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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

여자가 양손으로 머리를 움켜쥐며 비명을 지른다. 그와 동시에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광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으읏!"

갑자기 몰아닥친 폭풍과도 같은 엄청난 바람에 눈을 뜨는 것 조차 힘들었다. 거의 주저앉다시피 하면서 간신히 몸을 지탱한 채로 손을 들어 눈 앞을 가렸다. 숨조차 쉬기 힘든 바람에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대체... 뭐야?"

인상을 찌푸리며 손가락 사이로 여자의 모습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 뭐냐고... 이건?"

자신도 모르게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여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오직 보이는 것은..

핏빛으로 붉게 물들어버린 하늘과.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메마른 대지와.
그 안에 흩날리는 붉은 낙엽 뿐이었다.








"뭐냐고... 이건...."

달빛을 흩뿌리던 검은 하늘이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피를 한웅큼 토해 낼 것 같은 붉게 물든 하늘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어둠에 잠겨있던, 나무로 가득한 풀밭이 아니었다.
말라 비틀어져 버린 나무만이 듬성듬성 서 있을 뿐인, 메마른 대지만이 이 곳에 있었다.

남아 있는 것은 죽음 뿐.
메마른 바람에 날리는 붉은 낙엽.

조금 전까지 평범한 공원이었던 이 곳은
단지 그 것만이 전부인 말라버린 세계가 되어있었다.
그런 세계가 내 발 아래 펼쳐져 있었다.

마법이라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이 세상 자체를 바꾸어 버리는 능력.
과연 이 것 이외의 것에 마법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불어오는 바람에 낙엽이 흩날린다. 낙엽이 내 몸을 스치며 그 몸을 갉아먹는다.

"읏!"

몸에 부딪치는 순간 바스라지는 낙엽. 그와 동시에 나의 몸 역시 부서져내린다.
흔적도 없이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몸의 일부가 현실이 아닌 것 처럼 느껴졌다.

"뭐야.... 대체...."

팔에 난 상처. 그대로 살을 도려낸 것 같은 그 상처에서 쏟아지는 붉은 피가 대지를 적셔보지만 이 메마른 세계를 채우기에는 너무 적은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증은 찾아오지 않았다.

흩날리는 낙엽에 늘어가는 것은 몸의 상처가 아니었다.
마음의 상처. 낙엽 하나하나에 담겨있는 마이너스적 감정들.

슬픔이 내 목을 조이고,
외로움이 심장을 움켜쥔다.
그리움이 내 몸에 차오르면서
동시에 연민이라는 감정이 내 마음을 메워간다.


그 감정이 가슴을 조여온다. 그에 따른 아픔이 날 괴롭히고 있었다.
낙엽에 담겨있는 한 소녀의 감정.

어렴풋이 눈치 챌 수 있었다. 이 세계. 이 곳은 저 여자의 마음 속 풍경이라는 것을.
저 여자 스스로 만들어낸, 자신의 마음을 투영해 이 세계 위에 덧씌워버린 곳이라는 것을.

그래,

단지 가까이 다가서는 것 만으로도, 목소리를 듣는 것 만으로도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시엘 선배나 그보다 더 강하다는 선배의 동료도 어쩌지 못했던 힘을 지닌,
자신의 마음을 이 세계에 덧씌워버릴 정도로 엄청난 능력을 지닌 자...

그 것이 바로 내 눈 앞에 서 있는 한 흡혈귀.

"... 그런데.... 그런데 말이지...."

허탈한 웃음만이 새어나온다. 다시 한 번 세계를 둘러보지만... 역시나 변한 것은 없었다.

세계를 바꾸어버리는 강대한 힘을 지닌 흡혈귀.
하지만... 하지만....

그런 강력한, 말도 안되는 힘을 지닌 자의 마음이...



왜 이리 메마른 것이고,

왜 이리 구멍 투성이인 것인가


"... 정말... 뭐야, 저... 녀석은...."








