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시작 전] 밤나들이, 조우

로하 2019.04.07 22:44 조회 수 : 23

 

 

00.

 

 

   제나는 레베카와 웨더비가 작성한, 500 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를 눈에 쑤셔 넣고 있었다. 말 그대로, 읽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쑤셔 넣고 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제나 비토리아는 호불호라는 감각이 아주 희박한 인간이었지만, 꿈과 로망스에 가득 찬 - '남의' 꿈과 로망스에 가득 찬 글을 읽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녀에게도 고역이었다.

 

   ──성배 전쟁이란 것은 인류사에 이름을 남긴 일곱 기의 영웅과, 그 마스터가 함께하는 장절한..

   ──일찍이, 영령 소환에 관하여 런던 시계탑의 모 교수는..

 

   장절한, 은 뭐란 말인가.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이 그런 것일 뿐이겠지. 제나 비토리아는 한숨을 내쉬곤 보고서를 덮었다. '성유물'이라 불리는 물건은 대강 준비되었다. 

 

   한때 유라시아 대륙을 달려나간 옛 기마 민족의 왕이 남긴 검

   그 충절과 무예, 장렬한 최후로 전설에 이름을 새긴 기사의 망토

   믿었던 자들의 배신으로 야망의 눈 앞에서 절명한 로마의 지배자

   성지의 영화를 이룩한, 그 누구나 이름을 알고 있을 번영의 왕

 

   제나 비토리아는 부러 어새신이란 클래스로 분류될 법한 인물의 것은 준비하지 않았다. 물론, 그녀의 스타일상 은밀행동과 정보수집에 최적화된 암살자라는 클래스는 수족처럼 부리기에 가장 용이할 것이다. 하지만, 기초적인 전략 상식에 의거하여 판단해볼 때, 다른 마스터나 서번트의 입장에서 가장 경계할 것은 그 쪽이었다. 마스터가 쥐도새도 모르게 살해당한다면, 그건 마스터 본인에게도, 서번트에게도 있어서 전혀 원하지 않은 방향일 터였고, 이는 자연스레 높은 경계심을 불러일으킬 것이었다. 그리고 보통, 높은 경계심이란 곧 가장 먼저 협력에 의해 배척될 대상을 의미했다. 누구에게나 위협적인 것이라면, 리스크를 낮추기 위해 함께 먼저 처리합시다. 이것이 가능하다는 뜻이니까. 물론, 그 '함께'라는 단어 뒤에서 어떠한 공작이 펼쳐질지는 뻔한 일이지만.

 

   그런 의미에서, 차라리 자존심 드높은 인물은 대하기 편할 것이었다. 제나 비토리아는 원한다면 누구에게나 숙이고 굽힐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녀는 눈 앞의 까내림, 험담, 자존감을 짓밟는 등의 그 모든 행위에 있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굴 수 있었고, 그녀가 원한다면 발이 잘린 후 땅바닥을 기어서라도 절을 할 수 있는 부류의 인간이었다. 다만, 너무나 강대한 자아는 그녀의 의견에 대해 묵살할 여지가 있었고,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최소한 어느 정도의 승률이 보장되었다, 이리 말할 수 있는 강력한 존재를 필요로 했다.

 

   그럼, 기사는 어떨까.

 

   제나 비토리아는 눈을 찌푸렸다. 충절의 기사는 타협점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튀어나온 것이다. 제나 비토리아 스스로도 놀란 순간이었다. 그녀의 호불호가, 그 희박한 감정이 이 순간 그녀를 삼킬 줄은 본인조차 예상하지 못했다. 

 

   그 삶의 길, 곧게 빛나는 것. 제나 비토리아에게 있어선, 그녀를 벌레처럼 깔보는 왕보다, 다른 모든 자들의 적대감과 혐오보다도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그렇게 눈부신 삶의 길 따위, 나에겐 있을 수 없어. 

 

   제나 비토리아는 이를 악물었다.

 

 

01.

 

 

   제나 비토리아는 성유물에 관한 생각을 잠시 접고, 우아한 저녁 식사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러니까, 그건 정말로 변덕. 벨벳이 어떻고 실크가 저떻고 하는 그다지 생산적이지 못한 얘기들 사이에서 적당히 대꾸(라고 하기엔 남들이 보기엔 아주 세련되며 적극적으로 호응)한 제나는 드물게도 혼자 밤거리를 산책하듯 걷고 있었다.

