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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Craneske] SIR Fantasy . Queen / 1

2007.01.22 07:21

로스나힐 조회 수:137

1.

“아하하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

Sisfaie Ino Romenster[시스파이에 이노 로멘스테르], 통칭 SIR[시르]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갑작스럽게 양팔을 높이 들고 벌리며 웃었다. 이것은 가끔씩 일어나는 그녀만의 발작으로 옆에서 보면 정신병자로 몰아버리기에 충분한 행동이지만, 어차피 그녀 혼자인데다가 방음시설이 잘되어있는 곳이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긴 흑발이 엉덩이 부근까지 내려오는 그녀는 붕대로 꽉 조여 놓은 듯 가슴이 두드러지지 않은 호리호리한 체격에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는 애매한 얼굴이라 단숨에 성별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날카로운 눈매와 길고 가는 손가락이 날카로운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

그녀는 30cm쯤 되는 원형 단상위에 올려진 자신의 작품을 보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완성단계에 들어서진 않았지만, 그녀의 머릿속에는 이미 작품의 완성된 모습이 그려지는 듯 했다. 그녀는 작품의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기 전에 다음에 사용할 재료를 찾기 위해서 그리고 당분간 먹을 식료품을 사기 위해서 거리에 나서기로 했다. 무려 3개월만의 외출이었다. 그녀는 작업실 한쪽에 마련된 옷장으로 다가갔다. 옷장은 목재로 만들어진 진갈색이었는데 주위의 회색빛 페인트로 칠해진 벽면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주위가 전부 회색조에 아무런 장식이 없어 단조로운데 비하여 옷장에는 두개골이나 다리뼈 같은 괴상한 취미의 장식들이 덕지덕지 붙어있어 그것만이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물건처럼 조화를 부수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녀는 다른 차원에서 옷장의 문을 열었다. 옷장의 안쪽은 붉은색 페인트로 칠해져 있었다. 액션 페인팅, 마치 페인트를 마구잡이로 뿌린 것 같이 칠해놓은 내부는 안에서 누군가 피를 쏟으며 난동을 부렸다는 느낌이 들도록 만들었다. 주변의 산만함에 휘말리지 않은 깨끗한 검은색의 옷들은 적당하게 간격이 벌어진 채로 봉에 걸려있었다. SIR는 그중 가죽 자켓과 긴 가죽 바지를 골라 자신이 입고 있던 허름한 회색 작업복과 교체했다. 그녀는 바지 벨트 부분에 항상 가지고 다니는 메스 열 개를 꽂아 넣었다. 메스라고는 해도 전체적인 실루엣만이 메스와 닮았을 뿐, 손잡이가 긴 것이나 짧은 것도 있었고, 날이 톱날로 된 것이나 끝부분이 바늘처럼 세공된 것도 있었다. 이 열 가지의 메스는 시르의 작업용과 재료 사냥용으로 구분되었다. 항상 소지하고 다니는 것이 사냥용으로 전체적으로 작은, 실제 병원에서 사용하는 메스와 비슷한 크기로 비교적 가지런했고, 작업실에 두는 것이 작업용으로, 그녀의 키보다 큰 녀석도 있고, 작업용보다 더 작은 것도 있어 다소 두서없는 느낌이었다.

“자, 그럼 이제 가볼까.”

그녀는 크게 기지개를 켠 뒤에 옷장의 바로 맞은편 벽에 있는 철문으로 다가가 그것을 밀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성문과도 같아 거대하고 육중해서 그녀의 신체로는 절대 열지 못할 것처럼 보였지만, 그녀는 별로 힘들이는 기색도 없이 그 철문을 열고 있었다. 관리를 한번도 한 적이 없는지 더덕더덕 붙어있는 녹이 바스라지며 추락했다. 끼기기기― 하는 괴상한 소리를 내며 벌어지는 문이 멈추고 벌어진 그곳에서 보이는 풍경은 하수도였다. 오물이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구멍이 수십. 이리저리 배회하는 쥐 떼들이 수백. 코를 찌르는 역한 내음이 수천. SIR의 작업실은 하수도를 흐르는 오물들이 몇몇 만나는 중간 처리장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녀는 냄새에도 구역질나는 중간처리장의 모습에도 별 반응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녀는 자신이 그곳의 제왕이라도 되는 듯이 구석구석을 훑어보았다. 탐색이 끝난 군주는 밖으로 향하기 위해 한켠에 마련된 사다리에 다가갔다. 금방 부서질 것 같이 위태위태해 보이는 골조 사다리를 그녀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밟고 올라갔다. 느릿느릿하고 잔잔한 멜로디의 노래를 부르면서…….

