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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전] 제나 비토리아, 下

로하 2019.04.04 12:38 조회 수 : 14

 

 

00.

 

 

   뉴욕 주 업스테이트. 지도에는 표기되지 않는 시설 안에서, 흰 가운의 남자는 낄낄 웃었다.

 

   "이번엔 몇 명이나 버텼디?"

   "스물 두 명."

 

   동료인 걸까. 안경 낀 다른 남자가 무심하게 대답했다. 

 

   "다음 주를 지나면 반으로 줄겠군. 아니, 반은 남으려나?"

   "알 게 뭐야. 그럼 새로 더 건져오면 될 걸. 고아와 빈민만큼 요새 구하기 쉬운 게 또 없잖아."

   "이런, 사람을 그렇게 물건처럼 말하면 쓰나."

   "네가 그런 말을 하면 안 될텐데?"

 

   저들끼리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희미한 환각제가 섞인 음료를 벌컥 들이키려던 안경 낀 남자는 움직임을 멈추고 눈을 찌푸렸다.

 

   "아, 시끄러워."

   "뭐야, 뭐야? 이건.. 보르지아는 아니고. 유리예프인가?"

   "그렇겠지."

   "버려 버릴까? 보르지아도 유리예프도, 쓰레기 같은 걸 건져다 그런 슈퍼 명문가의 이름을 붙여주고 혈통[각인]까지 몸에 심어줬는데. 도대체가 이름값을 못하는 걸 보면 역시 태어날 때부터 계급 자체가 다른 건가봐."

   "헤이스팅스가 그나마 버티고 있고. 로트링엔도 나쁘지 않아."

   "그리고 또... 아, 그렇지. 오르델라프. 델라프인지 델라피인지."

   "걔야 뭐, 보통 독종이 아니지. 가끔 보면 정말 괴물 같다니까."

 

   남자들이 한창 대화에 열을 올리며, 프렛츨을 집어먹을 즈음 고요한 복도가 울렸고, 입실을 허가하는 A.I.의 음성이 들렸다. 180은 되었을까, 보기 드물게 장신에, 검은 머리칼을 매끄럽게 틀어올린 우아한 몸짓의 여성이었다. 

 

   "에를릭 박사님."

   "계획이 바뀌었어."

   "네?"

   "다음이.. 혈액 대신 인공수액 XT-071을 주입하는 거였나? 그건 다음 주로 미뤄. 위원회의 지시사항이다. 내일 모레는 이사들과 '후원자들'을 초청해서 '이벤트'를 한다더군. 그 치들이 자신의 돈이 어떻게 들어가는지 보고 싶다나 봐." 

   "아아, 뭐에요. 그럼 또 밖에서 줄어든 만큼 공수해야 하잖아. 이번엔 몇 명이 한 조래요?"

   "일곱 명."

   "햐, 가지가지한다 정말! 사람 업무량을 줄여줄 생각은 못하고.."

   "하여튼, 허리춤까지 오는 쪼만한 것들끼리 붙여서 한 놈이 다른 것들 다 폐기하는 것 보면서 만족감을 느낀다니 범인으로서는 상상도 못 할 페도필리아 변태구만."

   "누가 아니래. 박사님, 나 이직할래요오─"

 

   건조한 공간에 웃음만이 울려퍼졌다.  

 

 

01.

 

 

   "오오, 승리자들."

   "이번엔 평소보다 재미있었지."

   "짐승을 풀어놓다니 센스가 좋았어."

   "머릿수도 많았고."

   "아무튼 그러니까, 이것들에게도 상을 줘야지. 기특한 것들."

   "이름의 특권을 주마."

   "너는 빅터. 너는 빅투아르. 너는 비토리아."

 

 

02.

 

 

   "앗, 어서 오세요──! 오늘도 언제나처럼 써니 사이드 업 두 개에 메이플에 숙성시킨 생 햄 두 조각, 베이컨 한 장에 토스트 한 조각이면 될까요?"

   "아뇨, 린다. 오늘은 스크램블에 소시지로."

 

   린다 페트로프는 맨해튼의 부촌에 위치한 고급 카페의 매니저였다. 완벽한 접객 능력을 가진 '사람'을 매니저로 고용하는 것이 가게를 평가하는 고급의 척도가 된 현재, 그런 매니저로서도 수 년의 경력을 쌓은 린다는 사람과 물건을 보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다 자부하고 있었다. 그런 린다의 기준에서, 눈 앞의 고객은 근 몇 년간 찾기 힘든 정도의 고급품을 두르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정확히는, 그게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하지만 '아는 사람'끼리는 곧바로 알아볼 수 있는 종류의 진짜배기 최상위품. 이만한 걸 아무렇지 않은 듯 들고 다닐 수 있는 사람이라면 유명할 법도 하지만. 순간 다시 - 고객의 정보에 대해는 관심이 없어야 한다 - 는 프로의 불문율을 어길 뻔한 린다는, 눈 앞의 손님이 8만 달러를 호가하는 작은 가방을 아무렇지도 않게 바닥에 내려두는 것에 다시 제정신을 차렸다.

 

   "그러고보니, 뉴스 보셨어요?"

   "무슨 뉴스요?"

   "그 왜, 요새 자꾸 원인 불명, 방법 불명으로 살해당하거나 쓰러진 시민들이 많다고."

   "아아. 그거요. 네. 저도 봤어요. 점점 늘어날 것 같던데요."

   "정말이지 밤에 다니기가 무서울 정도에요. 빨리 맨해튼에도 프리크라임이 도입되면 좋겠어요. 시민을 죽이다니, 정말 끔찍해."

   "... ... 시민도 그 정도인데, 돔 밖은 말할 것도 없겠죠."

   "? 네? 아, 죄송해요. 못 들어서.. 혹시 뭐라고 하셨나요?"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렇네요. 버지니아 주의 범죄율은 프리크라임 덕분에 10분의 1로 내려갔다고 하던데."

   "그러니까요."

 

   대화의 화제는 곧 이번 시즌의 트렌드로 옮겨졌지만 오래 이어지진 않았다. 따끈한 온기가 올라오는, 입에 넣으면 녹을 것만 같은 포슬포슬한 스크램블과 윤기가 흐르는 소시지, 크루아상이 담긴 접시를 잠시 노려다보듯이.. 아니, 쳐다보던 금발의 손님은 곧바로 다시 매력적인 미소를 띄웠다. 근처의 몇 손님들이 그 모습을 멍하니 보다 포크를 떨어뜨리는 것을 놓치지 않고, 린다는 익숙하다는 듯 곧바로 로봇에게 지시를 내렸다.

 

 

03.

 

 

   핏물 속에 빠져들고 있어.

   마치 늪처럼 깊고, 끈적거려서. 나올 수가 없는 거야.

   작은 손들이 나를 잡아당겨.

   원망하고 있구나.

   괜찮아. 조금만 기다려줘.

 

 

   비토리아 오르델라피는 눈을 떴다.

   습관처럼, 화장실로 달려가 비눗물을 가득 묻혀 손을 박박 닦았다. 

   아침의 일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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