 

   센트럴 파크의 밤 풍경은 제법 멋스러웠다. 제나 또한 서부를 간 적은 상당수 있었지만, 그녀는 서부 특유의 공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가 보기에 서부의 그저 인공적이고 문명을 과시할 뿐인 조형은 비교를 하자면, 졸부 같았다, 고 해야 할까. 자연조차 인공적인 가짜로 대체하는 서부는 그녀에게는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센트럴 파크를 따라 걸어, 어느새 할렘. 제나 비토리아는 어깨를 으쓱했다. 언제 여기까지 왔을까. 아마 둠즈데이 - 라스베가스가 소멸한, 도시 사회를 뒤바꾼 기점이 된 그 날을 사람들은 그렇게 부르곤 했다 - 전과 비교했을 때, 이전과 가장 달라지지 않은 곳은 이곳이리라. 맨해튼이라는 곳 자체가 어떤 특유의 상징성 때문인지, 여타 도시에 비교했을 때 미국 내에선 이전과 달라지지 않은 편에 속했지만.

 

   아무튼, 치안이 좋지 못한 것으로 유명한 지역이었으나 제나는 신경쓰는 일 없이 걸었다. 비렁뱅이와 갱, 마약중독자와 노숙자가 엉켜 살고 있는 지역이었으나, 그네들은 이 지역의 '외부인'을 함부로 건드리지 않았다. 그게 누구인지 알고 건드린단 말인가. 사람 잘못 건드리는 순간, 그 날이 그 치들이 저 하늘 높이 계신 주님을 만나러 가는 날이다. 아무도 모르게. 그렇기에 그들은 그 지역에 새로 전입한 어리숙한 외부인과, 그 지역 내부의 주민들끼리 싸우고 경쟁했다.

 

   문득, 제나 비토리아는 그럼에도 평소보다 이 지역이 조용한 것을 깨달았다. 기분나쁠 정도의 고요함이었다. 금요일 밤 열 한 시. 아직 사람들이 충분히 소란스러울 시간임에도 그들끼리 다투는 소리도, 술을 마시며 지껄이는 소리도, 싸구려 전자 아편의 기분 나쁜 달큰한 냄새도 나지 않았다.

 

   "──피곤하려니, 정말 별별 게 다 꼬이네."

 

   제나 비토리아는 질린다는 듯 웃었다. 그게 '과학'이 아닌 '마술'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위화감을 느낀 순간부터 불과 수 초 간의 사이였고, 제나는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복숭앗빛 오른쪽 눈이 별을 머금은 듯 형형히 빛났다.

 

 

02.

 

 

   제나는 흔적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어깨를 펴고, 곧게 한 걸음씩. 딱히 느리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고, 평소의 그녀 그대로 걸었다. 우아한 검은색 부츠의 굽이 아스팔트 바닥을 밟는 소리가 났다.

 

   "──어머나."

 

   삼십 분은 족히 걸었을까. 제나 비토리아는 실을 따라 걸어, 과자 집에 도착한 것이다. 물론, 과자의 집이라고 할 정도로 귀여운 곳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통칭, 클로이스터(Cloisters) 라고 불리는, 옛 14세기 풍으로 지어진 수도원 건물이자, 20세기 이후에 들어선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건축이었다.

 

   제나 비토리아는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우아한 아치형의 회랑을 따라 걸었다. 정말이지, 2030년대의 맨해튼에서는 있어선 안 될 정도로 아날로그 - 고풍스러웠다. 어쨌든, 고상함을 추구하는 권력자들의 의향에 따라 잘 가꾸어진 중정(中庭)과 아치형 기둥이 이어진 회랑은 낮이라면 꽤 좋은 풍경을 이루었겠지만.

 

   "쯧."

 

   제나는 살짝, 눈을 찌푸렸다. 그녀 발 밑을 끈적하게 적시는 것이 무엇인지는, 굳이 손가락으로 찍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코끝을 찌르는 비릿한 냄새도. 눈을 가늘게 뜨고, 제나는 걸었다. 끈적거리는 핏물 사이사이, 사람이었던 것들이 나뒹굴고 있었지만 쳐다보지 않았다.

