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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첼 리치먼드 / 세이버 - 사전준비

Rin 2018.07.17 15:12 조회 수 : 28

비가 내릴 듯 내리지 않을 듯 하늘은 시커멓게 물들어 있었고, 그 아래 회색 시멘트 바닥 위를 분주히 걸어 다니는 피에로 탈을 쓴 검은 양복의 사내들은 무언가를 분주히 나르고 있었다.

끼룩끼룩 거리는 갈매기 소리는 이곳이 해안가의 어느 곳이란 것을 알려주었고, 이곳의 물류를 총 책임지고 있는 존은 입에 담배 한 대를 물며 라이터를 찾았지만, 주머니에 라이터는 없었기에 창고 구석에서 옷 벗고 묶여 있는 남자에게 다가가 쪼그려 앉으며 중국어로 말했다.

 

불 있나?”

 

공포에 가득 질린 남자는 고개를 저었고, 존은 짜증과 함께 남자의 뺨을 때리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의 담배를 누군가가 낚아챘다.

 

담배 피지 말랬잖아.”

 

자신을 노려보는 키 작은 여성은 다름 아닌 자신의 보스이자, 이 갱단의 두목인 레이첼 리치먼드였다.

노려보는 눈빛에 압도당해 뭐라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그녀는 묶여 있던 남자의 줄을 잡아당기더니 가볍게 창고의 중앙으로 던져버렸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창고에 있던 모든 시선이 그곳으로 쏠렸다.

 

이야~, 인신매매에 장기밀매, 거기에 뭐랬냐? 그래. 고리대금. 니가 사람이냐 이 새끼야?”

 

비명을 지르던 남자는 지렁이처럼 움직일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최대한 몸을 구부려 레이첼을 향해 고개 숙여 사과하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먹고 살려고 그랬을 뿐입니다! 처자식을 먹여 살리려면……. 커헉!”

 

더 말을 잇기 전에 발로 그의 배를 걷어 차버렸고, 그가 구토하자 레이첼은 존을 향해 손가락 까닥거리며 말했다.

 

, 이 새끼 세워.”

 

존은 빠르게 달려가 숨이 막혀 켁켁 거리고 있는 그를 번쩍 들어 올렸고, 겨우 숨을 돌린 그의 눈빛은 공포로 질려 있었다.

 

왕 사장. 이럼 안 돼. 내가 당신 나쁘다고 이러는 거 아니잖아. 그렇지? 요즘 같은 세상에 깨끗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 맞잖아.”

 

그렇게 말하며 레이첼은 웃으며 남자의 머리를 치려다가 그의 땀으로 범벅이 된 머리를 보더니 인상을 쓰며 올렸던 손을 내렸다.

 

, 돈이라면 얼마든 드리겠습니다!”

그건 이미 챙겼지, 새끼야. 그런데…….”

 

그녀는 주머니에서 총을 꺼내들더니 시선도 바꾸지 않은 상태에서 방아쇠를 당겼고, 곧바로 피에로 탈을 쓴 사내 한 명이 바닥에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하지만, 그 상황에도 그 누구도 그녀를 말리지 못하고 있었다.

 

애꿎은 우리 애들이랑 짝짝꿍해서 장사하면 되나? 이야ㅡ, 이거 여기 보스가 누군지를 모르겠네? 내가 보스잖아? 그런데 보스 허락 없이 이상한 새끼랑 손잡고 장사를 하네? 웃기잖아. 안 그래?”

 

그녀가 주변을 둘러보며 외쳤지만, 그 누구도 그 말에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어라? 안 웃겨? 웃어.”

 

갑작스레 정색하는 그녀의 모습에 곧바로 웃음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존에게 권총을 던져주며 말했다.

 

우리가 절대 안 하는 거 뭐냐?”

인신매매입니다.”

 

엉거주춤 총을 받아들며 존은 대답했고, 레이첼이 걸어와 존의 등을 몇 번 툭툭 치며 고갤 끄덕이며 말한다.

 

그래. 인신매매. 우린 그런 거 안 해. 그렇다고 남이 하는 걸 뭐라 하지도 않아. 근데, 보스 명령 안 듣고 다른 놈이랑 짝짝꿍 맞아서 지랄 떨면 뭐 어떻게 해야 하지?”

