직후 그 인식을 고쳤다.

 

 

!!!

 

펄럭, 하고 미셸이 입은 드레스가 흩날렸다. 춤추는 듯한 스탭으로 위치를 옮긴 미셸이 본래 서 있던 곳에 꽂혀 있는 것은 바로 방금 전까지 버서커가 쥐고 있었던 칠흑의 대검.

 

전투 시작부터 다짜고짜 무기를 내던진다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행위에 미셸이 무언가 표정을 바꾸기도 전, 그녀의 복부에 폭렬의 권격이 가차 없이 틀어박힌다. 불꽃의 속성이 가미된 일격이 피부를 불태우고, 뼈를 분쇄한다. 손을 통해 전해져 오는 확실한 감각을 버서커가 실감하는 것과 동시에, 미셸의 신체가 종이장처럼 날아갔다.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미셸을 추격하듯이 몸을 날리는 버서커의 시야를, 검은 벽이 가로막는다. 버서커의 공격에 당해 날아가면서도, 미셸이 꺼내들어 펼친 우산이 광전사의 앞길을 차단한 것이다. 물론, 서번트의 무장이라고는 해도 겨우 그 정도의 소품으로 광전사의 돌진을 막을 수 있을 리도 없고, 펼쳐진 우산은 버서커의 손짓 한 번에 찢겨나갔다.

 

하지만, 그로 인해서 생긴 아주 잠시동안의 틈은, 서번트인 미셸이 자세를 갖추기에는 충분한 것.

 

키잉, 하고 세된 울음소리가 울려퍼진다. 어느새 자세를 갖추고 버서커의 공격을 막아낸 미셸의 손에는 그녀가 애용하는 철제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

 

울컥, 하고 미셸의 입가에서 피가 흘러나온다. 그것을 닦아낼 여유조차 주지 않겠다는 듯이, 버서커의 연격이 노도와 같이 쉴 새 없이 몰아친다.

 

어젯밤 치러진 미셸과 버서커의 싸움을 분석한 결과, 미셸이 어떤 종류의 환각이나 착시를 일으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한 리제는 그에 대한 대처법으로서 자신의 서번트에게 이러한 명령을 내린바 있다. 만일 버서커가 미셸을 상대로 싸우게 될 경우, 그녀가 어떠한 수작도 취하지 못하도록 쉴 새 없이 공격하라는 것.

 

미셸이 가진 힘이 리제가 예측한 것처럼 무언가 환영을 보여줌으로서 공격을 회피하는 것이라면 이는 충분히 전략으로서 유효하다.

 

■■■■■─────!!!!!!!!!!!!!”

 

크읏!”

 

전장의 천칭은,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한쪽을 향해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 3

두 서번트에 의한 싸움이 한창인 극장 홀. 광란의 서번트가 쉴 새 없이 내뿜는 불꽃의 일렁임만이 조명으로 존재하는 그곳 한 구석에서,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조용히 때를 기다리는 자가 존재하고 있었다.

 

어쌔신 클래스의 그것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런데도 인간으로서는 충분히 달인이라 불릴 영역의 기척차단. 인외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서번트간의 대결을 도검과 같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빠짐없이 관찰하고 있는 남자는 서번트 어쌔신의 마스터, 마사무네 쿄이치 였다.

 

…….”

 

극한까지 절제된 호흡을 가다듬으면서도, 그의 머릿속은 쉴 새 없이 회전하고 있었다. 랜서와 버서커의 일련의 공방, 그로 인해 추측되는 각 서번트의 특성을 남김없이 파악하고 분석한다.

 

우선적으로 봤을 때 위협인 것은 단연 광란의 영령일 것이다.

 

같은 서번트이자 삼기사의 일각인 랜서조차 제때 반응하지 못하게 만드는 민첩성과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는 짐승과 같은 영맹함. 직접적인 화력에 관해서는 아직 까지 확신할 수 없지만, 랜서의 발언에 따른다면 어제 이 장소에서 싸움을 벌인 서번트는 저 두 명. 거의 대부분이 불타거나 녹아내린 파괴의 흔적과, 지금 버서커가 보이는 염열의 특성을 가미한다면 단순한 격투 능력뿐만 아니라 광범위에 걸쳐 파괴를 일으킬만한 능력 역시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 좋겠지.

