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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 더 월드 오버 더 월드 1장-2

azelight 2008.06.02 19:59 조회 수 : 376


 드디어 사야의 노래를 해보았습니다.
 외계인이 지각이상증상에 걸린 한 남자를 구원(반대입장에서는 최악이지만)한다는
 감동적인 스토리에 반해버렸음.
 좀 고어틱하긴 해도 한번쯤 해볼 가치가 있는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모로 니트로에 대한 호감도가 오르네요.
 가장 최근에 했던 플라네라티안도 상당히 좋았던 것을 생각하면 그전에 했던 투핫트2 같은
 게임은 이제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느낌입니다.
 이젠 더 이상 시나리오 적인 면에서도 작화적인 면에서도 니트로나 키를 따라오지 못하는 듯.
 뭐 이번 니트로의 새 작품은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지만...
 개인 적으로 미소녀 계통은 엘리스, 키, 니트로가 현 삼강인 듯한 느낌이 드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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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람이 걸은 지 얼마 안 되어 마을의 정경이 희미하게 보이지 시작했다. 상당한 거리였지만 야외에서 하는 마법의 수련은 파급효과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이 정도의 거리가 되지 않으면 상당히 위험했다. 전래로 하급 숙련자의 마력폭주가 마을 하나를 파괴해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만큼 제어되지 못한 힘은 위험한 것이다. 모든 마법사들이 한번쯤은 겪은 일로 몇 번이나 아리키도 제어에 실패할 뻔한 적이 있었으므로 그녀 역시 폭주의 감각을 알고 있었다. 끝없는 힘의 증대로 분에 넘치는 힘이 육체의 곳곳을 통과하게 되고 그로 인해 넝마가 된다. 설혹 폭주에서 살아남게 된다하더라도 그런 식으로는 폐인이 되기 마련이다. 운 좋게도 매커드와 슈가 그녀와 함께 있어주기 때문에 큰일은 당하지 않았지만 역시 결코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인데다가 너무나 위험한 일임을 몸으로 체감한 상태였다.

마을이 가까워지자 이미 추수가 끝난 밀밭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을을 둘러싼 통나무 벽과 위아래로 열고 닫을 수 있게 만들어진 문이 보였다. 문의 양 기둥에는 가죽갑옷을 입고 소검으로 무장한 두 사람이 지키고 서 있었다. 마을의 자경단이었다.

위브의 마을사람들은 모두 마을의 장경단원이었고 당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북서와 남동으로 난 두 개의 문을 지키고 주야를 가리지 않고 경비를 섰다. 다만 여성들은 대부분 야밤에 경비탑에서 감시를 하는 일을 했고 실질적인 위험한 일들은 남성들이 도맡아 처리하는 정도의 역할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물론 주간에 정문을 지키고 있는 일은 어느 정도의 위험을 동반하는 만큼 남자들의 몫이었다.

 

“슈 누나. 아리키. 연습하고 오는 거야?”

경비를 서고 있는 두 사람 중 오른쪽에 서 있던 에쿠드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아리키보다 한 살 연상인 그는 검에 상당한 재능이 있어 테드릴이 매번 칭찬했기에 슈에게는 좀 특별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었다. 물론 그것 외에도 그를 특별히 기억하게 만드는 다른 요인도 있었다.

슈는 에쿠드의 인사에 답하지 않고 아리키를 보았다. 아리키가 쭈뼛쭈뼛 슈의 옷자락을 잡았다. ‘이러니 모를 수가 있나.’ 슈는 속으로 생각한 후 늦었지만 에쿠드에게 인사를 했다.

 

“그래. 안녕. 오늘은 너희가 당번?”

 

에쿠드와 함께 그와 동갑내기인 데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모래시계를 보더니, “에... 이제 좀 있으면 끝나지만.”하고 맥 빠진 듯이 말했다. 확실히 이 한 낮에 이렇게 멍청히 서서 경계를 서게 되면 힘이 빠질 만도 하다.

 

“그래? 그럼 남은 시간도 수고해.”

