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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도서관입니다.

안에서 100미터 달리기 시합을 해도 넉넉하게 남을 커다란 도서관입니다.

문과 구석의 벽난로 부분만을 남긴 모든 벽을 뒤덮고있는 수많은 초대형 책장들이 이곳이 도서관임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도서관의 맨 구석 한켠에는 작은 벽난로가 활활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사방이 발화물인 이런 도서관에서 벽난로라니 미치지 않고서야 이해할수 없다는 세간의 평가를 받을만 하지만 도서관장은 그런것따위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입니다. 더구나 놀랍게도 여태껏 이 도서관이 세워진 이래로 저 벽난로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습니다. 사실, 이 도서관에 여지껏 딱 열 손가락에 꼽을 만큼의 사람이 찾아왔다는게 중요하긴 합니다만.

벽난로 앞에는 고풍스러운 느낌의 작은 티 테이블과 의자 2개가 놓여져있습니다. 벽난로의 불빛에 비춰서 매우 멋진 분위기를 자아냅니다만 이것들 역시 구성물이 모두 나무로 이루어진 구조물임을 잊어선 안됩니다. 물론 이곳의 도서관장은 언제나 잊고 삽니다만. 티 테이블 위에는 얼핏봐도 꽤 값이 나갈법한, 고풍스러운 티 테이블과 잘 어울리는 고풍스러운 찻잔이 놓여져 김을 모락모락 피워올리고 있습니다. 저렇게 고풍스러운 티 테이블과 찻잔이거늘 찻잔의 내용물이 시장통에서 파는 싸구려 보리차라는 사실은 이 부적절한 진실에서 절로 눈을 돌리게 만들죠.

그리고 그 티 테이블에서 약간 떨어진 기다란 소파에 드러누워서 책으로 얼굴을 덮고 시체마냥 조용히 자고 있는 저 청년이 이곳의 주인인 도서관장입니다. 요즘들어 도서관에 손님이 오는 일이 없기 때문에 저렇게 퍼질러 자는 모습을 자주 볼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가장 최근에 온 손님은 55년전 노란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애였지요. 그 당시 도서관장은 꼬마에게 정체불명의 동화책을 줘서 돌려보냈었지요. 그 동화책이란게 이 세상의 모든 마이너한 동화책 중에서도 특출나게 마이너한 끝내주게 재미있는 책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거창한 녀석이었습니다만, 결국은 도서관장의 자작 동화였던걸로 기억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 만년 귀차니즘 도서관장이 순진한 여자애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틀어버 쇄기를 박아넣은 것 같아 아직까지도 좀 싱숭생숭하긴 합니다. 이젠 할머니가 되었을텐데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하네요.
여하튼 저러한 이유로 현재 55년째 손님 없음의 신기록을 계속해서 갈아치워나가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또 기록 갱신이군요.

사실, 이 도서관은 어디에든 있습니다. 문을 잠그고 있는 자물쇠도, 열쇠도 존재하지 않아요. 단지 문고리를 잡고 돌리기만 하면 들어올수 있는 곳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문고리를 돌릴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단지 문이 잠겨있을 것이라 막연히 생각하는가 하면 언젠가 스스로 열릴거라고 기다리고 있달까요. 단지 문고리를 돌려서 문을 열기만 하면 갓난아이도 들어올수있는 곳이지만 앞의 열명의 손님을 빼면 모든 사람들이 열쇠를 찾으며 헛고생을 하다가 포기하곤 했지요.

뭐, 이곳에 들어온다고 한들 특별한게 있는건 아닙니다. 단지 이곳의 만년 귀차니즘 도서관장과 함께 티 테이블에서 싸구려 보리차를 마시며 읽고싶은 책을 읽거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거나 책을 받고 돌아가는게 전부입니다. 단지 이곳에는 이 세상의 모든 책이 있다는게 특별한 점일까요. 오해하진 말아주세요. 모든 책이라는게 여태껏 인류가 출판한 책들을 말하는게 아니니까요. 단지 이곳에는 손님이 바라는 책이 있을 뿐입니다. 이곳을 방문한 손님이 '바라는' 모든 책은 이곳에 존재하지요. 어떤 허무맹랑한 것을 원하던, 극히 사실적인 것을 원하던 이곳에 없는 것은 없습니다. 그 대부분이 저 귀차니즘 도서관장 청년의 자작이라는건 여담입니다만.

아 도서관장이 일어났군요. 일어났다고 해서 특별히 다른 일을 하는건 아닙니다. 그냥 말 그대로 도서관장답게 장서확인과 청소, 책의 관리를 할 뿐이지요. 아니, 그래야 합니다만 사실은 전혀 안합니다. 일어나서 책을 읽고 보리차 마시고 책을 쓰고 책을 읽고 다시 자고, 그리곤 일어나고 책을 읽고. 도서관장이 아니라 단지 도서관을 전세 낸 독서광 및 작가라는 느낌이랄까요. 여태까지 그래왔으니 언제까지고 그럴거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 청년입니다. 정말이지 구제불능이죠. 사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도서관장을 하고있는겁니다만.

도서관장 청년의 눈이 책에서 갑자기 떠나는군요. 제가 아는 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경우는 딱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손님이 왔을때, 하나는 책으로 쓸만한 감이 왔을때. 이번에는 전자군요. 드디어 55년하고도 몇일인지 모를 손님 무방문 기록 갱신이 멈췄군요. 그렇다지만 저 도서관장은 결국 아무래도 상관없을테지만요.

이번 손님은 아직 젊은 아름다운 아가씨군요. 딱 봤을때 꽃다운 나이구나 하는 느낌이 온달까요. 뭐 좋을때가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저놈의 도서관장 청년은 언제나 좋을때에 있으면서도 저러니 그렇게 단정지을수는 없겠습니다만.
도서관장이 일어납니다. 평소에는 그냥 빈둥빈둥 노는 녀석이지만 이렇게 손님이 왔을때는 확실하게 일합니다. 평소에도 저렇게 확실하게 일하면 좋겠지만 이미 포기한지 오래랄까요. 이젠 저도 아무래도 좋게되버렸습니다.
열한번째 손님에게 청년이 말합니다.

"어서오세요. 여기는 열쇠없는 대도서관."

아가씨가 주위를 둘러보며 웃습니다. 이곳이 '그것'임을 알기에 웃습니다.
도서관장도 웃으며 말합니다.

"이곳은 열쇠없는 대도서관. 관의 이름을 '꿈'이라 쓰고 '환상'이라고 읽는 것도, '환상'이라고 쓰고 '꿈'이라 읽는 것 모두 자유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꿈을 꾸다가 가십시오. 열한번째의 '꿈꾸는 사람'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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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번에도 끄적여본 붉은환상입니다.
뭐랄까...굉장히 난잡하기 짝이없는 글을 써버린 것 같습니다. 그냥 알바하면서 + 루본과의 만남을 기다리면서 있던차에 이곳 명칭인 '꿈꾸는 사람들'에 왠지 필이 박혀서 그냥 즉석으로 쭉 써버렸군요. 아무런 여과도 거치지 않은 즉석제조 작품이라 여기저기 어설픈 부분도 보이고 저도 대체 이걸 무슨 생각을 하며 썼는지 모르겠지만 모쪼록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건 그렇고 대체 전 언제쯤에 단편전문머신에서 업그레이드될지... 단편이라는 녀석의 매력에 빠진 뒤론 단편만 죽어라 쓰는군요. 아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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