“사람들은 알지 못하지.
자신이 어디에서 태어났는지를.
그것을 모르기에
모르기 때문에 특별해지지 못하는 거야.
나는 내가 태어난 곳을 안다네.
세상의 더러운 것이 쏟아져 내리는 곳.
모두의 추악함이 폭격하는 바닥에서
축복받은 나는 태어낫다네.
나는 나의 처음을 알기에
태어남을 알기에 특별해질 수 있는 것이지.
나는 예술가
나는 몽상가
나는 꿈꾸는 사람으로서
나는 유일의 예술가로서
나의 일생을 바쳐 만들어내야지
나만의 꿈을 나만의 재료로
사람들은 알지 못하지…….”


한낮의 거리에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흘러 다니고 있었다. 능숙하게 이리저리 흐르는 사람들을 피하며 SIR는 새로 생긴 듯 번쩍거리는 간판이 달린 마트로 들어갔다. 그곳의 풍경은 깨끗하다는 느낌이나, 설비가 잘되어 있다는 느낌보다는 아수라장이라는 생각이 들도록 만들었다. 개장은 3일 전이었던 것 같은데, 새로 생긴 곳이니 만큼 손님들을 유치하기 위해서 폭탄세일이니 가격파괴니 하는 광고문구, 이벤트 당첨품목 리스트 등이 여기저기에 붙어있었고 그 행사를 진행하는 곳은 그야말로 아비규환, 자신이 먼저 물건을 사겠다고 발버둥치는 아주머니들의 모습은 지옥도와 흡사했다. SIR는 최대한 인파를 피하며 음식 재료들을 골라 넣었는데 전부 인스턴트식품으로 전자레인지만 있으면 간편하게 조리할 수 있는 제품이었다.

“계산은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마트 계산대의 직원이 친절한 모습으로 SIR에게 물었다. SIR는 재킷 안주머니를 뒤져 오른쪽 하단에 흰색별이 찍혀있는 검은색 카드를 꺼내 내밀었다. 직원은 처음 보는 카드였는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정상적으로 결제되는 것을 확인한 후에는 다시금 웃는 얼굴로 돌아왔다.

“여기 카드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싸인 해 주세요.”

직원은 카드와 함께 영수증을 내밀었다. SIR는 단숨에 SIR이라는 글씨를 휘갈겨 썼다. 그리고는 인스턴트식품만 잔뜩 든 비닐봉지를 들고 거리로 나왔다.
거리는 사람들로 포화상태에 이르러서 나름의 흐름을 가지고 각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식료품을 구한 SIR의 다음 목적은 재료의 사냥. 그녀는 목표가 발견될 때 까지 인파에 떠밀려 다니기로 했다.


SIR는 이틀째 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밤에도 휴식을 취하지 않고, 하루 종일 걷기만 했다. 그녀의 다리는 규칙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는데 아마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효율적인 패턴일 것이다. 하지만 그 모습이 마치 기계처럼 철저한 것이라서 주변과는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주변을 망그러뜨리는 그녀의 행동은 눈에 띌만한 가능성이 충분했지만, 아무도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남의 행동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이 살아가는 데에만 급급한 종種의 행동이었다.