 

그렇게 말하고 슈는 아리키와 함께 마을 안으로 들어간다. 아리키는 살짝 에쿠드를 훔쳐보았지만 곧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뭔가 자기비하를 하는 것 같다. 흔히 말하는 사춘기 소녀의 고민 같은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슈는 조언삼아 뭐라고 해주려다가 그만뒀다. 그것은 자신이 손댈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법적인 지식으로는 아리키보다 한참 앞서지만 청춘의 대부분을 자기완성에 받친 탓에 그녀에게 그런 지식은 아주 없다시피 했다. 게다가 자기완성이라고 해봤자 내적이라기보다는 외적인 부분들이었다. 신비를 다룬다는 마법에 종사했다지만 마법이란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망가지기 아주 좋은 일이기에 마법의 수양이 깊다는 것은 신뢰못할 어른이 된다는 말과 동의어같은 것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슈는 아리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리키의 고민에 슈는 도움을 줄 수 없는 것이다.

경계를 넘어 마을 안으로 들어서자 통나무로 만들어진 집들이 듬성듬성하게 세워져 있었다. 대부분 축사와 작은 밭을 가지고 있는데 드물게 가축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하지만 마을을 나올 때와는 달리 사람들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평소라면 한 구석에 노는 꼬맹이들이라도 보일 텐데 그렇지 않았다. 슈는 중얼거렸다.

 

“조용하네.”

 

그 말에 아리키가 반응했다. 굳이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어떻게 그런 것을 모르를 수 있냐는 표정을 지어보인 것이었다.

 

“곧 있으면 축제니까. 다들 광장에 모여서 준비하고 있어.”

 

“축제?”

 

슈는 ‘왠 축제?’라는 듯한 반응을 보이며 아리키를 보다가 곧 생각났는지 다시 정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아. 하긴 추수고 탈곡이고 끝났으니 슬슬 때군.”

 

토지신에게 다음 해의 풍작을 비는 축제가 매년 모든 수확을 하고 난 후인 겨울의 초입에 시작되었다. 축제의 내용이라면 3일 동안 놀고먹으며 풍작의 결과물을 토지신에게 받치는 행사이지만, 사실 2번째 날의 제물을 받치는 일만 제외하면 말 그대로 축제이기 때문에 마을의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이 날을 기다렸다.

 

“잊어먹고 있었구나. 하긴 언니에게 이런 건 관심 밖이지? 축제 내내 얼굴도 안 비치잖아. 심지어 테드릴 아저씨나 테레사 아줌마도 참석하는데. 축제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언니랑 스승님뿐이라고.”

 

“난 항상 바쁘고 아버님은 그런 일에 흥미 없으시니까. 굳이 이 마을에 온 것도 한적히 연구나 하고 싶어서 오신 거라서. 축제에는 관심 없으실 거야.”

 

“스승님이야 내가 봐도 그런 걸 좋아하실 분이 아니시긴 하지만 언니도 참여 안하잖아. 1년에 한 번 뿐인 건데.”

 

“뭐, 바빴으니까. 이번 년부터는 슬슬 여유가 생길 거니까 참석하도록 할까?”

 

“정말?”

아리키가 의외라는 듯 슈를 보았다. 애초에 대인관계라고는 전무하고, 제대로 사귄 사람이라곤 아리키 밖에 없는 슈인지라 이런 대외 활동 선언은 의외의 말이었다. 물론 아리키로서는 반가운 말이기도 했지만.

 

“슬슬 이번 년부터 여유가 생길 것 같아. 네 연습도 얼마든지 봐줄 수 있게 됐지.”

 

슈가 ‘탁’하고 아리키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래. 너도 이제 어엿이 마법사라고 해도 좋을 만큼의 경지에 올랐으니 그것도 축하할 겸 축제 때 멋진 걸 보여줄게.”

 

“멋진 것?”

 

“그래. 그때까지는 비밀이니까 기대해줘. 자 나는 이제 이쪽으로 가야하니까.”

 

슈가 한 쪽 눈을 찡긋하며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곧장 직진해서 마을 중앙의 광장을 넘어야 하는 아리키와는 달리 슈는 이 갈림길에서 남쪽으로 내려가야 했다.

 

“응. 기대할게.”

 

“좋아. 나도 좀 준비해야하니까. 그럼, 내일 보자.”

 

슈는 잠시 아리키에게 손을 흔들고는 자신의 집을 향했다. 마을의 외곽을 빙둘러가기 때문인지 그녀가 걷는 길에는 한명의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귀를 기울이면 마을의 중심으로부터 여러 사람의 말소리와 망치질 소리, 톱질하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조금 더 집중하면 그들이 하는 말을 모두 분류해서 알아들을 수도 있지만 그들의 대화 따위에는 흥미가 없기에 청각을 조절했다.

