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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히 계세요."

"그래. 미츠키. 시간 나면 가끔 놀려오려무나."

"네. 그렇게 할께요."

지난 8년간 신세진 아리마가의 문을 나서면서 건넨 인사는 꽤 심플한 편이었다. 친척 이라기 보다는 어머니 같았던 분에게 인사를 건넨 뒤 몸을 돌렸다. 짐은 이미 소포로 보내버렸고 남은 것은 책가방 하나. 이제는 마지막이 될 등교길이자 더 이상 하교길이 아니게 된 거리를 걷는 느낌은 분명 섭섭한 느낌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가... 마지막인가..."

일상이었던 풍경이 이런 작은 심경의 변화 만으로 특별한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신비로운 느낌이었다. 왠지모르게 두근거리는 마음. 평소와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 일상의 새로운 면 안에서 헤엄치던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이. 미츠키. 이사간다며?"

"뭐야. 아침부터.... 무슨 문제라도 있어?"

"아니... 그게 혹시... 전학가는 것인가 하고..."

교실 안을 들어서자마자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질문이 날아든다. 조금은 상기된 듯한 얼굴. 무언가의 대답을 원하는 그 눈길을 피하며 자리에 앉은 뒤 대답해 주었다.

"아니야. 단지 이사뿐. 본가로 돌아가는 거니까 학교는 계속 다니겠지."

"그래? 다행이다."

안도하는 듯 한숨을 쉬는 녀석의 얼굴에 감출 수 없는 기쁨이라는 감정이 떠올라 있었다. 조금은 정돈되지 않은 것 처럼 보이는 머리칼. 동글동글하다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눈 외에는 특별히 눈에 띄는 모습이 아닌 반 친구의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무언가를 묻고 싶어하는 투가 역력한 표정... 아우... 뭐야 대체....

"후우... 츠바사. 묻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물어 봐. 그런 식으로 보지 말고."

살짝 핍박하는 투로 재촉했다. 녀석은 '에?' 하는 얼빠진 소리를 내며 당황하고 있었다. 하아... 대체 왜 이런 녀석을...

".... 아, 그러니까... 맞아. 그 본가라는거. 그러니까.... 토오노가? 그 언덕 위의?"

츠바사가 겨우 꺼낸 질문에 단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했다. 하지만 그 답에 츠바사는 박수까지 치며 감탄하고 있었다.

"우와. 미츠키. 알고보니 언덕 위의 성에 사는 공주님이잖아? 완전히..."

"공주는 무슨... 그런 쓸데없는 수식어 별로 안 좋아해."

투덜거리며 고개를 돌린다. 때마침 종이 울리고 츠바사는 잠시 망설이다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는다. 곁눈질로 그 모습을 보며 결국은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옆자리에 앉아있던 아야메가 그 모습을 보았는지 쿡쿡거리며 목소리를 낮추어 말한다.

"여전하네. 츠바사군은..."

"몰라. 좀 건설적인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어."

그래. 가령... 이제는 집에 가는 방향이 같아졌으니 같이 하교하면 어떻겠냐는 것 정도? 아야메는 그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소리 죽여 웃을 뿐이었다.





"하아...."

대체 오늘 몇 번이나 한숨을 쉰 것인지 모르겠다. 저 뒤에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조심스레 따라오는 사람이 누군지는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 러. 니. 까!

"츠바사. 같이 갈래?"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자 움찔하며 같이 발을 멈춘다. 이미 알고 있기는 했지만 역시 단순히 가는 방향이 같은 것은 아니구나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허리에 손을 올리고 살짝 노려보았다. 쭈뼛거리며 다가오는 그 모습은 한두번 본 것도 아니고... 이미 반쯤은 체념한 상태지만 그래도 왠지 열이 받는 것은 사실이었다.

아아... 제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네? 대답 좀 해 보세요. 진짜 이대로는 죽도 밥도 안될 것 같으니 원...

