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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패스파인더28

2008.12.19 23:00

azelight 조회 수:553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야예이는 냉정하게 그들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낸시는 여전히 한쪽 소매에 자신의 오른손을 집어넣은 상태로 언제라도 주문을 날릴 수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기선을 꺾을 테니 대비하도록 해."

 야예이는 슬쩍 낸시를 돌아보며 말했다.

 “응?”

 낸시는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해 반문하자 야예니는 “귀를 막아.”라고 말했다. 곧 야예이로부터 무시무시한 으르렁거림이 터져 나왔다. 낸시는 그 외침에 놀라 하마터면 지금 준비해두고 있던 주문을 잃을 뻔 했다. 어찌나 무시무시한 외침이었던지 마법에 의해 지배당하는 짐승들 한 걸음 물러서게 만드는 전투함성을 내지른 야예이는 놀라운 속도로 돌진하여 검을 휘둘렀다.
 거대한 대검이 움직임에 따라 검의 궤적에 있던 짐승들이 순식간에 토막이 났다.
 야예이는 묵직하게 걸려오는 손맛을 느끼며 재차 검을 휘둘렀다. 페시언을 새겨 넣기 위해 일반적인 검보다 훨씬 넓은 폭과 긴 길이를 가진 검은 그 검신에 걸리는 것이라면 가차 없이 베어나갔다.
 낸시는 그런 야예이를 지원하듯이 소매 속에 숨겨둔 오른손을 위로 들어 올렸다. 낸시의 손에서 강렬한 빛이 터져 나와 짐승들의 시야를 가렸다. 등을 지고 있는 야예이는 한 순간 빛이 번뜩였다는 정도밖에 느끼지 못했겠지만 그 빛을 직접 받은 짐승들은 일순간 시야가 마비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빛은 야예이에게 강한 활력을 불어 넣어 주고 있었다. 야예이는 몸속에 차오르는 힘을 느끼며 재차 검을 휘둘렀다. 시야가 마비되어 끙끙 거리는 짐승은 그의 상대가 아니었다. 
 낸시 역시 그 사이 새로운 주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낸시는 일단 결계를 유지하는 키엘리니를 보호하기 위해 재빨리 방어 주문을 구축했다. 손아귀에 있는 붉은 보석가루가 타오르면서 그대로 불길이 되어 키엘리니와 낸시, 야예이와 짐승들 사이를 가로질렀다.
 야예이는 갑자기 닥쳐온 불줄기에 놀란 듯한 반응을 보였지만 일단 짐승들과 단절되자 낸시의 곁으로 돌아왔다.

 “이건?”

 “시간벌기.”

 낸시는 소매에서 밧줄을 꺼내 키엘리니의 주변에 둘려 원을 만들며 말했다.

 “키엘리니를 보호할 술식을 짜기 위한 임시방편이야. 잠시 동안 자신들의 생존본능 때문에 주춤하겠지만 지배자가 강제하면 그냥 뚫고 들어오려고 할 걸. 무사할 수 없더라도 말이야.”

 낸시는 그렇게 말하고는 분필로 키엘리니를 두른 원의 바깥쪽에 8개의 페시언을 그렸다. 그리고 한쪽 손을 소매에 넣고 나직하게 주문을 읊조리자 밧줄로 만든 원 위로 빛의 벽이 나타났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또 다시 가루 같은 것을 뿌렸다.

 “음. 임시방편치고는 그럭저럭. 자, 그럼 대비해.”

 낸시는 자신이 만든 결계를 보고 만족스러운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경계 태세를 취했다. 야예이는 어께를 으쓱하고는 상단으로 검을 쥐고는 불길을 뚫고 들어올 때를 대비했다. 
 한참을 기다렸지만 아무런 시도도 없었다.

 “어.”

 낸시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허공에 손을 휘두르며 주문을 외웠다.

 “없어. 다 갔어. 어째서?”

 낸시가 당황한 듯 말했다.

 “음, 탬퍼씨들에게로 간 것은...”

 야예이가 검을 다시 등에 걸치며 말하려는데 동시에 낸시도 양 손뼉을 짝치며 말했다.

 “탬퍼 할아버지들 쪽으로 간 거야. 뭐, 그러면 상관없나.”

 낸시는 별 문제 없다는 듯 말했다.

 “그쪽에는 로딘씨와 토른 뿐일 텐데 괜찮을까?”

 “응? 문제없어.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들도 아니고 오히려 여관 안에 있으면 방어하기도 쉬울 테니까. 거기에 탬퍼 할아범이 추가되면 뭐 끝이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참 포기가 빠르네. 이쪽이 감당하기 힘들다고 여겨지니 바로 다른 쪽을 치러간 건가.”
 