그러곤 그녀가 양부인 매커드와 함께 살고 있는 집은 마을의 남쪽 최외각에 있는 작은 집으로 서둘러 걸어갔다. 마을의 총 인구에 비하면 비교적 커다란 마을의 길목을 잠시 걷자 곧 다른 집들과는 달리 축사도 밭도 없는데다가 훨씬 자그마한 집 한 채의 모습이 보였다. 이 작은 집이 슈와 매커드가 사는 집이자 동시에 공방이며 수련실인 장소였다. 상아탑의 조합원임을 상징하는 세 개의 산 위에 둥근 달인 루시엘라가 그려진 오각형이 붙어있는 문 앞에 슈는 멈춰 섰다. 그리고 뒤돌아서서 누군가에게 경고하듯 말했다.

 

“슬슬 나오시지 그래. 크라드.”

 

슈의 말에 누구도 답하지 않는다. 하지만 슈는 *알고* 있었다. 아까부터 느껴지던 거슬리는 감각이 이곳까지 쭈욱 따라왔다. 그녀에게 이 감각은 친숙하다곤 못하지만 잘 아는 것이었다.

크라드.

8년 전 ‘밤의 군주’와의 결전에서 앞장섰던 모험가들 중 한명이면서 지금은 신성왕국의 천양철퇴기사단의 단장인 남자. 검으로는 용사라 일컬어지는 안델 이상이라 일컬어지는 자였다.

 

“마지막이야. 이 이상 날 거슬리게 한다면 용서치 않아.”

 

최후 권고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슈는 즉각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발끝에서 한기가 일어 온몸을 뒤엎고 양 손에 맺혔다. 슈의 전투태세. 힘의 일부를 끌어낸 것이고 전의조차 보이지 않았지만 보는 자를 한없이 불안하게 만드는 불길한 한기를 그녀는 뿜어냈다. 온기의 겨울을 보내는 이 마을에 진정한 겨울이 온 듯이 보일 정도로 차갑고 매서우며 불길한 한기였다.

결국 슈가 공격의 선언으로 한 발을 앞으로 내딛었을 때 공간이 일그러지며 준수한 얼굴을 가진 남자가 나타났다. 등에는 기형적일 만큼 넓고 복잡한 장식을 가진 검집에 든 대검을 메고 있는 남자는 슈를 향해 씨익 웃어 보이며 인사했다.

 

“여. 슈. 오랜만이군. 그보다 여전한 걸. 이 정도의 마법인데도 간파할 줄이야. 꽤 비싼 거였는데 말이야.”

 

“오랜만은 무슨! 내가 이런 짓 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불쾌한 듯 슈는 말했다. 크라드가 사용한 마법은 영소계의 경계에 걸쳐 자신을 숨기는 마법이었다. 상당한 고등 마법으로 기척도 모습도 감추어주어 환상을 꿰뚫고 영역내의 존재를 감지하는 악마들에게서 조차도 자취를 감출 수 있게 해주는 주문이었다. 하지만 슈는 그 조차도 간파해내는 것이다. 애초에 그것은 그녀에게 부여된 재능과도 같은 것이었고 그것이 마법사 매커드의 양자가 되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크라드도 매커드 못지않게 그녀의 그런 능력에 매우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궁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할까. 네가 간파 가능한 한계 말이야. 아무리 숨어 있어도 다 들키니까 내가 이렇게 돈을 부어서라도 확인하려고 하는 거라구.”

능처스레 웃으며 크라드는 말했다. 당당하게 웃는 크라드에 비해 슈는 불쾌하다는 표정만을 지을 뿐 그에게 어떤 답변도 하지 않았다. 크라드는 상대하기 귀찮다는 듯 입을 다물어버린 슈를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너도 네 능력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알 수 있으면 좋잖아.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고. 뭐 이제는 시도하려고 해도 시도할 수가 없게 되어 버렸지만.”

 

크라드는 아쉽다는 듯 말했다. 크라드가 마법사였다면 보다 뛰어난 기술로 슈를 시험할 수 있었겠지만 그는 전사다. 마법도구를 통해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은 이정도가 한계였기에 크라드는 더 이상 그녀를 시험하기 위해서는 마법사의 조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아무리 크라드라고 하더라도 이런 장난질에 그 정도의 상위급 마법사를 동원할 수는 없으니 그의 호기심을 풀 기회는 끝장나버린 거나 마찬가지였다. 아니. 애초부터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시도조차 할 수 없게 된 것은 확실히 슈에게는 안심이 되는 이야기였다.