저녁 무렵 SIR는 인적이 드문 주거단지에 도착했다. 그녀의 주거단지의 입구 부근에 위치해 있었는데, 그곳에는 Bernando의 만물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주위에 사람이 드문 것에 비해 그곳만이 북적이고 있었는데 대부분 부모님의 손을 잡고 온 아이들 이었다. SIR는 그곳에 관심이 갔는지 잠시 동안 멀찍이 떨어져 만물상의 주변과 드나드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단발머리의 꼬마 숙녀가 곰 인형을 품에 안고 웃으며 집으로 향하고, 곱슬머리 소년이 장난감 상자를 들고 집으로 향하고, 스포츠 모자를 눌러쓴 소년이 시무룩한 얼굴로 걸어 나왔다. 왁스로 머리를 띄운 사내아이가 만물상 안으로 들어갔고, 커다란 리본을 머리에 단 여자아이가 만물상 안으로 들어가고, 머리를 양 갈래로 묶은 소녀가 만물상 안으로 들어갔다. 수많은 아이들이 들어가고 나가고를 반복하고 있었지만, SIR의 눈길을 끄는 것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만물상으로 조금 더 다가간 그녀는 가게의 안쪽을 살피기 시작했다. 복잡한 가게 안을 뛰어다니며 이것저것 들춰보는 찢어진 청바지의 꼬마, 원하는 물건이 너무 높은 곳에 있어 바라만보고 있는 연두색 원피스의 꼬마, 계산대 앞에서 주섬주섬 돈을 꺼내는 흰색 조끼의 꼬마가 있었다. 진열대 앞에서 손가락 빨며 구경만 하고 있는 꼬마, 조그만 강아지 배지를 몰래 가져가려는 꼬마, 형의 뒤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니는 꼬마가 있었다. 수많은 꼬마들이 웅성대고 있었지만, 아직도 그녀의 눈길을 끄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SIR는 만물상 안으로 들어가 아이들의 틈새에 뒤섞여 아이들을 관찰했다. 서로 자신이 사겠다고 싸우는 꼬마, 사주지 않으면 울겠다며 엄마를 붙잡고 늘어지는 아이, 다른 아이의 발에 걸려 넘어져 우는 아이가 있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슬쩍 보는 이상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아저씨―.”

SIR가 별다른 수확을 건지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할 때 적갈색의 머리를 하나로 묶은 아이가 만물상 주인을 부르며 달려 들어왔다. 곱상한 얼굴에 머리가 길어 여자아이로 착각할 수도 있었지만, SIR는 단번에 아이가 소년인 것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그녀의 관심이 소년에게로 집중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소년은 그곳에 있는 그 누구와도 달랐다. SIR의 관심은 언제나 세상의 틀에서 벗어난 것들에 있었다.

“…달라지고 싶어요…….”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던 소년의 중얼거림에서 한마디만이 또렷하게 SIR의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고, 그 순간 소년은 지하의 제왕에게 선택받았다. SIR는 흑색의 눈동자를 소년에게 고정시키고 만물상의 한쪽 구석에서 소년이 나가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소년은 가게를 벗어났다. SIR는 소년을 따라 가게에서 나와 걷기 시작했다. 그녀는 소년에게 말을 걸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주위에 사람들도 없고 어둑해진 뒤라 그다지 눈에 띌 것도 없었지만, SIR는 침착하게 소년의 뒤를 밟았다. 골목 안으로 접어들어 수십 번 갈림길을 만나고 소년과 그를 따라온 SIR가 도착한 곳은 으리으리한 저택이었다. 저택의 벽은 어둠에 침식되어 검은색에 가깝게 보이지만 모두 흰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소년의 키의 네 배는 되어 보이는 높이의 철문의 양 옆으로 뻗은 벽은 100m쯤은 충분히 넘을 정도로 뻗어있었다. 철문의 사이로 보이는 집은 3층으로 별다른 장식이 없는 깔끔한 모습이었지만, 장식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 커다란 집을 더욱 비대해 보이도록 만들었다.

“엄청나네…….”

