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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전] 왕좌의 게임, 上

로하 2019.04.06 00:41 조회 수 : 23

 

01.

 

 

   부통령이 주최한 만찬은 호화로웠다. 시민증을 '보이며' 속속들이 들어와 연회장을 채운 실크 드레스의 여자들, 벨벳 턱시도의 남자들. 그 사이를 금발의 여성은 미끄러지듯 걸었다. 갓 소녀를 벗어난 것일까, 앳된 티가 남아 있는 용모였으나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흘끔흘끔 시선을 던지고, 개중 몇은 이때다 싶었던 것인지 '오랜만입니다' 하며 말을 걸기 바빴다. 

 

   적당히 그런 말들에 대응하며, 제나는 벽에 달라붙을 듯 걸었다. 세 번째 액자를 지나, 화장실 쪽으로 꺾어서, 첫 번째 조각상을 지나고 다섯 걸음. 익숙한 것처럼, 제나 비토리아는 액자 속으로 들어가듯 벽 속으로 들어갔다.

 

   벽 뒤의 공간은 숨기는 것이 없는 곳이었다. 짐승과도 같이 욕구만을 앞세워,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탐하는 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웠고, 코를 찌르는 듯 달큰한 - 술처럼 쓰지만 술보다 더 사람을 녹여내리는 것들의 냄새가 났다. 제나 비토리아는 살짝 눈썹을 꿈틀, 움직였을 뿐 여전히 주변에 시선을 던지는 일 없이 똑바로 앞으로 나아갔다.

 

 

   "이런 곳에서만 있으면 뼈가 녹아버릴 거야, 게이머."

   "오, 나는 이런 공기에서만 숨을 쉴 수 있는 신인류라서 말이지."

 

   녹색과 금색으로 머리를 물들인 남자가, 이젠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유물인 '시가'를 피우며 대꾸했다. 전자 아편과 브라우니보다 백 배는 비싸고, 오백 배는 구하기 힘든 물건이었다. 

 

   "부통령 각하의 연찬이 맘에 들지 않으셨나, 도나 비토리아?"

   "도미가 너무 설익어서 물에 넣으면 다시 움직일 것 같더라. 아, 그래도 그 형편 없는 조명 장식보다는 차라리 나았어."

   "프라이빗 파티에 도미란 말이지! 차라리 세고비아풍 코치니요 아사도(*새끼돼지 통구이)라도 준비했으면 잠깐의 술안주 구경거리라도 되었을 텐데!"

   "설익은 도미에 무지개색 조명이어도 당신의 아편굴 같은 파티보다는 나아."

   "신랄하셔라."

 

   도나 비토리아는 게이머라 불린 남자의 앞 소파에 사붓이 앉았다. 옛 중국풍 복식을 입은 여성이 전자 담배를 권했으나 거절했다. 그녀는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면, 몇몇 장소를 제외하곤 집 밖 대부분의 곳에서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았다. 남자는 그런 제나를 재미있다는 듯 비릿한 웃음과 함께 바라보곤 담뱃불을 껐다.

 

   "말했던 건?"

   "준비 완료오. 드문 것들을 찾았던데. 메이거스라니, 도대체 얼마나 오래된 고대 유물인지! 이 시대에 퍼스널 A.I.는 커녕 도시 인공지능중앙통제시스템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모르는 돈키호테 같은 치들이잖아. 시민권이 찍혀 있는 사람이 반이나 될까?"

   "레베카가 들으면 좋아하겠군."

   "오, 빨간 머리 수잔에게 안부 전해 줘! 아무튼, 그래서. 정말로 할 생각이야?"

   "물론. 인형체를 포함한 서른 일곱 가지의 백업도 준비해 두었어. 개죽음을 당하는 건 사양이야."

   "글쎄. 네가 그런 곳에 간다는 것부터... 네가 신화에나 나올 법한 그런 걸 믿는지는 몰랐는데 말야, 비트."

   

   제나 비토리아는 메마른 웃음을 터뜨렸다. 

 

   "그럴 리가. 하지만 그걸 손에 얻는 순간 그 이름을 무기로 진짜 제국 한가운데로 들어갈 수 있겠지."

   "개죽음을 당하는 건 사양이라며?"

   "구시대의 비효율적인 스펠 싸움 따위에서 죽는다면 그건 개죽음인 걸. 져도 상관 없어. 지면 지는 대로 그 다음의 일을 생각하면 돼. 하지만, 저 안에 .. 진짜 저 게임판 위에 들어가는 순간, 그 때부터는 내 생명 따위 장기말이지. 내가 죽어도 결과적으로 목표를 달성하면, 그 판은 내가 이기는 거야. 애당초, 도시 하나를 놓고 싸워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판인데, 세상을 판돈으로 걸고 목숨값이라면 싼 거잖아?"

   "혁명가 납셨군."

   "반역이지."

 

   엘데세나 비토리아는 히죽 웃었다. 눈은 웃지 않았다. 비릿할 정도로 차가웠고, 개미를 보는 것처럼 무감각했다. 저 계집애가 과연 저 눈으로 진짜 울고 웃을 때가 있을까. 그 순간을 볼 수 있다면 저택 일곱 개 정도는 흔쾌히 값으로 치르리라. 게이머라 불린 남자는 눈을 가늘게 떴다. 

 

   "알잖아, 게이머? 하다못해 저 밖에 있는 부통령이란 작자도 목숨 걸고 기어올라갔어. 저 판에서는, 발목 한 번 삐끗하면 그대로 끝장이지. 정말 운이 좋아야 공기 좋은 시골에 유배야. 저기서 떠들고 있는 것들 중 내일 밤도 살아서 보낼 수 있으리란 보장이 있는 놈은 아무도 없다고. ...뭐, 돈 많고 아무런 야심 없는 진짜배기 바보는 어떨지 모르겠네."