 

   이 회랑의 끝은 분명, 옛 수도원의 예배당과 같은 곳이었을 터다. 아치형의 스테인드 글라스 창과,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상, 그리고 중세의 신실한 왕들과 수도자들의 태피스트리가 그 양 옆 벽을 장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무슨 짓을 하려는진 모르겠으나, 십자가상 밑을 피바다로 적신다니. 정말이지, 스스로가 더없는 악한이라고 자부하는 제나 비토리아조차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는 잔혹함과 천박함. 악취미다. 제나는 꼭 필요하다면 망설이지 않았으나, 그것이 아니라면 기본적으로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는 격언은 이런 일에도 통하며, 들키는 것보다는, 그 행위로 인해 불필요한 적을 만들 가능성이 더욱 귀찮았다. ...고, 적어도 그녀 자신은 생각했다.

 

   "어머나."

 

   피로 이어진 길을 따라 도착한 예배당. 제나 비토리아는 예상 외의 광경에 잠깐 판단을 가다듬을 수 밖에 없었다. 그녀가 예상하고 온 것은, 흑마술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변종 위치크래프트를 기반으로 한 메이거스 나부랭이. 하지만 눈 앞의 정경은 꽤 달랐다. 먼저, 그 '메이거스 나부랭이'로 보이는 남자는 죽은... 것은 아니고, 구석에 쳐박혀 꿈틀거리고 있었다. 제나는 빠르게 그의 상태를 눈으로 파악했다. 팔 한 쪽이 날아갔군. 아직 의식은 있다. 소리를 내면 귀찮을 텐데. 혀를 자를까? 아니, 일단 아직 이 주변에는 마술이 통용되는 상황이다. 이후의 처리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저 자의 단독범행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최대한 그에 맞는 상태로 만들어 두어야 한다. 그러려면 ──

 

   제나의 계산을 멈춘 것은 작은 숨소리였다. 세 살이나 되었을까. 피범벅이 되어 잘 구분할 수는 없으나, 차림새로 보아 이 근방에 살던 빈민, 아니면 비시민으로 보이는 작은 남자 아이였다. 가늘게 떨리는 숨소리. 냅두면 확실하게, 수 분 이내로 죽겠지. 그리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운이 좋다면 살아 남았을 가족이 슬퍼해 줄 것이고, 더 비참하다면 살아 남은 가족이 있더라도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보내겠지. 제나 비토리아는 아주 잠깐, 소년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이런 것 쯤. 그녀에게 있어선 딱히 낯선 광경이 아니다. 작은 아이가 숨이 끊어지는 것 따위, 고향이라고 할 정도로 익숙한 풍경. 그렇기 때문에.

 

   제나 비토리아는 돌아섰다. 아직 자신의 팔에 신경이 곤두서 이쪽을 제대로 응시할 여력도 없어 보이는 마술사 쪽으로 향했다. 한 걸음, 두 걸음. 그리고, 

 

   "젠장."

 

   제나 비토리아는 욕지기를 내뱉었다. 

 

   "Enne Fountaina."

 

   아이의 몸에 희미한 빛이 녹아내렸다. 순식간에, 끊어질 듯 약해지던 숨소리는 점차 고르게 - 잠든 아이의 그것으로 가라앉았다. 제나는 몸을 숙여, 쪼그려 앉듯이 아이의 머리칼을 한 번 쓸어주었다. 무서웠을 것이다. 눈매 끝에 맺힌 눈물이 새벽녘 이슬처럼 또르르 굴러, 똑 떨어졌다. 그리고 일어서려는 그 순간.

 

   제나 비토리아는, 움직임을 멈추었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어둠 속 형형한 금빛 눈이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저 너머 회랑의 달빛 한 줌이 검은 머리칼에 녹았고.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청년은, 스테인드 글라스 앞, 성상 아래에 걸터앉아 그녀를 마주하고 있었다.

  

   본 적 없는 존재였고, 단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직감이라고 해도 좋았다.

   

   "... ...서번트."

 

 

03.

 

 

   "── 네년은 또 뭐야!"

 

   멍하니, 남자를 쳐다보던 제나의 침묵을 깬 것은 드디어 그녀의 존재를 깨달은 마술사의 외침이었다. 발악이라도 해도 좋을 정도로, 악에 받친 목소리는 상당히 거슬리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지? 제나는 고민했다. 저 남자가, 저 마술사의 서번트라면 여기서는 굽혀야 할까? 당장, 그녀에게 있어서 목표를 이룰 때까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살아 남는 것이었다. 하지만, 약간 마음에 걸리는 것이라면──

 

   제나는 흘끗, 서번트 쪽에 시선을 던졌다. 그는 자신의 마스터.. 로 보이는 마술사가 발버둥치는 것에는 전혀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제나 비토리아는 한 가지 가능성을 눈치챘다. 저 마술사가, 저 서번트를 소환한 것은 맞다. 하지만, 어떠한 이유든 - 취향의 문제던, 아니면... 눈 앞에 펼쳐진 피바다와 뉘여진 아이의 문제던 - 저 서번트가 무언가 내키지 않아 저 마술사를 령주를 쓸 새도 없이 베어버린 것이라면. 