총살입니다.”

 

역시나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대답.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려 존의 눈을 바라본다. 외모로는 그저 젊은 아가씨일 뿐이다. 하지만, 존 앞에 있는 것은 그런 아가씨가 아닌 마치 거대한 맹수 한 마리가 자신을 쳐다보는 기분을 들게 하였다.

 

“Do it.”

 

여태 중국어로 말하던 그녀가 영어로 정확히 존을 노려보며 말하고 있다.

떨리는 손으로 총을 서서히 들어올렸다. 이대로 그녀를 쏜다? 영국 특수 부대조차 맨몸으로 홀로 상대할 수 있는 그녀다. 그것이야말로 확실한 죽음일 것이다.

추운 날씨와 달리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다른 길 같은 건 없다. 죽거나 더 처참하게 죽거나.

그녀는 자신과 함께 일했던 다른 조직원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의 머리를 쏴버렸고, 이제 자신의 차례일 뿐이었다.

자신이 망설이자, 레이첼은 곧바로 존의 손을 잡아 총구를 레이첼 자신의 심장으로 들이밀며 속삭였다.

 

총은 네가 쥐고 있잖아. 뭘 그리 겁내?”

 

손가락이 떨린다. 상대에게 총을 겨누고 있다는 실감이 전혀 들지 않는다.

마치 작은 나무 작대기를 들고 거대한 사자 앞에 서있다는 기분만이 들 뿐이었다.

공포로 머리가 잠식되어가고 모든 것을 포기하며 자신의 머릴 향해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레이첼은 총을 빼앗았고, 존은 거친 숨을 내쉬며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정답이다. 용서는 한 번 뿐이다.”

 

그 순간 창고로 누군가가 헐레벌떡 달려오며 외쳤다.

 

보스! 브라츠바에서 물건은 언제 줄 거냐고 연락이 왔습니다!”

 

레이첼은 쓰러져 있는 시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있네. , 요즘 원 플러스 원이 유행이라니까 이것도 가져가라. 포장 잘 해둬. 내가 직접 가져다줄 거니까.”

 

그러며 왕 사장의 머리를 쏘고서 유유히 창고 바깥을 향했다.

 

 

조금을 걸어 나와 바다를 바라보며 담배를 입에 물자, 그 담배를 누군가 뺏으며 말했다.

 

피우지도 못하는 담배는 왜 물고 있나?”

이제부터 피울 거야. 그리고 세이버, 너는 내가 분명 컨테이너에서 대기하라고…….”

, 그 마치 귀족 영애의 소녀스러움이 가득한 방말인가?”

 

그의 말에 좀 전까지의 카리스마는 완전히 사라지고 얼굴을 잔뜩 붉힌 그녀가 빽 소릴 질렀다.

 

아니, 거긴 들어가지 말라고……!”

 

그리고 곧바로 주변을 살피더니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들어가지 말라고 했잖아.”

어딜 가든 내 마음이다. 배신자 하나 죽였다고 속앓이 할 정도면 내가 이끌어주마. 마음껏 기대도록.”

 

양 팔을 벌리며 웃어 보이는 세이버. 평범한 소녀라면, 이런 왕자님을 마다할 리 없지만, 이 남자가 여성에게 수작이나 걸 남자가 아니란 것 정돈 그녀도 알고 있었다.

 

됐거든?”

 

검지 하나로 그를 밀어내며 징그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돌아서서 근처에 세워져 있는 검은 승용차 쪽으로 향하자, 세이버가 그녀의 뒤를 따르며 말했다.

 

그래서 오늘 저녁은 무엇인가? 어제 저녁에 먹은 스파게티?라는 것은 꽤나 맛있더군.”

그거 그냥 적당히 마트에서 사온 소스랑 면이랑 버무린 건데?”

말하지 않았더냐? 네가 만든 요리는 극상의 보물과도 같다. 그가 만든 으깬 감자를 그대에게도 한 번 대접하고 싶구나.”

 

그의 말이 걸음을 멈춘 그녀가 돌아보며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거 결국 영국인이 만든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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