 

“그거 참 다행이군. 그보다 무슨 일이야?”

 

“나도 몰라.”

 

크라드의 말에 슈의 왼 눈썹이 꿈틀거리며 떨렸다. 안 그래도 아리키 앞이라서 꾹 참아 눌렀던 짜증이 확 폭발하려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상대의 그 짜증을 일으키게 만든 장본인, 거리낄 것 없었다. 반동이 있을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슈는 주저없이 손을 쓰려 들었다. 그걸 눈치 챈 크라드가 황급히 양손을 저으며 말했다.

 

“진짜야. 나도 네 아버지가 불러서 온 것일 뿐이라고. 이유는 나도 몰라.”

 

“흠.”

 

슈는 공격하려 들었던 손을 내렸다. 동시에 양 손에 맺혀 있던 한기가 차분히 가라앉더니 사라졌다. 슈는 미심쩍은 눈치였는지 붉게 충혈되기 시작한 눈으로 크라드를 아래위로 살폈지만, 일단은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기에 믿기로 했다.

 

“아버님께서 불렀다고? 이유도 설명 안하고?”

 

“그래. 나도 무슨 일인지 궁금하다. 갑자기 상아탑을 통해서 연락이 와서 나도 놀랬다고.”

 

“상아탑에서?”

 

“그렇다니까. 너야말로 짚이는 게 없는지 묻고 싶을 정도다. 이유도 말하지 않고 불러서 말이야. 알잖아 너도. 신성왕국 기사총회인 원탁회는 상아탑과 사이가 안 좋다는 거. 곤란했다고”

 

슈는 조금 생각에 잠겼다. 걸리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딱히 구체적인 뭔가가 떠오르진 않았다. 매커드의 공방은 그의 수양딸인 슈 조차도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오로지 출입 가능한 사람이 한 명이 있다면 제자인 아리키 뿐이다. 그렇기에 슈라도 매커드가 공방에 있을 때의 일까지는 알 수 없었다.

 

“나도 딱히 떠오르는 일은 없어. 좋아. 일단 들어오도록 해. 먼 길을 오느라 지쳤을 테니까.”

 

둘 다 딱히 결론이 나지 않자 드물게 크라드를 배려한 슈는 뒤로 돌아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따듯한 공기가 흘러나왔고 동시에 마법적인 위화감역시 흘러나왔다. 익숙한 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했지만 이런 마법적인 환경에 익숙지 못한 크라드는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크라드 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마법사가 아닌 자라면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곳이 바로 이 곳이었다.

실내는 본래의 집 형태로는 존재할 수 없을 만큼 넓고 고급스러운 실내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내에 들어선 순간부터 이미 본래 집의 크기 이상의 복도 끝에 만들어진 루라탄 가의 문장이 붙은 문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복도는 아름다운 장식장과 역대 루라탄가의 가주들의 초상화들로 꾸며져 있었다. 그러나 그중에 매커드의 초상화는 놓여있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루라탄 가의 가주를 포기하고 위브로 왔기 때문이었다. 현 루라탄가의 가주는 매커드의 조카가 맞고 있었다.

슈가 역대 가주들의 초상화들이 걸린 복도로 걸어 들어가자 희미한 푸른빛을 띤 사람의 형체를 가진 무언가가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그것은 공손히 슈와 크라드에게 인사했다.

 

“잘 다녀오셨습니까. 아가씨. 그리고 크라드 님 환영합니다. 들어오시죠.”

 

“그래. 샤드. 아버님은?”

 

“아직 공방에 계십니다.”

 

“그렇다면 아버님께 크라드가 왔다고 전해 줘. 안 그러면 또 하루 종일 그곳에 계실 테니까.”

 

“알겠습니다.”

 

슈의 명령에 이 저택의 관리자인 샤드는 대답하고는 벽속으로 사라졌다. 이 집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는 샤드는 이 집의 존재와 함께하는 마법적 의지체였다. 말하자면 인공적인 집사로 그는 이 집의 어디라도 돌아다닐 수 있기 때문에 매커드와 슈 사이의 전령으로도 자주 사용되었다.

