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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저녁의 거리는 소란스러웠다. 잔뜩 지친 얼굴로 다시 야근을 위해 사무실로 돌아가기 전, 진한 카페인을 쭈욱 들이키는 사람들. 지겹고 힘든 업무에서 해방되어 행복한 얼굴로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그 틈에 앉아 두 명은 퇴근하는 직장인인 척 꾸미고 있었다.

 

   "마르게리타 한 판에, 굴을 넣은 오일 파스타 하나. 홍합찜도 한 그릇 줘. 음료는 레모네이드 하나랑,"

   "맥주 한 잔."

 

   제나는 웃었다. 하긴, 홍합찜은 모로 봐도 차나 커피보다는 맥주랑 어울리겠네. 툭 내뱉고는 '주문, 인식했습니다' 하는 안드로이드의 대답에 그래그래 대꾸했다. 이 장소를 고른 건 순전히 변덕이었다. 시내의 고급 레스토랑 - 그건 즉, 인간인 서버와 매니저가 존재하는 곳을 의미했다 - 대신, 정말 그냥 보통 사람들이 왔다갔다 저녁을 먹는 평범한 다이닝이었다. 

 

   "엘데세나."

   "음?"

   "당신은 왜 여기에 온 거지?"

 

   여기, 네오 베가스 교외의 다이닝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세이버는 너는 왜 성배 전쟁에 뛰어들었냐, 다시금 묻고 있는 것이었다. 제나는 눈을 찌푸렸다. 자수정 같은 눈이 가늘어졌다.

 

   "세이버. 나는 두 번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

   "하지만 당신은 굳이 리스크를 무릅쓸 필요가 없었어."

 

   불과 열흘 남짓의 시간이었지만, 세이버가 판단하는 엘데세나는 성배의 우승자 따위의 타이틀이 없어도 충분히 이 사회의 꼭대기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인간이었다. 대다수의 사람들, 사회적 계층의 등반자들이 산 중턱까지 갔을 때 빠져드는 방심과 자만을 엘데세나 비토리아는 전혀 가지지 않는다는 점이 먼저 달랐고, 좀 더 빠른 상승세를 포기하더라도 적을 만들지 않는다는 점을 중시한다는 게 두 번째였다. 세이버는 자신이 누군가의 머리를 정의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자가 아니라고 생각했으므로 그 쪽에 대해선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최소한 그가 보기엔 판단력도 좋았고 업무에 있어 썩 감정적이지 않았다. 젊은이에게 무엇보다 쉬운 무기가 되는 용모 또한. 세이버는 그런 금발 보석안의 미인이 마스터라면 그녀를 꽃봉오리처럼 작은 새처럼 어여삐 여기고 무엇이든 해주려 할 이들을 몇 명이고 알고 있었다.

 

   "가끔은 리스크를 지더라도 도박을 해야 할 때가 있으니까."

   "당신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무언가 이루고 싶은 게 있는 것 아닌가?"

   "그럴 리가."

 

   사람들의 소음 속, 엘데세나는 코웃음쳤다. 어떤 충동도 든 적 없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엘데세나 비토리아는 더 큰 확신이 있었다.

 

   "내가 진짜 만능기를 만들어낸 자라면, 그걸 나를 위해 썼겠지."

   "... ...."

   "신이 준 것이래도 찝찝할 판에, 사람이 만든 걸 어떻게 믿지?"

 

   기적, 그래. 그 좋은 기적. 멋진 일이지. 실행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세이버, 너도 알잖아? 대가 없는 것 따위는, 이 세상에 없어. 후폭풍 없이 불로불사를 이룩하고 만병통치약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지. 제나는 비웃었다.

 

   "당신의 말은 그럼 만약, 엘데세나. 내가 이 세상의 병이란 존재를 없애달라는 소원을 빌면,"

   "질병에 취약한 유전자를 보유한 인간과 현재 질환을 앓고 있는 자를 모조리 없애버리면 병이 없어지겠지."

 

   제나는 낄낄 웃었다. 그럴 리가. 정말 그런 되먹지 못한 게 아닌, 기적의 물건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 만들어냈다면 그 치들이 이미 진즉에 써먹고도 남았을 터였다. 사람과 동물의 몸을 이어 붙이고, 어린 아이들을 모아 서로 죽이게 시키고, 피 대신 약품을 넣고, 과학과 마술을 모조리 동원해서 ── 문명 사회의 부흥, 기술의 발전. 궁극적으로 자신의 아이들을 자신들이 꿈꾸는 완벽한 인간으로 디자인하고 싶어하는 그 치들이 진즉 달려들었을 것을! 그들이 그 짓거리를 몇십 년 전부터 했다던가? 아아, 차라리 그냥, 아예 이런 것에 달라붙어서 한번에 다 망해 버렸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그녀도 편안하게, 잠드는 것처럼 길에서 함께 죽을 수 있었을 텐데. 

