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한 번 더?”

“원한다면.”

“....... 객기 부리기는.”

뭐. 날개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난 오기를 부리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남자의 자존심이 있지. 여기서 물러나기는 싫었다. 적어도 한 번 시작했다면 ‘졌다.’라는 말을 하게 만들고 싶어지는 것이 남자들의 당연한 심정일까?

“준비 됐어?”

“얼마든지. 먼저 갈까?”

저 자신감 넘치는 말투를 이번에야 말로 꺾어 주겠다는 생각과 함께 난 '그 것’을 잡았다. 손 안 가득히 밀려오는 충실감. 그래. 이번에야 말로!

“아?!”

날개의 표정이 바뀐다. 하지만 아직은 시작일 뿐. 저 표정이 만들어 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긴장을 풀지 않고 최대한 보통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했다.

“어때?”

“괜찮은데?”

그렇게 답해주며 날개는 가볍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자신도 지기 싫다는 듯 몸을 일으켰다. 천천히 몸을 움직이는 날개. 그녀는 붉은 색이 감도는 ‘그 것’을 양손으로 잡고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아직 남은 ‘프레임’은 넘치지?”

  만들어 진 것 맞구만. 그와 동시에 날개는 부드러운 동작으로 볼을 던졌다. 레인을 따라 굴러가는 볼은 가볍게 그 휘며 1번 핀과 2번 핀의 사이로, 다시 말해 정석 루트로 굴러가 순식간에 10개의 핀을 넘어뜨려 버렸다. 그에 나는 가볍게 휘파람을 불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양 과목으로 듣는 볼링. 오늘의 마지막 수업인 이 과목은 이미 끝난 지 오래지만 날개의 '몸 풀린 김에 조금 더 있다가 가자.’ 라는 말 아래 남아서 내기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왕창 깨지고 있지만.

대학 와서 처음 볼링을 친, 즉 오늘 처음 볼링을 쳐 본 내 점수는 대충 120점대. 잘 모르겠지만 상당히 좋은 점수대라는 말을 들었다. 보통 볼링을 취미삼아 배운 사람들의 에버리지는 약 150~180 정도라니까. 그 말에 날개의 제안을 너무나 쉽게 받아들였지만 결과는 비참했다.

‘정말로 처음 친 사람이 맞아?’

라는 말이 튀어나오는 것을 억누르고 속으로만 궁시렁 거리며 지켜 본 첫 경기에서 날개는 200점에 가까운 기록을 내며 너무나 쉽게 내일 점심을 받아내고 말았다. 우연일꺼야! 라는 마음과 함께 치룬 두 번째 결전 역시 50점 이상의 차를 내며 끝나 버렸고. 그에 이런 오기까지 부려가며 세 번째 경기를 치루고 있는 중이었다.

이거 잘못하다가는 한 달 내내 점심을 사야 할지도.

그리 마음에 드는 결과는 아니기에 다시 한 번 신중히 볼을 고쳐 잡았다.

천천히 손을 내리면서 왼발을 내 딛는다.
손을 뒤로 당기며 오른발을 딛는다.
부드럽게 손을 밀며 다시 왼발을 딛고
자연스레 볼을 놓으며 오른발을 미끄러뜨린다.

볼이 떨어진 위치는 파울 라인을 조금 지난 곳. 바닥을 울리며 핀을 향해 똑바로 굴러간 볼은 2개의 핀을 남긴 채 질주를 끝내고 말았다. 남은 핀은 6번과 10번. 충분히 스페어 처리가 가능한 상태. 아마도 이 것의 처리 여부가 날개와의 승부에 중요한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손을 충분히 풀어 놓았다. 날개의 차례에 다시 한 번 STRIKE 가 나온다면 상당히 애로사항이 꽃피겠지만.

되돌아온 볼을 집으며 다시 발을 옮긴다. 애써 날개의 모습은 보지 않았다. 그 녀석의 표정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본다면 실수를 할 것만 같아서.

좋아! 실수는 하지 않는다!

기합과 함께 들어온 힘을 빼기 위해 몇 번 심호흡을 한 뒤 발걸음을 옮겼다. 그 때!

[마스터]

“후갹!”

....... 아아. 가터로 빠지고 말았어. 이 것으로 3일째 점심마저 뜯기게 생겼구나....... 대체 어떤 녀석이야! 중요한 순간에 부르고..... 캐스터?

‘무슨 일이야?’

입으로 ‘안됐네요~’ 라고 말해주는 날개에게 차마 대꾸하지 못한 채 애꿎은 캐스터에게 조금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하지만 나의 그런 마음은 캐스터의 한 마디에 바로 바뀌어 버렸다.

[재미있어 보이는군요.]

