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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A→B #진짜 시작

2008.06.21 01:23

빨탕 조회 수:226



  “이봐요, 어디가요!”

  미소지은채 자리를 떠나려는 김세연 경감의 어깨를 잡고서는 나는 그를 불러 세웠다. 조금은 희열에 찬 표정. 내 반응에 그는 흡족해하며 날 내려다 보고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을 깔보는듯한 태도, 눈빛. 이 남자가 살아온 방식을 조금은 알수가 있었다.

  “‘추억재생’이라 했나요? 그 상태를 보아하니 지금은 꽤 힘든 일인가 보군요.”

  난 대답하지 않고 그저 그의 눈을 똑바로 노려볼 뿐이였다. 그리고 그 역시 그런 나의 눈빛을 피하려 하지않고 똑바로 쳐다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하랑양의 그 능력의 한계가 어느정도 까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한가지 말씀을 드릴게 있습니다.
  18년전 이 성원동 주택가 놀이터에서는, 지금과는 다른 또다른 살인사건이 일어났었습니다.”

  뭐…?
  나는 다시 동그란 눈으로 그를 멍하니 쳐다볼수밖에 없었다. 그의 얼굴은 한층 진지해져 있었다. 거짓말은 아니다. 적어도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살인은 출혈로 인한 쇼크사. 배후에서 등을 찔린후 수차례 몸을 난도질당했습니다. 당시 뒤늦은 신고와 출동으로 인해 피해자는 현장에서 사망, 범인으로 예상되는 용의자는……”

  그는 입을 조금 오물거렸다.
  말하기를 꺼려하는 눈치였다.

  “9살난 피해자의 딸이였습니다.”

  알수없는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다. 전혀 모르는 내용이였다. 엄마도 가르쳐주지 않았고, 동네 아줌마도 수근거리지도 않는 이야기였다. 주민 모두가 함구하고 있었던 이야기, 그리고 놀이터의 출입금지. 그리고 또 검은 그림자와, 그네를 타고있는 또 다른 그림자.

  “어린 나이에 증거역시 불충분했기에 구속할순 없었습니다. 그렇게 그 사건은 종결짓게 되었죠. 그 누구도 진범을 찾을 생각도 하지 않았고, 경찰측에서도 찝찝하다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그것보다더…….”
  “경감님, 서에서 연락입니다!”

  끄덕.
  그는 이야기 하다말고 고개를 끄덕이고선 다시 등을 돌렸다. 그리고 경찰들이 몰려있는 인파속으로 돌아가려는 찰나… 다시 한번 더 말을 잇기 시작했다.

  “나머지 이야기는 나중에 하죠. 혹시 바쁘시면… 번거롭겠군요. 제가 먼저 연락 드리겠습니다.”
  “잠시만요, 경감양반. 우린 어쩌란 말이죠?”
  “학교에는 연락해 두었습니다. 학교로 돌아가시는것도 좋겠지만 하랑양과 혜지양이라면 이대로 집으로 돌아갈거 같군요. 성적에 대한 불이익은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럼 이만.”

  자기할말만 쏙 하고 인파속으로 사라지는 김세연 경감. 난 그런 그의 등 뒤를 어이없다는듯이 바라보고서는 다시 철창이 깔려있는 길바닥에 털썩, 하고 앉아버렸다. 힘들다, 엄청난 체력 소모다. 평소보다 더 더운거같아 온몸은 땀범벅이가 되었다. 이대로 샤워를 하고싶은데….

  “하랑아, 이대로 학교에 돌아갈거야?”
  “아니, 당연히 갈리가 없잖아.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서 샤워부터 하고 옷갈아입고 뒹굴던가 어떻게 하던가 해야되는데…….”
  “그럼 우리집에 갈래? 일단은 하랑이네 집보단 우리집이 더 가깝잖아.”

  혜지네 집?

  “나야, 상관없기야 하지만…….”

  이 성원동 주택가 놀이터에서 비교하자면 확실히 우리집보단 혜지네집이 훨씬 더 가깝고 훨씬 더 고급스럽다. 커다란 맨션에 혼자 자취하는 그녀. 고등학생이 되면서 나와 같은학교에 다니기 위해 부모님에게 조르고 졸라서 이 근처에 맨션에서 자취하게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가끔 부모님과 싸웠을 때 가출을 하거나 심심할 때 찾아가기는 했었는데…….

  “그럼 결정, 가자 하랑아.”