 

파악한 정보를 기초로한 대처 방안. 직접적인 전투로 인한 승리는 하책. 어쌔신 클래스 특유의 기척차단과, 이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상대방의 패널티 등을 미루어 판단할 때 버서커 자신보다도 그 마스터를 노리는 편이 몇 배는 더 효율적일 것이다.

 

그 전투능력의 높음과 마력소모의 극심함을 감안한다면 굳이 쓰러트리기 위해서 애쓸 필요 없이 버서커와의 전투를 회피해가며 다른 주종과의 싸움을 통해 소모를 유도하는 것 또한 방침으로서는 유효하다.

 

 

그럼, 그와 상대하고 있는 랜서의 건에 대해서 이지만…….

 

마사무네 쿄이치의 주변에 있는 공기가 한 층 더 침묵을 더한다. 그것은 아주 미세한 변화에 지나지 않았지만, 신체의 사소한 생리반응 마저도 제어해가며 몸을 숨기고 있는 이 남자가 품은 내심의 의문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했다.

 

불가해[不可解].

 

그것이 마사무네가 랜서에게 품은 감상이었다. 외관으로 판단할 때부터 이미 직접적인 전투에 적합하지 않다는 인상은 가지고 있었다. 화려함이나 아름다움은 있을지언정 전투에 있어 유용하다고는 할 수 없는 의복은 둘 째 치더라도, 그 움직임이나 자세하나 하나가 무예자로서 봤을 때 거의 아마추어나 다름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용하는 무기 또한 랜서 클래스의 특징인 창이 아닌 우산이나 지팡이와 같은 소도구들 뿐. 솔직히 말해서 어쌔신과의 정보 수집을 통해 이미 다른 캐스터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 상태였더라면 저 여성이야 말로 캐스터가 아니었을까 의심했었을 정도이다.

 

■■■■■─────!!!!!!!!!!!!!”

 

거친 포효와 함께 추격에 한층 더 열의를 가하는 버서커. 부상에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으면서도 그것을 어떻게든 버텨내고 있는 랜서 이지만, 마사무네가 봤을 때 그것은 삼기사 클래스 특유의 높은 신체능력과 저 서번트가 본래부터 가진 듯한 천성의 감에 의지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아주 약간의 간섭만으로 끊어져버릴 정도의 가는 실 위에서의 곡예.

 

 

───여기선 한번 패를 던져볼까.

 

지금은 어떻게든 버서커의 공격을 버텨내고 있는 랜서이지만, 지금 쿄이치가 버서커와 함께 랜서를 공격한다면 그 균형은 바로 무너진다. 서번트들간의 싸움에 마스터가 단신으로 돌입하는 등 본래라면 자살지원자의 행동으로 밖에 보이지 않지만, 이전 어쌔신과의 모의전을 통해 서번트의 힘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파악한 쿄이치는 설령 위험에 빠지더라도 몸을 빼내 도망치는 것 정도라면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렇게 결정했다면 행동은 빠른 편이 좋다.

은밀하고도 신속하게, 만의 하나의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해 호흡조차 멈춘 채로 랜서와 버서커 양측에게 있어서의 사각 지대로 몸을 옮긴 쿄이치는 자신의 애도의 손잡이에 차분히 손을 대었다.

 

버서커와는 달리 신체를 보호하는 갑옷 같은 것을 입지 않은 랜서라 해도, 서번트는 서번트. 쿄이치가 가진 검으로도 치명상이 주어질 지는 확신할 수 없다. 허나, 그 또한 상관없는 일.

 

애시당초 쿄이치 자신이 랜서의 목숨을 빼앗을 필요 같은 것은 없다. 버서커에게 전력을 다하고 있는 랜서의 주의를 흩트려놓을 수만 있다면 그 뒤의 일은 버서커 쪽에서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필요한 것은 그저 일섬[一閃].