 낸시는 ‘적’이라고 칭할 수 있는 존재가 자신들을 지금으로서는 쓰러뜨릴 수 없다고 판단했다. 딱히 근거라고 한다면 일단 가장 큰 이유로 여기 혼자 주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다는 듯이 집중하고 있는 키엘리니였지만 낸시 본인이 의도적으로 이렇게 상황을 만든 것이기도 했다.
 굳이 강력한 마법을 격리에 사용하고 엘리엔의 물품을 사용해 간이 결계를 펼쳐 역량 이상의 목습을 보인 것도 모두 적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가 그녀를 경계할 수 있도록.
 그리고 평범한 전사의 이상인 야예이의 전투능력이 어우러져 그에게 최소한 손실을 줄이고 물러나는 선택을 하게 한 것이다. 불꽃의 벽도 안전하게 물러날 수 있다는 판단을 그에게 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여전히 감시하고 있을 적을 위해 당황한 모습을 보여줘서 그가 후퇴가 도리어 허를 찔렀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고 말이다.
 그리고 지금 그는 여관의 신나서 여관을 공격하고 있을 것이고...
 낸시는 히죽 웃었다.
 사실 불리한 것은 오히려 자신들 쪽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포위된 상태에서 동시에 2사람을 지키는 것은 야예이로서는 불가능했다. 키엘리니는 결계를 유지하기 위해 무방비 상태이고 낸시 역시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무방비 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섣불리 적을 자극해서 난전이 되면 낸시로서는 자신을 지킬 수단이 없었다. 키엘리니가 결계를 포기하고 전투에 가담한다 해도 그렇게 되면 늦을 것이 틀림없었으니까.
 자신이 호락호락하게 당하지는 않겠지만 전력의 반감을 피할 수 없을 것이고 결계를 포기한다는 것은 오히려 적에게 총력을 기울이게 할 빌미를 줄 것이 틀림없었다. 키엘리니와 야예이의 능력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아닌 이상 섣부르게 도박을 할 수도 없으니 낸시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던 셈이다. 일단 포위당해 있다는 것 자체가 전세가 불리함을 상징하고 있기도 했고...
 탬퍼들에게는 경고와 더불어 도움이 될만한 것을 보냈으니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주문 영창 절차에 섞어 다른 주문을 사용한 것이다. 애초에 사용하던 마법들 자체가 마법물품에 의지하고 있었던 만큼 두 개의 주문을 연이어 사용해 마치 하나의 주문인 것처럼 위장한 것이다.
 낸시는 여전히 미소지으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한 야예이에게 말했다.

 “괜찮아. 문제없어.”
****
 의자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고 있던 로딘은 눈을 떴다.
 그는 경고를 들었다. 다급한 목소리였다. 습격에 대한 경고였다. 로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방에서는 탬퍼가 의식에 힘을 기울이고 있을 것이다. 간이적인 의식이지만 전신 다고스는 그리 까다로운 신이 아니니 의식자체에는 별 문제가 없을 것이지만 방해를 받는 다면 의식이 깨어질 확률이 높았다.
 
 ‘어떻게 할까?’

 외부에서의 침입이 꼭 문으로 이루어지라는 법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며 로딘은 고민했다.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자 로딘은 일단 탁자들을 이용해 창문이나 문을 막기로 했다. 일단 책상과 의자를 옮겨 문을 막았다. 이미 방 안에 틀어박힌 다른 손님의 도움을 받아 볼까 생각했지만 곧 관뒀다. 딱히 도움이 되지도 않을뿐더러 도와달라고 설득하는 일에 시간이 더 많이 걸릴 것 같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전부 이상하게 무기력했다.
 아마도 마법적 개입이나 초자연적인 힘의 결과가 아닐까 하고 로딘은 예측하고 있었다. 그가 아는 한 아무리 초월적인 공포 앞에서도 살아가는 이들이란 그렇게 쉽게 꺾여나가지 않는 다는 법이었다. 쉽게 꺾이는 이가 있듯이 결코 꺾이지 않는 이가 있는 법이고 그것이 사람들이란 존재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로딘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겨우 문을 막았을 쯤에 로딘은 여관 벽을 두드리는 소란스러운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우지끈하고 나무로 만들어진 창문이 깨지며 오소리 한 마리가 여관 안으로 뛰어 들었다. 그리고 여관을 무너뜨리기라도 하려는 사방에서 묵직한 무언가가 벽에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히 울렸다.
 로딘은 양손을 놀려 두 자루의 소검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달려드는 오소리를 걷어찼다. 쇠테를 받아놓은 부츠에 맞은 오소리는 우직 하는 소리와 함께 나가 떨어졌다. 그 사이 부서진 창문을 통해 쥐떼들이 들어왔고 로딘은 일단 덤벼드는 쥐떼들에게 맞서야 했다.
 
 “제길.”

 입에서 욕설이 튀어 나왔다. 쥐 떼들은 전사들의 입장에서는 상대하기 곤란한 것들이었다. 로딘은 무기를 휘두르기 보다는 눌러 죽이겠다는 생각을 쥐떼들이 몸을 타오르자 그대로 몸을 던졌다. “찌직.”하고 짓눌린 쥐들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몇 바퀴 바닥을 구른 로딘은 회전력을 이용해서 손쉽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순간 그가 서 있던 바로 옆에 있는 벽면을 뚫고 무언가가 돌진해 들어왔다. 
로딘은 뒤로 넘어지면서 간신히 돌진해 들어온 무언가를 피할 수 있었다. 
 
 “음.”

 넘어지는 힘에 또 다시 한바퀴 구른 로딘은 일어서면서 침입해 들어온 존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회색빛 털의 거대한 곰.
 느릿하게 몸을 일으키는 곰의 모습을 본 로딘은 재빠르게 달려들어 소검으로 곰의 얼굴을 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쥐떼 들 덕에 방해를 받아 노리던 공격을 완벽하게 수행하지 못했다. 노리던 바에 비해 한참 모자란 공격을 한 로딘은 쥐들은 무시하고 왼손의 검을 역수로, 오른손의 검을 정수로 쥐 후 우수를 앞으로 내미는 자세를 취했다.
 그렇게 자세를 잡고 돌진하려는 찰나.

 “아우우우우우우우우우.”

 커다란 늑대의 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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