 

“저건 언제 봐도 영 적응이 안 되는군. 마치 유령 같아서 말이야.”

 

크라드가 벽속으로 사라지는 샤드를 보며 말했다. 확실히 하는 행동이나 생김새를 봐서는 유령이나 마찬가지 일지도 모른다. 다만 유령하고 다른 것은 하위차원이 아닌 물질계와 영소계의 원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마법적인 존재라는 점이다. 또한 주인에게 절대 복종하고 술자의 역량에 따라 다양한 일을 수행한다. 단점이라면 자신의 근원이 되는 곳에서 외부로 나갈 수 없다는 점일 것이다.

 

“의외네. 유령 무서워해?”

 

“적합한 무기가 없다면 최악이지. 거기다가 안 좋은 일이 많았으니까.”

 

아마도 옛적 ‘밤의 군주’가 도래했을 시 ‘밤의 군주’는 그의 하인들인 그림자 괴물들뿐만 아니라 하위차원의 원기에 기원하는 ‘불사자’들을 역시 사역하였었다. 크라드는 그런 존재들과 싸워야 했을 거고, 언제나 그렇듯이 ‘불사자’들에게서 느끼는 공포란 섭리의 어긋남에서 오는 본능적인 것이기 마련이다. 물론 성스러운 신의 기사인 그가 불사자들의 공포에 굴하지 않을테니 다른 사연이 있을 것은 분명했으나 슈는 묻지 않았다. 단지 대화를 하다보니 나온 이야기일 뿐 애초에 흥미조차 없었다.

 

“꽤나 호되게 당했나 보네?”

 

“뭐, 그랬지.”

 

크라드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꽤나 드물었지만 슈에게는 그뿐이었다. 그보다 지금은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슈는 크라드를 입구에 세워놓고 오른 손 검지에 낀 반지를 루라탄가의 인장에 가져다 댄 후 마력의 막이 제거되자 문을 열었다. 이문은 오로지 루라탄가의 인장을 통해서만 열 수 있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이 절차 없이 문을 열려고 한다면 설령 매커드 본인이라고 할지라도 문에 공격당하도록 되어 있었다.

“먼저 들어가.”

 

슈가 말하자 크라다는 말없이 복도를 걸어와 집안으로 들어갔다. 영구적인 마법의 빛으로 환하게 밝혀져 있는 실내는 고풍스런 목조 가구들과 미술품들이 적절히 배치되어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비록 스스로 분가했긴 하지만 상아탑에서 대대로 높은 직위를 유지해왔으며 그와 함께 귀족의 위도 함께 지녀온 루라탄가의 집다웠다. 어디까지나 매커드의 취향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새 뭔가 늘어난 것 같군.”

 

크라드가 응접실을 둘러보며 말했다. 5년 전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 집에 들렀을 때도 내부가 상당히 화려했는데 지금은 한결 더 화려해진 것 같았다. 자신의 기억력이 그리 믿을 만하다고 여기지는 않지만 이건 눈에 띄는 정도가 아니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지금은 이 화려한 장식춤들이 벽의 곳곳을 메우고 있었다.

 

“아버님의 취미시지. 크라드가 마지막으로 왔을 때보다 15점 늘었어. 한 개당 백금화 한닢정도는 하는 것들이지. 마법적인 처리를 요하는 의뢰의 대가로 현물로 받은 거라고 하더군.”

 

대마법사라고 불리우는 매커드는 루라탄가의 비전대로 생성과 변화, 조작의 대가로 전격을 다루지만, 다른 분야에서의 일도 수준급이기 때문에 상아탑을 중개로 몇 가지 어려운 의뢰들을 받곤 했다. 그 대가로 매커드는 종종 이런 현물들을 받아오는 것이었다. 마법이란 엄청나게 돈이 드는 학문으로 세상의 모든 엔트로피의 극에 서있다고 해도 좋을 만큼 소비적인 학문인데도 이런 취미를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수입의 안정성과 뛰어남을 알 수도 있었지만 슈로서는 그저 낭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취미긴 해도 그와 슈는 아리키에게 마법을 무료로 가르쳐 주는 입장이었다. 매커드와 슈 그리고 아리키. 이 세 명분의 마법재료를 지탱하는 것만으로도 매커드의 수입으로는 빠듯한 것이다.

 

“백금화 한 닢이라. 굉장하군. 그 정도면 1000수니인가? 확실히 정교하긴 한데.”