 

인간으로서 다다를 수 있는 무예의 극한. 아무런 전조도 없이 내보내진 참격이 무방비한 랜서의 등을 베어내고───다음 순간, 랜서의 모습이 사라졌다.

 

 

“......!!”

 

소리 없는 경악을 내뱉으며, 쿄이치의 두 눈이 크게 떠진다.

 

순간 적으로 떠오른 가능성은 영체화.

허나, 무예자로서 그가 가진 감각이 그 가능성을 부정한다. 제 아무리 영체화로 인해 모습을 감추었다고 해도, 그것은 그 존재 자체가 그곳에서 사라져버린 것은 아니다. 서번트가 가진 강대한 영격은 단지 있는 것만으로도 그 존재감을 내뿜고, 그것을 쿄이치가 감지하지 못할 리가 없다.

 

허나, 그렇다면 지금 상황은 도대체──!

 

 

“...uuuuuuu....”

 

마사무네 쿄이치의 정신을 되돌린 것은, 오싹하기까지 한 원념과 살기에 물든 신음성 소리였다. 불과 방금 전까지 싸우던 상대가 아무런 전조도 없이 모습을 감추어버린 이 사태에 순간적으로 움직임을 멈춘 버서커였지만, 이내 그 스산한 시선이 자신의 눈앞에 있는 또 다른 []의 모습을 확인한다.

 

“auuuuu.....au...Arrrrrrrrrrrrrrr!!!!!!!!!!!!!!!!!”

 

 

불과 한 순간만 늦었어도 흉곽을 다진 고기로 만들어버렸을 일격에 반응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마사무네 쿄이치가 몸에 쌓아왔던 업에 의한 것이었다.

 

버서커의 주먹을 막아낸 무라마사가 비명을 지르듯 새된 울음소리를 낸다. 그 격이 낮은 것이라면 서번트의 무장조차 태워 뭉개버리는 버서커의 공격에도 버텨낸 것은 과연이 라고 밖에 할 수 없었지만, 물론 광전사의 공격이 그 정도로 그칠 리도 없다.

 

작열의 권격과 은빛의 칼날이 맞붙고, 그 번뜩임으로 어둠속을 밝힌다.

 

형식도, 격식도 일체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광전사의 공격은 어디까지나 흉폭하고도 가열. 버서커의 전신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불꽃으로 인해 달아오른 공기는 호흡조차 불가능하게 하고, 버서커의 공격 하나하나를 막아낼 때마다 극한까지 단련했음이 분명한 쿄이치의 육체가 타오르며 붕괴해간다.

 

이내 한계에 도달한 것일까. 아래로부터 쳐올리는 일격에 칼이 크게 튕겨나가고, 쿄이치가 자세를 무너뜨렸다. 드러난 빈틈. 쿄이치의 머리를 분쇄하기 위해 뻗어진 버서커의 주먹이 요란한 소리를 대며 달궈진 대기를 찢어발겼고,

 

그 직후, 버서커의 전신을 거상[巨象]이 돌격한 듯한 충격이 강타했다.

 

 

이문정주[裡門頂技] 충각[衝角].

 

왼손의 뼈마디 전부가 으스러지는 것을 대가로 뻗어낸 종권이, 광전사의 신체를 뒤로 날려 보낸다. 광전사에게 피해는 전무. 허나, 이 일격으로 벌어낸 간격에는 그 정도로는 손색 되지 않을만한 가치가 있었다.

 

 

────

 

깊고 깊고 깊게. 폐를 통해 혈관을 지나 세포 하나에 이르기 까지 전해져 가는 호흡. 활성화된 세포는 이전과는 다른 법칙성을 가지고 활동하기 시작하고, 그의 몸을 바꾸어간다.

 

고대의 검사들이 행하던 의식 중, 싸움의 전에 마음을 다잡는다는 것이 있다. 단순한 정신론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그들은 자신의 신체를 보다 싸움에 적합하게 바꾸고, 그 사고회로를 상대를 쓰러트리는 것에만 특화된 것으로 변용한다.