SIR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비꼰다는 느낌이 강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물론 소년은 그녀의 말을 듣지 못했다. 소년은 철문 앞으로 다가가 초인종을 누르려 했다. 이대로 소년이 집에 들어가 버리면 SIR는 소년과 대화하지 못하게 된다. 물론, 소년의 집을 알아냈으니 원한다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었지만 그녀는 오늘 안에 소년과 대화하고자 하는 강렬한 충동에 사로잡혔다.

“꼬마야―?”

SIR는 저택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소년을 불렀다.

“에……. 누구세요?”

소년이 SIR의 실루엣을 확인하고 질문했다. 소년의 가는 목소리가 아무도 없는 골목을 기어 SIR에게 도달했다.

“이리로 잠시만 와볼래?”

SIR는 단숨에 의심받을 말을 내뱉었다. 밤에 모르는 사람이 자신을 부르는 데에 순순히 응할 아이가 몇이나 될 것인가. 하지만 소년은 순순히 SIR에게로 다가왔다.

“호오. 모르는 사람이 부르는데 그냥 다가와도 괜찮은 거야?”

SIR가 물었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부르는데 바로 다가올 아이는 없다는 것을. 게다가 요새는 유괴사건이 늘어나는 탓에 부모들의 잔소리가 한도 끝도 없이 늘어나 아이들의 경계심은 한계치까지 올라가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단번에 아이를 부른 것은 그녀에게 저 아이는 올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확신은 적중했다. 소년은 그녀의 눈앞에 와있었다.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소년이 SIR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렇구나―. 내가 너의 소망을 들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지?”

“응…….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소년의 말은 일반적인 시선으로 보기에는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그냥 느낌이 좋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에게 다가간다는 것은 어른들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지식의 양이 적기 때문에 자신의 느낌을 중시하여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무언가가 자신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깨닫는 것은 아이들에게 본능적으로 잠재되어있는 능력이다. 편견도 없고, 선입관도 없기 때문에 사물을 지식으로서 판단하지 않고 정신적으로서 판단한다. 물론, 그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우도 적지는 않다. 지금 SIR와 대화하고 있는 이 소년의 선택이야말로 그릇된 선택 그 자체였다. 소년은 SIR와의 만남이 인생을 바꿔줄 계기가 된다는 점은 정확하게 맞추었지만 그 방향에 관해서는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사람은 모두가 자신의 태어난 때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어. 그렇기에 타인과 다른 생을 살지 못하는 거야.”

칙칙한 회색의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지하의 성에서 SIR와 소년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입구의 오른편에 놓인 낡은 소파에 SIR와 함께 앉은 소년은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방의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한켠에 진갈색의 기괴한 농이 조화롭지 못하게 놓여있었고, 옷장의 맞은편에는 그들이 열고 들어온 녹이 더덕더덕 붙은 철문이 있었고, 중앙에는 붉은색 천에 덮인 거대한 물체가 놓여있었다. 소년의 시선은 그곳에 고정되었다.

“그렇다면, SIR는 SIR가 태어났을 때를 기억하고 있어?”

소년이 시선을 방의 중앙에 고정시킨 채 SIR의 이야기에 의문을 던졌다.

“나는 내가 태어났을 때를 기억하고 있기에 타인과 달리질 수 있었던 거지. 지금 나는 다른 모두와 달라. 너와도 다르고.”

“나도 달라질 수 있어?”

소년의 질문에 SIR는 잠시 침묵했다. 그녀는 소년의 시선이 닿아있는 중앙의 조형물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두 눈이 멍하게 풀어졌다. 그녀에게 있어서 작품은 일종의 마약과도 같은 것이었다. 보고 있으면 기쁨에 정신을 빼앗긴다. 그것은 쾌락이 온 몸을 덮는 것 이었다.

“나도 달라질 수 있어?”

소년이 두 번째로 물었을 때 SIR는 멍하게 풀어진 눈을 소년에게로 옮기고 멍하게 바라보았다.

“나도 달라질 수 있어?”