  혜지는 웃으면서 일어나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나는 그 손을 아무렇지도 않게 잡았다. 같은 여자아이의 손이지만 내 손과는 다른 느낌, 마치 털실처럼 부드러운 그녀의 손은 몇번이고 붙잡고있어도 절대 놓고싶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게 나는 혜지의 뒤를 따라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렇다.
  그의 목적은 무엇일까? 무슨 생각으로 나와 혜지를 그곳으로 데리고 가 그런 시체를 보여주게 한것일까? 그 남자의 속내를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겠다. 말하자면 이거다, 바닥이 드러나는 바디워시 같은것이다. 들어보면 분명 내용물이 있을거 같은데 막상 짜보면 나오는건 거품뿐이다. 이런 쓸모없는 녀석!
  나는 텅 비어버린 바디워시를 집어던지고서는 다시 샤워기를 틀었다.
  화난다, 화가난다. 언제나 그남자의 언행과 행동에는 화가 치밀어 오른다. 모든것을 다 알고있다는 그 눈빛,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을 다 알아버리겠다는 그 시선. 그것만으로도 기분나쁘다. 위 아래 요목조목 따져보는 알바하던곳의 사장보다도, 지하철의 치한보다도 기분나쁜 시선.
  그리고 나와 닮았다니…….

  “말도안돼!”

  깡!
  나는 바닥에 뒹굴고 다니는 바디워시를 걷어찼다. 공중에 떠올라 벽에 부딪혀 이내 샤워실 문 근처로 굴러가는 통. 문 밖에서 ‘무슨일이야?’라고 놀라 묻는 혜지의 물음이 있었지만, 적당히 안심시키고 난 찬장 안에서 수건을 찾았다. 분명, 여기 있었지…….

  “혜지야, 입을옷 있지?”
  “응, 준비해놨어.”

  문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왠지모르게 기대감에 차 있었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좋겠지. 난 대충 몸을 닦고 샤워실문을 열어 젖혔다. 기대감에 가득찬 눈으로 쳐다보는 혜지.

  “무슨일이야?”
  “…응? 아. 아무것도 아냐.”

  그녀는 다시 고개를 훽, 하고 돌리고서는 손에 들려있는 티셔츠와 속옷, 그리고 핫팬츠를 건네주었다. 내가 혜지보다 체격이 조금 더 큰데… 맞기나 할까.
  라고 생각하며 하나 둘 입어본 결과.

  “윽… 확 조이는데.”
  “어울려, 요하랑.”

  가슴쫌이 심하게 조여 새겨져있는 케릭터가 심하게 일그러져있는게 보이지만… 뭐, 이걸입고 어딜 나가는건 아니니까. 볼사람은 혜지밖에 없고. 집에서는 크게 움직일 일도 없으니. 난 그대로 혜지뒤를 따라 그녀의 방으로 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아담한 원룸. 하지만 혼자살기에는 조금 넓지않을까하는 정도의 공간이였다. 창문을 커튼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침대는 귀엽고 푹신푹신할거 같은 시트들이, 책상 위에는 PC와 여러가지 책들이 놓여져 있었다. 혼자살기에는 부족함 없는방, 나도 막 고등학생이 되었을때는 이런 혼자만의 집을 가지고 싶었는데.

  “점심 지난지 꽤 됐는데, 뭐라도 먹을래?”
  “그것보다는…….”

  피곤하다.
  그렇게 중얼거리고서는 혜지의 침대에 온몸을 훽 던져버렸다. 그녀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조금은 기분좋은 느낌. 푹신푹신하기는 집에있는 내 침대와 비교할바가 아니다. 그냥 평생 여기서 살았으면 좋을텐데…….

  “피곤해. 우선 낮잠부터.”
  “응, 낮부터 힘쓰느라 고생했으니까.”

  혜지가 수고했다는 듯이 말했지만, 난 거기에 아무렇게나 대답하고서는 베개속에 얼굴을 파묻었다. 정말, 피곤하기는 하늘같다. 그것도 아침부터 ‘재생’같은걸 했으니 평소보다 훨씬 더 피곤하겠지. 따뜻한 이불속, 서서히 사고가 흐려지는 것을 느꼈을 때.

  “혼자서 자면 안되지!”

  깜짝 놀라 눈을 떠보자, 눈 앞에는 혜지의 얼굴이 굉장히 가까이에 있었다. 그 얼굴 역시 굉장히 기뻐보이는 얼굴이라 더욱 놀랄수 밖에 없었다.

  “너, 너… 서혜지. 얼굴이 너무 가까워.”
  “베개는 이거 하나밖에 없는데 어떻게해? 둘이서 같이 쓰는수밖에.”

  더욱 즐거운듯이 웃는 그녀.
  이 세상에서 이런상황을 즐길만한 사람은 그녀밖에 없을거라 생각한다.

  “걱정하지마 요하랑. 손만잡고 잘거야.”
  
  그 말이 묘하게 신경쓰였지만 난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녀의 손이 옆구리를 지나 허리를 감싼다. 역시, 손만잡고 잘리가 없지. 예상대로였지만 그걸 막을 이유도 없었기에 난 가만히 놔두었다. 그리고 다시 서서히 흐려지는 사고, 꿈이 하나 둘 찾아온다.
  그리고.

  “미안해, 하랑아.”

  그 목소리는 마치 꿈속에서의 속삭임처럼 들렸다.
  그걸 끝으로, 난 조용히 잠들었다.


감기걸린중에 쓴거라서 짧고 이상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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