 

예술품에는 무지한 크라드가 보기에도 정교하게 잘 만든 것들이었지만, 역시 이런 장식품들이 그 정도 가격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 듯 했다. 애초에 서자라는 이유로 스스로 출가한 후 모험가로 굴러먹던 크라드는 천양철퇴기사단의 단장이라는 높은 직위에 앉기는 했지만 제법 검소하게 살고 있었고, 신성왕국의 대부분의 높은 사람들은 고위급 성직자들이었기 때문에 사치품을 사 모으는 이들도 없다 시피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 있어 이런 타국의 귀족들의 소비 심리는 이해가 안가는 부분들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런 쪽에 관한 안목도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가끔 초대받아 찾아간 다른 귀족들이 어마어마한 가격을 말할 때마다 그저 감탄만 할 뿐이다. 물론 감탄의 이유는 어이없다는 거였다.

하지만 이런 크라드의 생각에 이의를 제안하는 사람이 있었다.

 

“아쉽군. 네가 그 아름다움을 이해하지 못 하니 말일세. 크라드.”

 

어느새 나타난 장년의 남자가 크라드의 왼편에 서 있었다. 드문드문 회색의 머리칼을 어깨까지 기르고, 일렁이는 황금빛 자수가 새겨진 갈색 로브를 입은 그에게서 강함 심지와 힘이 느껴졌다. 그가 바로 ‘폭풍을 부르는 자’이자 이 마법저택의 주인인 매커드 루라탄이었다.

 

“아름다운지는 모르겠지만 악취미스럽다는 것은 알겠군.”

 

매커드가 나타나자 크라드는 장식품에서 눈을 때고 매커드를 보았다. 반쯤 농담이 깃든 조롱의 말에 매커드는 별 반응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의 용건을 위해 입을 열었다. 매커드가 반응이 없자 크라드는 역시 재미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고는 그의 말을 들었다.

 

“생각보다 하루 빨리 도착했군. 여행은 어떠했나?”

 

“그저 그랬지. 남겨두고 온 문제도 산더미 같긴 하지만.”

 

“뭐, 좋네. 지금 내게서 빨리 이유를 듣고 싶은 모양이지만 안타깝게도 아직은 때가 아니군. 상아탑에서 전했듯이 그냥 중대한 일이라고 일단은 알아두게.”

 

“여기까지 고생해서 왔는데 더 기다리라고?”

 

“그렇다네. 같은 이야기를 두 번할 필요는 없을 테니 말일세. 오늘이나 내일 중으로 안델 일행도 올거네. 그때 이야기 해주지. 샤드. 그에게 반지를 주고 손님방으로 안내하게.”

 

매커드의 부름에 샤드가 바닥에서 솟구치듯 나타났다. 화려한 등장은 아니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여러모로 인상 깊은 등장 방식일게 분명했다.

 

“지시에 따르겠다이다. 주인이시여. 그럼, 크라드님. 저를 따라와 주시겠습니까?”

 

정중히 샤드를 몸을 숙이며 크라드에게 자신을 따라오기를 권했다. 크라드는 안 내키는 듯 갈등 섞인 표정을 짓다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샤드의 안내를 받아 손님방으로 향했다. 슈는 샤드의 안내를 받아 가는 크라드의 뒷모습을 보다가 매커드를 흘겨보았다. 힐문하는 듯한 그 눈빛에 매커드는 드물게 인상을 찌푸렸다. 보는 이를 그 속에 담아버릴 것 같은 깊고 검은 눈동자는 삼킬 듯이 섬뜩하고 위압적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차피 다 알게 될 거다. 억지로 알아낼 생각은 마라.”

 

슈는 매커드의 경고에 미소지었다. 그것은 그가 알아낸 위기가 그녀가 생각한 것과 일치할 수 있다는 바를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매커드라면 비밀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이 현명한 수양딸에게 어떠한 힌트도 주지 않을 것이다. 슈는 가장 작은 힌트만으로도 일이 전모를 파악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굳이 말씀해주시지 않으실 거라면 캐낼 생각은 없어요. 아버님. 어차피 곧 알게 될 테니까요. 말씀하시길 원하지 않으셔도 말이에요.”

 

순종적인 목소리로 슈는 말했다. 매커드는 딸의 대답을 듣고는 곧바로 등을 돌려 그의 공방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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