속으로 마구마구 불만을 토해준 뒤에 다시 말을 잇는다.

"같이 가자. 마침 방향도 같은 듯 하니까."

"으... 응."

고개를 끄덕이는 츠바사의 옆에 서서 걷는다. 몇 번을 보아도 화가 날 정도로 남자답지 못한 녀석이었지만 그래도 이상하게 가슴이 떨린다.

"저기... 미츠키? 얼굴이 빨간데? 몸이 안 좋은거야?"

"아... 아니야! 그냥, 그냥... 그래. 저녁 노을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거야!"

갑작스런 츠바사의 말에 황급히 대꾸하며 고개를 돌렸다.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낀다. 진짜! 눈치 없기는 세계 최고야! 이 벽창호!

"... 츠바사."

"응?"

".... 3년 전 겨울.... 기억해?"

힐끔 옆을 쳐다보니 내 말에 대해 무언가 생각하려 애쓰는 눈치다. 바보... 기억 못하는구나.

"중학교 때였지. 그 때 테니스 부원 몇 명이 체육창고에 갇혔던 적이 있잖아."

그렇게 말해주고 나서야 츠바사는 기억이 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기억나. 그 때 안에 누군가 있는 것 같아서 말을 걸었다가 큰 소리에 놀란 적이 있었어. 그런데..."

어떻게 그 것을 아느냐고 묻는 눈치다. 우와. 이 남자... 진짜 모르고 있어.

"사실... 그 때 나도 그 안에 갇힌 사람 중 하나였거든..."

그래. 체육도구를 가져다 놓으러 간 사이에 누군가 밖에서 문을 잠가버린 모양이었다.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이미 모두 하교한 것인지 그 누구도 오지 않았고 날씨는 점점 추워져 가기만 했다. 급기야 옆에 있던 부원 중 한 명은 울음을 터트렸고, 나 역시 선을 잘라버릴까 하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던 통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누구 있어요?'

정말 눈치 없기는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모양이었다. '선생님들도 다 퇴근해서 열쇠도 못 구하는데...' 따위의 말이나 지껄이고 있었으니... 그만 화가 나서 라켓을 집어던져 버렸었다. 철문에 세게 부딪치며 던진 자신도 놀랄 정도의 큰 소리에 일순 침묵이 감돌았지만 저 바보는 그 때도 화를 내거나 하기는 커녕 '잠시만요' 라고 소리치고는 어디론가 가버리는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들리기 시작한 소리. 무언가를 두드리는 소리부터 쇠를 긁는 듯한 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졌고, 한 30분쯤 지났을까? 절대 열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철문 틈 사이로 붉은 저녁 노을이 새어들어왔다. 그 때 체육창고 문틈으로 이쪽을 바라보면서 '괜찮아요?' 라고 묻던 사람의 얼굴을 난 아직도 잊지 못한다.

거친 호흡에 하얀 입김을 내뱉으며, 새빨갛게 변해버린 - 추운 날씨 때문이었던 것인지, 살이 까졌던 것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둘 다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손을 문지르면서도 이쪽을 걱정해주던 그 눈빛을... 한 겨울에 작은 철제 파이프 하나에 의지해 문고리를 힘겹게 부숴버렸던 소년의 모습을....

"그래... 그 때 부터였을거야. 내가 널 좋아했던건..."

그런데! 그런데! 이 벽창호는 남의 마음도 모르고! 그 것도 모자라 기껏 같이 하교하자는 말 한마디 조차 못하는 그런 멋대가리 없는데다가 숫기까지 없는 남자인건데!

하지만 이 얼굴 붉히게 만드는 속내는 오늘도 전해지지 않았다. 아까 철문이 열릴 즈음해서 서로 인사하고 헤어져 각자의 집을 향해 홀로 걸어오던 길이었으니까.

.... 하으.... 나도 뭐 똑같은 걸까나?