내 눈을 통해 본 이 세상.

검디검은
만이 가득한 세상.

언제라도 부서질지 모르는 불안한 세상.

아니, 이미 망가져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그 것이 바로 저 소녀의 마음 이었다.






"뭐야... 이러면.... 싸우고 싶어도 싸울 수도 없다고..."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흐려지는 눈가를 닦아내며 나나츠요루를 들어 바로 앞의 대지를 찌른다.
아무런 저항감 없이 부서지는 세계.

유리처럼 깨져가는 세계 바깥으로 검은 밤하늘이 보인다.
어둠에 잠긴 공원 속에서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여자의 모습.

그 모습을 확인한 뒤 천천히 여자의 앞을 향해 다가갔다. 하지만 고개를 들지 않는다. 가느다랗게 떨리고 있는 어깨. 아아... 그런 건가... 울고 있는 건가...

".... 정말... 너는 대체 누구인거야..."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그저 그렇게 소리 죽여 울고 있을 뿐이었다.
자신의 앞에 있던 작은 잎사귀를 지닌 풀잎을 안고 있던 자세 그대로...
그 붉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푸른 빛을 간직하던 그 잎사귀를 안고 있던 모습 그대로...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아니... 죽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메마르고, 구멍 뚫린 상처 투성이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왔을 것으다.

살고자 하는 마음 때문에? 아니, 그럴리가 없다.
그 작은 풀 한포기 때문에 이렇게 살아왔을 것이다.

소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 아름다운 붉은 색 눈동자에 눈높이를 맞추려 무릎을 꿇는다.
그 안에서 비추어진 감정. 그 것은 오직 하나.

"도와줄께.... 힘들었었지? 외로웠던거지?"

움직이지는 않았지만 왠지 소녀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 처럼 보였다.
소녀의 몸을 조심스레 안고 천천히 가슴에 있는 점으로 칼을 밀어넣었다. 칼은 저항감 없이 가슴속으로 빨려들어갔고, 그와 함께 소녀의 몸이 무너져 내린다.








기울어지는 소녀의 몸을 안아들었다. 이미 온기라고는 남아있지 않은 차가운 몸.
그 몸은 지독하게도 말라있었고, 어느 소녀와 마찬가지로 가냘팠다.

"정말... 정말 잘도 이렇게 버티어왔구나."

가만히 그녀의 손을 움켜잡았다.

그 감촉을 느껴서일까... 소녀가 힘겹게 눈을 떴다. 힘겹게 팔을 들어올려... 내 볼을 감싼다.

"이제야... 와 주었구나... 헤헤... 나 계속 핀치였는데..."

힘 없는 목소리. 점점 잦아드는 목소리와 함께 손이 미끄러져내린다. 가만히 그 손을 잡아 내 볼에 대어다 주었다. 소녀의 얼굴에 미소가 퍼진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빨리... 왔.... 으면 했지만.... 그래도 와 줘서.... 고마... 웠..."

목소리에 점차 힘이 사라지는 것이 느껴진다.

"응... 그.... 마... 워..... 와.... 주었...."

호흡이 가늘어진다. 이제는...

"토.... 오... 노....."

더 이상...

".. 군."




그 말을 끝으로 소녀의 몸이 먼지처럼 부서져내렸다. 바람과 함께 잿빛의 가루가 허공으로 흩날린다. 손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한 소녀의 존재 자체가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그 마지막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정말... 그러니까... 그러니까 당신이 일찍 죽은거야. 응? 이 빌어먹을 아버지! 대체 몇 명의 여자를 울린거야?"

그 말에 되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가슴 속 어딘가에서 누군가 미소짓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 붉은 낙엽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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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의 날개 마지막 챕터, 붉은 낙엽도 끝났습니다.
우우... 길었군요.
나름 열심히 썼는데. 어떠셨는지요?

곧 에필로그도 업하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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