   "무시무시한 제국이니까."

   "그렇지, 뭐. 피라미드를 무너뜨리려면, 피라미드 최정상, 못해도 근처까진 올라가야 해. 그 정도의 생각도 없이 혼자 뭔가 하면 세상이 바뀔 거라고 믿는 건 어린애 아니면 천치라고밖에 할 수 없어."

 

   게이머는 동의한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프리크라임 시스템이 도입된 지역은 물론이요, 아직 실시되지 않은 지역조차 이미 최상층의 인간들은 도시 대다수의 시민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불순한 사상을 가진 자들은 진즉 어떤 식으로든 감시와 미행이 이어졌고,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자들 또한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게이머는 제나 비토리아라는 인간에게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생각조차 감시하기 시작한 이 땅에서, 저 마음을 머리털 한 올 보이지 않도록 꽁꽁 싸매 죽이고, 훌륭한 출신 따위 없는 여자 아이 하나가 저만큼이나 올라갔다. 그런 의미로 제나 비토리아는 난 놈이었다. 

 

   게이머는, 이러니저러니 해도 제나 비토리아를 꽤 좋아하는 편이었다. 그도, 그녀도, 언제든 마음이 바뀌면 그 즉시 서로를 신고하여 정부의 특수경찰에 사살시킬 수 있는 정보를 가지고 있었고 그걸 가능케 할 위치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단순한 이유였다. 사람이 사람 같지 않게 되고, 사람이 생각과 마음이란 걸 잃어가기 시작한 현대에서 그들 둘 다 꽤나 보기 드문 별종이었으니까. 

 

   "그건 그렇지만. 호오, 이건 또 뭐야. 발렌타인 20nn년산? 이건 또 귀한 물건이구만." 

   "난 그런 술 싫어하니까."

   "흐흐, 뭔가 약간 이득 본 기분인데."

 

   제나 비토리아는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그녀는 술꾼과 골초와 도박광의 심리를 이해할 수 없었고, 눈 앞의 남자는 그 세가지를 전부 완벽하게 달성하는 인간이었다.

 

   "하지만, 도나 비토리아. 정말 너는 그걸로 괜찮은 거야?"

   "뭐가?"

   "[기적]을 일으키는 거라며. 빌고 싶은 소원 한 두 개쯤 있지 않아, 너도?"

   "사람이 머리로 생각해낼 수 없는 일이라면 그 따위 것도 마찬가지로 할 수 없어. 그리고, 뭣보다 그게 그 옛날 라스 베가스를 날려버린 걸 생각하고도 그 말을 할 수 있어?"

   "뭐, 그건 그렇지만. 대부분은 그걸 대형 사고로 믿잖아? 사고와 자연 재해가 운 없이 겹쳐진 종말의 날."

   "그건 그렇지만, 너는 그 대부분이 아니잖아."

   "물론, 하지만 내 말은 ── 너는 엘다나 센 같은... , '이름을 잃어버린 아이들'을 다시 살리고 싶단 생각 해본 적 없어?"

   "게이머."

 

   오르델라피는 흔들림 없이 그를 쳐다보았다. 한쪽은 투명한 복숭앗빛, 다른 한 쪽은 자수정 같은 보라색의 눈이 그를 비추고 있었다. 대단한 미인이 그 눈에 오직 자기만을 쳐다보다니, 글로만 쓰면 로맨틱하기 그지없는 순간이었으나 게이머는 소리 없이 침을 한 번 꿀꺽 삼켰다. 괜한 말 했구만, 이거. 작게 내뱉고는 취소, 취소라고 하는 것처럼 양 손을 내저었다.

 

   "그렇게 나와줘서 고마워."

 

   나는 당신을 없애고 싶지 않거든. 뒤에 생략된 말이었다.

 

 

02.

 

 

   엘데세나 비토리아는 걸었다. 쭉 걸어나갈 뿐이었다. 처음으로 바깥 하늘을 눈에 담았던 그 날부터, 그녀는 주변을 돌아보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흔들림 없이, 앞으로만 나아갈 뿐이었다.

 

   그녀는 잠시 차를 세웠다. 센트럴 파크의 밤바람을 맞으며, 적당히 눈에 보이는 벤치에 털썩 앉았다. 정말이지 그녀로서는 드문 변덕이었지만, 암묵적인 룰에 따라 웨더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름을 잃어버린 아이들을, 다시 살리고 싶단 생각 해본 적 없어?'

 

   단 한 번도, 꿈에서조차 생각해본 적 없다면 그것은 거짓이리라. 하지만 제나 비토리아는 지독히 무정했고, 세상 대부분의 것들을 믿기보다는 의심하는 것을 택했다. 그 옛날 라스 베가스를 뒤덮은 재해. 그것이 아니었더라도 그녀는 성배란 것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진짜 예수의 피를 담은 그 잔이 나왔대도 의심할 판인데, 필멸자가 만든 것을 어떻게 믿는단 말인가. 진짜 '만능'이라면, 그건 필시 어딘가 되먹지 못한 구석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 의미로 보면, 엘데세나 비토리아는 꽤 신실하게 보이기도 했다. 창조주가 만능인진 모르겠으나, 최소한 그 피조물은 만능이 될 수 없다.

 

   "허튼소리."

 

   작게 내뱉었다. 그건 어쩐지, 약간 누군가를 다그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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