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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 stupid(멍청이)!!"

상황은 이랬다.


  화창한 봄날 오후 2시40분 경,
  꽤 자유로운 회풍의 외국계열사 g사의 해외마케팅부 사무실.
  늦은 점심을 g사만의 자랑인 낮잠타임에 한가하게 담배를 피워대며 앉아있던 낙하산 f와 실력파 y. 그리고 미국본사에서 온 호주인 r은  맥주나 한잔 먹자며 의기투합해 고고히 앉아있던 t부장에게 시시한 농담과 의견을 피력하자  t부장은 뭐 오전에 4개월동안 매달려오던 큰 건수가 잘 마무리 한 김에 그러라는 말과 함께 인터엣 서핑에 빠졌다.
낙하산 f이 턱을 오만하게 치켜뜨고 실력파 y에게 사오라며 돈을 건내자 안 그래도 그가 맘에 들지 않던 y의 이마에 실핏줄이 섯고 꽤 눈치가 있는 미국본사에서 온 r이 결국 그들을 중재하며 투덜거리며 술과 안주거리를 사왔다. 서양사람이라 치즈니 햄같은 것들을 사온 그를 보며 f와 y는 짜증냈지만 결국 부어라 마셔라하며 신나게 떠들어댔다. f가 낙하산 출신답게 t부장에게 맥주를 알랑거리며 권했지만 t부장은 정중히 거절한 후에 남은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평화롭고 따스한 사무실의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그렇게 20여분이 흘렀을까. t부장은 어깨의 뻐끈함을 느끼며 기지개를 폈다. 이제는 조용조용 늘어져 수다떠는 부하직원들을 보며 그녀의 입술에 가벼운 미소가 띄워졌을때 "그것"이 그녀의 눈에 포착되었다.

  그렇다.

그것은 비엔나 소시지였다.
미국본사에서 온 r이 덥썩 덥썩 집어먹는 것을 보며  t부장은 추억에 젖어들었다.

"넌, 마치 한스 기벤라트 같구나."

더듬거리는 한국말로 그는 조금 악센트를 끄는 말투로 말했다. 빛바랜 금발과 어두운 초록색 눈으로 11살 삐적마른 꼬맹이였던 그녀에게 첫 마디를 던졌던 주한군인이 였던 그. 이름도 나이도 몰랐던 그녀의 첫사랑. 혼자 바위에 걸터앉아 낡은 가방을 뒤져 꺼낸 비엔나소시지를 그녀에게 건내곤 조심스럽고 쑥쓰러운 미소를 그녀에겐 던졌던 그가 그녀의 첫사랑이였다.
  폭포가 흐르던 그녀의 비밀장소에서의 일주일간의 조용한 침묵과 미소와 물 속의 대화들. 그의 눈동자를 닮았던 숲들과 그 냄새와 손가락 두마디의 그 고기덩어리의 추억들. 아련한 그 풋사랑.

  그 후, 그가 나타나지 않은 후, 그녀는 그를 위해 온갖 외국어를 섭렵했고 "한스 기벤라트"가 헤르만 헤서의 수레바퀴 아래서의 주인공이란 것을 알기 위해 온갖 영화와 책들 그리고 역사에 정통하게 되면서 해외를 여행하고 그 해박한 지식과 언어능력에 의해 이 회사에 헤드헌팅되어 온 것이였다.

  잠시 옛생각에 아련한 기분에 젖어있는 그녀는 무서운 기세로 먹어대는 r에 의해 속속들이 바닥이 보이는 비엔나 소시지의 봉지를 보며 t부장은 잠시 갈등에 빠졌다. 방금 내가 거절했는데 달라고 하긴 그런가라는 생각들로 망설이던 그녀를 보고 낙하산 f가 말을 걸었다. 부장님 뭐 드시겠습니까? 이때다 하고 생각한 그녀는 우아한 미소를 띄우며, 아 네 조금 출출하네요 라는 말을 하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실력파 y가 얼른 일어나 의자를 빼주었다.  하지만 아무런 행동도 없이 미국본사에서 온 r은 다가오는 그녀를 똑바로 보며 안주들을 먹어댔다. 5개. 4개, 다가가는 발걸음마다 하나씩 없어지는 비엔나 소시지들을 보며 t부장은 추억에 대한 갈증으로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가고 있지만 r은 그저 무심하게 퉁퉁한 손을 이리저리 뻗어대고 있었다. 제길, 속으로는 욕을 하면서도 상사다운 몸짓으로 앉아 그녀는 비엔나 소시지에게 손을 뻗쳤다. 아니 그의 빛바랜 금발처럼 낡은 추억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 때, 그녀의 손과 시야앞으로 r의 손이 스치더니 그녀에겐 마치 카메라의 250/1초처럼 찰칵대며 그의 입으로 들어가는 비엔나 소시지가 가득 보였다. 그녀의 어이없고 절박한 눈초리를 깨닫고 얼빠진 얼굴이 ? 낙하산 f와 실력파 y의 눈빛에 눈치빠른 미국본사에서 온 호주인 r은 먹던 비엔나 소시지를 주르륵  손에 뱉어내더니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 으깨진 고기덩어리.으깨진 추억.



"드..드실래요?"
"이...이 stupid(멍청이)!!"




그렇다.

상황은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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