 

   "엘데세나."

   "서번트."

   "... ..."

   "말했지. 나는, 같은 얘기를 두 번 하는 걸 싫어한다고."

 

   엘데세나 비토리아 오르델라피는 우는 것처럼 웃었다. 

 

 

05.

 

 

   "... 미안."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제나 비토리아였다. 홍합찜과 마르가리타 피자, 오일 파스타를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먹고 밖으로 나온 후였다. 

 

   "너에겐 물을 권리도 이유도 있었는데."

 

   그가 물었던 것은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엘데세나는 납득했다. 그에게 있어 마스터가 성배가 간절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는 것은 하나의 불안 요소일 터였다. 또한, 뭐가 어떻든간 세이버 또한 성배를 바라고 소환된 영령일 것이다. 그런 서번트 앞에서 성배에 관해 회의적인 것은 자신의 의견은 차치하고, 별로 좋은 태도가 아닌 것이다. 따라서 제나는 순순히 먼저 사과했다.

 

   "딱히. 괜찮아. 당신이 사과할 정도의 일은 아니야."

 

   세이버는 이해했다. 그 또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강 엘데세나 비토리아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무얼 바라는지도. 왜냐하면──....

 

   하여, 그렇기 때문에. 세이버는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너무, 어설픈 생각 아닌가?"

   "뭐?"

   "배경도 뭣도 없는 혈혈단신으로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건 힘든 일이지. 남보다 못 볼 꼴도 많이 보고, 못 할 짓도 많이 해야 할 거고, 그래 오지 않았나? 그래서 당신은 성배라는 걸 찾은 거잖아. 좀 더 빠르게, 효과적으로 당신을 저 성으로 데려다줄 것. 당신의 유명세를 공고하게 해줄 것. 그것 자체가 어설프다는 거야. 귀여운 금의환향이라도 생각하는 건가?"

   "멋대로 말하지 마."

   "멋대로가 아니야, 엘데세나. 부정할 수 있나? 성배의 보유자라는 타이틀이 가져다 줄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 증명할 수 있어? 네가 쌓아온 그 모든 것들을, 그 모든 시간을 한순간에 날려 버릴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그 타이틀 한 줄이 그렇게 값어치가 있는 건가?"

   "너는──"

   "잘난 척 하지 마, 엘데세나. 혼자서 바꾸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당신 혼자 열심히 발버둥쳐도, 대다수의 배부른 돼지새끼들은 자신이 돼지라는 인식도 없어. 저 위의 성벽은 저들끼리 너무 단단하겠지. 당신이 아무리 잘났대도, 몇백년에 한 번 나올 천재라도 사람 하나의 발버둥으론 저걸 무너뜨릴 수 없다고. 당신이 '외부'라는 것을 깨닫자마자 저 따로 놀면서 탐욕이나 채우고 앉아 있는 자들은 함께 손을 잡는다. 아아, 물론 당신 주변에도 사람은 모이겠지. 하지만 그 치들 중 당신을 진심으로 따르고, 당신의 이상을 목표를 함께 하는 인간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지? 물론 그들 중 극히 일부는 진심으로 너를 생각할 거야. 하지만 그런 사람일수록, 마음이 있는 사람일수록.. 빨리 곁을 떠나버린다는 것, 너도 알고 있잖아? 엘데세나 비토리아, 부정하지 마. 대부분의 사람은 네 생각보다도 어리석고 탐욕스럽고, 성배의 힘조차 없이 저 단단한 벽을 뚫기에는,"

 

   세이버는 한 번 숨을 들이쉬었다. 

 

   "──너는 너무 약하단 말야."

 

   세이버는 단 한 마디도,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당연했다. 저러한 길의 말로가 어떤 것인지, 다른 누구도 아닌 세이버라면 알고 있다. 매도당하고, 버림받고, 모든 것의 끝에 악역이 되어 끝나는 것이다.

   아니, 그라면 상관 없다. 그는 실제로 스스로가 악이라 생각했고, 그에 부합하게 행동했다. 하지만 제나 비토리아는 달랐다. 그녀는 악인 따위 될 수 없는 인간이었으며, 다른 인생을 걸을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 있었다. 현실에 적당히 순응하고 그 안에서, 저 가엾은 빈민들에게 빵과 서커스를 베풀며 동정적이고 상냥한, 사랑받는 아가씨로 살 수 있었다. 그런 선택지가 있다면, 차라리 그렇게 살기를. 기억은 잊고, 아픔은 묻고. 껍데기일지언정 행복하고 사랑받는 삶을 살기를. 험로를 떠나는 작은 아이를 말리는 마음으로, 세이버는 말에 칼을 세웠다. 제나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흘러내린 머리칼이 드리워져, 눈이 보이지 않았다.

 

   "꺼져,"

 

   제나 비토리아는 내뱉었다.

 

   "내 눈 앞에서, 당장 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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