 

   위험한 도박이었다. 만약 잘못했다간, 제나 비토리아는 저가 베였다는 것을 인식하기도 전에 목과 몸이 떨어져 나갈 수도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에 저 서번트의 '진짜 마스터'가 숨어 있지 않는 이상, 저 마술사의 팔을 날려버린 것은 누구란 말인가. 어새신? 어새신이 기습했다면 저 서번트가 가만히 있을 리도 없겠지. 진짜 마스터는 따로 있을 가능성? 최소한 이 공간 안에서는 아니었다. 제나 비토리아는, 후천적인지 선천적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제법 뛰어난 센스의 소유자였고, 그들이 그녀에게 강제로 쑤셔박은 천 년 넘은 마술 각인은 그녀의 센스로 인해 아주 훌륭하게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있었다. 어지간한 마술사 따위, 숨어 있더라도 그녀가 눈치 채지 못할 리가 없다.

 

   하여, 제나 비토리아는 도박판에 뛰어들었다.

 

   "나는 제나. 엘데세나 비토리아."

 

   잠시 흥미를 잃었다는 듯, 다시 멍하니 밖을 바라보던 금빛 눈의 서번트가 천천히,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당신은?"

   "── 명령이다, 서번트! 당장, 저 년을 죽여! 나 말고, 저걸 죽이라고!"

 

   천천히, 청년은 몸을 일으켰다. 제나는 쿵쾅거리는 심장 고동을 애써 죽였다. 

 

   "나는,"

   "빨리, 서번트 놈, 나는 너의──!"

 

   제나는 그녀로서는 보기 드물게, '긴장'을 죽이기 위해 애썼다.

 

   "성배 전쟁을 넘어 이루고 싶은 것이 있어."

   "간드──! 윽, 쿨럭.. 쿨럭,"

 

   그는 그녀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표정이 읽히지 않았다.

 

   "기적은 믿지 않지만, 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게 필요해."

   "저딴 애새끼 때문에 마술사를 공격하다니, 지금, 빌면 용서해주마. 빨리 그 년을 베어버리고,"

 

   제나 비토리아는, 손을 내밀었다.

 

   "나에게, 당신의 힘을 빌려줘."

   "─── 세이버!!!"

 

   그리고, 청년은 검을 뽑았다. 실패인가? 제나 비토리아는 굳었다. 인형은 아직 돌리지 않았어. 아니, 그렇다고 해도, 어쩌면 좋지? 이걸로 끝인가? 안 돼, 이렇게 끝낼 수는 없어. 나는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어. 싫어. 죽고 싶지 않아. 아직은 안 돼. 지금은 아니야. 엘다, 센. 리덴, 라페. 모두, 이렇게 끝나면 나는───

 

   엘다세나 비토리아의 눈은, 보통 사람보다 훨씬 좋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눈치챌 수 없었다. 그녀가 정상적인 사고 판단을 하기도 전에, 단 한 순간. 눈을 깜빡이는 그 순간이었다. 무엇이 일어난 것인지, 엘다세나 비토리아는 천천히, 시선을 옆으로 향했다. 

 

   그녀는 한 발 맞으면 사람을 분해해버리는 테이저 건의 베타 테스트를 관람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악취미적인 상류층이 투자하여 만들어 낸 라이트 세이버를 실제로 보고 휘둘러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제나 비토리아는 그런 장검으로, 사람을 베어내는 것을 본 적은 없었다.

 

   그녀 옆에서, 시끄럽게 외치던 마술사는 마치 종이를 접어, 꾹꾹 누르고 반으로 자른 것처럼, 커터 나이프로 반으로 자른 것처럼. 종잇장처럼. 몸이 대각선으로 나뉘어져 나뒹굴고 있었다. 바닥에 피가 터져나오는 것조차, 그 몸뚱이가 바닥에 떨어진 이후의 일이었다. 제나는 움찔, 자신이 아직 대답을 듣지 못했다는 사실. 즉, 아직 안심하기엔 이르다는 사실을 깨닫곤 황급히 눈 앞의 남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마, 그녀가 보통 소녀였다면 이 순간 넋을 잃었으리라. 