 

마사무네 가에 전해져 오는 기술은, 그것에 다소의 응용을 가한 것.

 

떠올리는 것은 사냥감을 찾아내는 맹수의 감각. 소리를, 향을, 온도를, 공기의 떨림을.

마치 태어날 때부터 그것만을 위해 특화된 생물인 것처럼, 세계의 요소 하나하나를 인지하고 검토한다.

 

목표는 찾을 수 없다.

찾는 것은 발견되지 않는다.

원하는 것은 그 어디에도 없었고, 그렇기에 마사무네는 망설임 없이 몸을 날렸다.

 

표적은 하나.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곳을 향해 휘둘러진 참격이 무의미하게 허공을 베는 감각이 쿄이치의 손을 통해 전해졌고── 확신으로 빛나는 두 눈동자가, 그의 일격을 막아내고 있는 검은 지팡이를 인식했다.

 

 

의문과 함께 퍼져나간 소리 없는 감탄은, 이제까지 모습을 감추고 있었던 서번트 랜서의 것. 상처는커녕 그을림 하나 없는 드레스는, 그녀가 이제껏 보여준 위기가 모두 허상에 지나지 않았다는 확실한 증표였다.

 

 

감각, 지각의 저해. 아니, 인식 그 자체의 왜곡. 이제야 명확해진 랜서의 술책에, 쿄이치는 무턱대고 먹이를 문 자신의 어리석음을 질타한다.

 

본래부터, 랜서는 버서커와 제대로 싸울 생각이 없었던 것이었겠지.

 

지금 버서커와 쿄이치를 속여 넘긴 그 능력을 통해 자신의 열세를 위장하고, 패배한 것처럼 모습을 감춘다. 다른 서번트가 대상이었다면 그 속에서 무언가의 허점을 찾아낼 지도 모르지만, 상대는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버서커. 감각의 왜곡을 통해 전해진 정보는, 본능에 충실한 광전사에게 그대로 사실로서 인식 된다.

 

쿄이치의 난입은 그녀에게 있어서도 뜻밖의 사건이었겠지만, 예상외의 변수조차 바로 써먹기 좋은 포석으로서 이용하는 그 영악함은 랜서라기보다도 암살자나 마술의 영령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

 

어느새 자세를 바로잡은 버서커가, 그 분노를 드러내듯 전신으로부터 불꽃을 내뿜으며 돌진해온다. 랜서에게 일격을 가함으로서 필연적으로 버서커에게 등을 향하게 된 쿄이치에게 그에 대응할만한 수단은 없었지만, 이곳에는 한 명더 버서커를 막아낼 수 있는 존재가 있었다.

 

랜서의 지팡이로부터 칼날을 거두어들이는 것과 동시에, 쿄이치는 망설임 없이 랜서의 뒤쪽에 있는 입구를 향해 달렸다. 본래 서번트에게 등을 보이는 것은 자살행위에 지나지 않지만, 그녀가 쿄이치를 찌르기 위해 틈을 보인다면, 그 직후에 달려온 버서커의 위협에 대한 방비는 늦춰질 수밖에 없다.

 

모 아니면 도식의 도박.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를 선택한 검사는 망설임 없이 도주를 택했고, 그 귓가에 경탄의 감정이 담긴 미성이 들려왔다.

 

 

──그렇군, 그 얼굴은 기억해두지.”

 

 

 

콰앙!!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랜서와 마사무네의 머리 위, 2층 관객석의 일부가 폭락한다.

 

무너져 내린 잔해는 그대로 랜서와 마사무네를 뒤덮었고, 그보다 한발 늦게 도달한 버서커의 공격은, 원래 노렸던 목표가 아닌, 콘크리트 더미만을 부순 채 허공을 갈랐다.

 

 

 

■■■■■─────!!!!!!!!!!!!!”

 

고요와 어둠에 뒤덮인 정적 속. 사냥감을 놓치고만 광전사의 절규만이, 그 불꽃과 같이 격렬하게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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