소년이 세 번째로 물었을 때 드디어 SIR가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

“너도 달라질 수 있어. 그건 아주 간단해. 새로 태어나면 되는 거니까. 그래……. 너는 새로 태어나는 거야. 너도 내 작품이 되는 거지.”

SIR는 소파에서 일어나 자신의 작품에 다가가 붉은 천을 벗겨냈다.

“너도 이렇게 되는 거야.”

SIR가 소년에게 보인 것은 수십의 생명이 결집되었지만 아직도 완성되지 않은 하나의 작품이었다. 30cm정도 되는 원형의 단상까지 포함한다면 방의 반 정도 되는 높이로 소년의 키의 두 배정도 되는 크기였는데, 그것의 실루엣은 마치 거대한 ‘다리(足)’, 그림에서나 보던 공룡의 다리와도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 정말로 다리라면, 사지가 찢겨진 다섯의 어린 몸뚱이들은 굵은 철사로 엮여 허벅지 부분을 이루고 있었고, 두 다리가 곧게 펴져 정강이 부분을, 나머지 다리들이 부러진 채 얽혀 종아리 부분을, 뒤틀린 팔들이 발 부분을 이루고 있었다. 중요 관절부인 무릎, 발목은 몸과 팔, 다리의 주인인 듯한 소년들의 머리로 연결되어 있었다. 안구가 사라진 구멍들은 무릎에서, 복사뼈에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들의 사이사이, 허옇거나 누렇게 변색된 표면과 표면에는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누구라도 그것을 보았으면 비명을 질러대거나 심하면 기절하거나 눈을 감아버릴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반응은 그들의 어딘가에 족쇄가 걸려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반응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잔혹성을 포함하고 있다. 그것은 식욕이나 성욕만큼 강렬한 본능이다. 인류는 오랜 세월에 걸쳐서 자신들의 잔혹성에 스스로 족쇄를 채웠다. 법과 윤리 따위가 그것이다. 기원이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모두 나면서부터 당하는 교육으로 족쇄가 채워져 있기에 자신에게 잔혹성이 없는 것으로 알고 살아간다. 자라는 곳이 다른 사람들과 같아 채워지는 그 족쇄는 자신이 받는 교육에 싫증을 내어야만 풀어헤칠 수 있다. 자신의 주변 환경에 의심을 가져야만 풀 수 있다. 타인과, 주변과 달라지기를 원해야만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아니면 나는 곳, 자라는 곳 자체가 타인과 달라 처음부터 교육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SIR는 기원이 특별했기 때문에 자신의 잔혹성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그런 성질을 식욕과도 같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아름다워.”

소년이 중얼거렸다. SIR가 기원이 다른 자라면, 소년은 달라지기를 원하는 쪽이었다. 소년은 항상 타인과 다르기를 원했고, 주변과 동화되지 않고 싶어 했다. SIR가 자신의 작품을 보여줌으로서 소년의 소망이 현실로 다가왔다. 소년은 눈앞에 있는 이 무언가가 될 수 있다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소년의 잔혹성은 자신을 향했다. 인간의 잔혹성은 타인에 대한 잔혹성과 자신에 대한 잔혹성으로 나뉘는데, 소년은 후자였다. 소년은 자신의 몸을 난도질하기를 원했다. 정확히 말하면 난도질당하고 싶었다. 소년의 눈이 SIR의 작품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소년의 족쇄가 풀린 것이다.

“저기……. 나도 이렇게 될 수 있는 거야?”

소년이 물었다. SIR는 소년에게로 다가가 허리를 숙여 얼굴을 가까이에 대고 대답했다.

“아니. 넌 이것이 될 수 없어.”

“아까는 나도 작품으로 만들어 준다고 했잖아! 그런데 왜 나는 이게 될 수 없다는 거야?”

소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소년은 자신을 바꿔줄 유일한 사람이 자신을 거부했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었다. SIR는 미소를 지으며 쪼그리고 앉아 소년의 볼에 손을 가져다대고 귓가에 속삭였다.

“넌, 여왕이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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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은 비축분을 가지고 초스피드 연재 처럼 보이는 구라연재를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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