8년만에 돌아온 집은 기억에 남아있던 것 보다 훨씬 더 시대착오적인 건물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담장부터 성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크기의 저택까지.... 츠바사가 언덕 위의 공주님이라는 표현까지 쓰던 것이 이해가 간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는데 그 순간 갑자기 대문이 소리도 없이 열렸다. 그 커다란 대문 안에서 나온 사람은 분홍빛 머리칼에 시녀복이라는 시대착오적인 - 덕분에 건물과는 왠지 매치되는 듯한 - 옷을 입은 미인이었다.

"저기... 혹시 미츠키 님이신가요?"

님... 님.... 님.... 그 단어가 머릿속을 울린다. 뭐, 뭐라고? 님? 님이라니? 지금 어느 시대야? 익숙하지 않은 호칭에 당황하고 있는 사이 그 사람은 기운차게 웃으며 내 팔을 이끌고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자신을 코하쿠라고 소개한 여성은 드넓은 - 말 그대로 길을 잃어버릴 것 같은 - 저택 안을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면서 몇 군데 간단한 소개를 해 주더니 어느 순간 2층에 있는 방문 앞에 도달해서야 그 걸음을 멈추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여기가 어딘지 아예 감을 못 잡았다. 그냥 2층이라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었으니까... 언젠가 말 그대로 저택 탐험이라도 해 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는 내게 코하쿠씨는 빙그레 웃으며 열쇠를 건네주었다.

"자요. 여기가 미츠키님 방이에요. 이게 방문 열쇠구요. 오후 8시부터는 대문이 잠겨버리니까 그 전에 돌아와 주시구요. 10시부터는 가급적 방에서도 나오지 말아주세요. 그 때부터는 집안 경계용 기관장치들이 작동되거든요."

폭포수처럼 말을 쏟아내는 코하쿠씨의 페이스에 휘말려 질문조차 건네지 못했다. 아니... '질문 있어요? 없이요? 그럼 갈께요~ 좋은 밤 되세요~' 라면서 사라지는 모습만 해도 질문을 한다고 해서 무언가 적당한 답변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못하겠지만.... 그나저나 통금? 기관장치? 그건 대체 뭐야!

"하아.... 지쳤다."

한숨을 쉬며 방 안을 둘러보았다. 정말 이상할 정도로 정신 없는 하루였던 것 같다. 전부 다 츠바사 때문이야! 라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투덜거리며 둘러본 방은 생각 외로 아담한 크기의 방이었다.

작은 옷장 하나와 책상, 그리고 침대와 그 옆에 있는 거울 달린 선반 하나가 전부인 방. 이런 저택에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까지 들 정도였지만 아리마가를 연상시키는 모습이었기에 나도 모르게 기분이 어느정도 안정되는 느낌이었다. 그나마 이 안에서는 좀 편안하겠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열려있는 창문을 닫기 위해 창가로 다가갔다.

- ■■■ -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울음 소리가 들린다. 처음 들어본 울음 소리. 창가 바로 앞쪽에 있는 나뭇가지 위에 기분 나쁜 모습의 큰 새가 앉아있었다. 까마귀? 아니... 독수리? 도저히 그 이름을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새가 눈 앞의 나무 위에서 이 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 ■■■ -

- 두근 -

순간 구역질이 밀려올라왔다. 지독히도 기분이 나빠진다. 이미 해가 저버린 이 검은 세상 속에 오직 나와 저 커다란 검은 새만이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뭐야... 대체... 저... 저 새는....

- ■■■ -

또 한 번 울부짖는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 속에서 난 서서히 의식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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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 오류로 인한 오랜만의 업로드.
사실 이미 비축분이 6화는 된다는 안습한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뭐, 어쨌든 하고 싶은 말은 두가지

1. 루트 없이 묻힌 한 여성에 대하여 묵념
2. 저 위의 츠바사는 그 츠바사가 아닙니다 [뭐?]

.... 이상입니다. 낄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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