 

   황금빛 눈의 청년은 천천히 한 쪽 무릎을 꿇었다. 품 안에서 단검을 꺼냈지만, 방금 전 마술사를 베어넘길 때와는 다르게 느렸고, 제법 정중한 몸짓이었다. "실례." 그는 작게 내뱉었다. 그녀의 내민 손바닥을 살짝, 긋고는 맺힌 핏방울 위에 입을 맞추었다. 

 

   빛이 일렁이며, 청년의 머리칼이 잠시 금빛으로 물들었다. 그는 여전히 눈을 내려깐 채였다. 그리고 일렁이던 빛은 천천히, 땅에 흡수되는 것처럼 사그라들었고. 그제서야 제나는 서번트와 다시 눈을 마주할 수 있었다.

 

   "서번트, 세이버."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의 요청에 의해, 지금 이 순간 당신을 나의 마스터로 선언한다."

 

   꽤, 현실감 떨어지는 순간이라고, 제나 비토리아는 생각했다.

 

   "나의 검은 당신의 소망을 위해. 나는 당신의 방패가 되고, 당신은 나의 이름이 된다."

 

   아마, 필시 자신은 지금 바보 같은 표정을 하고 있겠구나. 제나는 멍하니 생각했다. 분명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었다. 정말이지 예상 외의 상황이다. 제나가 눈알을 굴리는 소리라도 들은 것인지, 서번트는 희미하게 웃었다.

 

   "하여, 여기에 계약은 성립했다."

 

   그는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곤 그녀에게 문득, 잊고 있었다는 듯 물었다.

 

   "그러고보니 마스터, 령주는 있었던가?"

 

   꽤 짓궂다고 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꼭 필요한 것이긴 했지만, 이걸 이 순간에 묻는 건 역시 짓궂은 게 맞았다. 제나는 대답 대신, 입고 있던 드레스 셔츠의 앞춤을 끌어내렸다. 

 

 

 

 

 

 

 

제나의 령주는 쇄골 즈음에.

소환 전에 이미 령주가 깃들어버린 케이스.

 

제나의 영창은 기본 휴므노스어 베이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장면 4 : 2일차 밤 장면 행동 선언(후선언 기한 : 2일 12:00까지) [16] Sigma 2019.09.30 97
공지 운명/위대한 주문 - 장면 진행 ver.1 Sigma 2019.09.09 88
41 [둘째 날 낮] 진지 있음, 출장 가능 (RP 로그) 42 2019.04.11 21
40 [1일차 밤/전투] Starry Night ahaz 2019.04.10 20
39 [첫날 밤] 소녀는 말문이 막혔고, 이별을 고했다, 下 로하 2019.04.10 22
38 [첫날 낮] 소녀는 대답이 곤란할 때면 언제나 미소지었다, 上 로하 2019.04.09 19
37 장면 3 : 2일차 낮장면 [21] file Sigma 2019.04.09 84
36 장면 2-1 : 1일차 밤장면 전투 [6] Sigma 2019.04.09 36
35 [시작 전] 동거인, 下 로하 2019.04.09 19
34 [1일차 낮] 대립(1), 보물 탐색(1) 넥클 2019.04.08 16
33 [시작 전] 전입 엘샤드 2019.04.08 14
32 장면 2 : 1일차 밤장면 행동 선언 [31] file Sigma 2019.04.08 65
31 [시작 전] 동거인, 上 로하 2019.04.08 21
30 [시작 전] 우리들은 빛나는 유성일지어니 42 2019.04.07 20
» [시작 전] 밤나들이, 조우 로하 2019.04.07 23
28 [시작 전] 어느 날 길에서 개를 주웠다 secret 로하 2019.04.07 3
27 장면 1 : 1일차 낮장면 행동 선언 [24] file Sigma 2019.04.07 66
26 [프로필] 리나 에식스 / 라이더 file 아르니엘 2019.04.06 29
25 [시작 전] 왕좌의 게임, 上 로하 2019.04.06 23
24 [프로필] 리니아 골드 / 아처 file INSURA 2019.04.06 19
23 [시작 전] 히비키 넥클 2019.04.04 14
22 [시작 전] 제나 비토리아, 下 로하 2019.04.04 14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Sketchbook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