분노, 놀라움 등등의 그 어떤 감정과도 어울리지 않는 이런 마음은 아마도

허탈감.

이라고 표현했던 것 같았다.

....... 그래. 다른 서번트 이야기 같은 것도 아니고 단순히 그런 이유로 내 점심을 날려먹은거냐? 볼링은 점수가 뒤의 것과 이어지기 때문에 스페어를 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의 차이가 크단 말이야.

난 투덜거리며 캐스터에게 답해주었다. 물론 차마 드러내지는 못하고 속으로 투덜거렸지만.

날개는 두 번째 프레임에서 가볍게 STRIKE로 처리. 이로서 일단 20:18인 상황이다. 문제는 아직 날개는 1프레임의 점수만 1회 더 더할 수 있는 것이고, 2프레임에서도 2번. 어림잡아도 2프레임까지만 20~30점 차가 날 수있는 상황. 아아. 또 밀린다.

“그러니까 안 될 것 같으면 포기해야지. 그렇게 오기를 부리는 거야?”

날개는 그렇게 말하며 내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그 날개의 손에 ‘짝!’ 소리가 나도록 손을 부딪친 뒤 (나름대로 원한을 담아서)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반 쯤 포기한 채 앞으로 나섰다. 날개가 치명적인 실수를 하지 않는 한 점수는 줄어들기 힘들다. 혹은 내가 매우 잘 하지 않는 한.

“그래도 아쉽지 않아?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포기하는 것은?”

그렇게 말하며 던진 볼은 6개의 핀을 쓰러뜨렸다. 하지만 이번에 남은 것은 4,6,7,10번. 정말 뭣 같이 남았구나. 이번 프레임. 잘 해 봐야 8개인가?

“‘분명 포기하는 순간 진 것이다.’ 라는 누군가의 말도 있었지만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하는 거야. 이런 게임에서야 단순히 손해나 조금 보는 것일지 몰라도 ‘실전’ 에서는 더 중요한 것을 잃을 수도 있거든. 기억해 두는 것이 좋아.”

볼을 들었을 때 들려 온 그녀의 마지막 말은 왠지 모르게 오랜 시간 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89 櫻道場 - 운명은 흩날리는 벚꽃처럼 - 11th Sakura [17] 카루나 2004.06.13 567
188 [Fate/Sticky night] 3 / 5 Sword & Magic - 04편 [6] 카루나 2004.06.11 402
187 櫻道場 - 운명은 흩날리는 벚꽃처럼 - 10th Sakura [7] 카루나 2004.06.11 427
186 [Fate/Sticky night] 3 / 5 Sword & Magic - 03편 [7] 카루나 2004.06.09 392
185 櫻道場 - 운명은 흩날리는 벚꽃처럼 - 9th Sakura [6] 카루나 2004.06.09 729
184 [Fate/Sticky night] 3 / 5 Sword and Magic - 02편 [4] 카루나 2004.06.04 370
» [Fate/Sticky night] 3 / 5 Sword and Magic - 01편 [7] 카루나 2004.05.30 406
182 櫻道場 - 운명은 흩날리는 벚꽃처럼 - 7th Sakura [6] 카루나 2004.05.30 504
181 [Fate/Sticky night] 3 / 4 Partner - 03편 [7] 카루나 2004.05.26 397
180 櫻道場 - 운명은 흩날리는 벚꽃처럼 - 6th Sakura (?) [6] 카루나 2004.05.26 537
179 [Fate/Sticky night] 3 / 4 Partner - 02편 [6] 카루나 2004.05.19 351
178 櫻道場 - 운명은 흩날리는 벚꽃처럼 - 5th Sakura [3] 카루나 2004.05.19 516
177 [Fate/Sticky night] 3 / 4 Partner - 01편 [7] 카루나 2004.05.05 471
176 櫻道場 - 운명은 흩날리는 벚꽃처럼 - 4th Sakura [4] 카루나 2004.05.05 484
175 [Fate/Sticky night] 3 / 3 Open the gate - 02편 [6] 카루나 2004.04.27 501
174 櫻道場 - 운명은 흩날리는 벚꽃처럼 - 3rd Sakura [5] 카루나 2004.04.27 487
173 [Fate/Sticky night] 3/3 - Open the gate 01편 [9] 카루나 2004.04.25 439
172 櫻道場 - 운명은 흩날리는 벚꽃처럼 - 2nd Sakura [6] 카루나 2004.04.25 635
171 [Fate/Sticky night] 3/2 - 프롤로그 02편 [5] 카루나 2004.04.23 402
170 櫻道場 - 운명은 흩날리는 벚꽃처럼 - 1st sakura [3] 카루나 2004.04.23 694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Sketchbook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